< 발랄한 여인의 초상화 > # 1
스승이 그리다 멈춘 한 여인의 초상화 작업이 주문자에 의해 젊은 제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도대체 세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세기 초, 프랑스 최고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와 세기의 미녀 마담 레카미에(Madame Recamier)가 초상화 제작을 위해 만났다. 아름다운 관계가 시작되는 듯싶었으나, 얼마 못가 그들의 관계는 꼬이기 시작했다.
초상화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서 중단되었고 그들은 불편한 사이로 변했다. 모델 레카미에는 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화가와의 초상화 작업 스케줄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그녀가 설령 화가 앞에 모델로 섰다 해도,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하는 23살의 변덕스러운 여인이었다.
이 같은 그녀의 성격과 태도는 화가에게 무례함으로 비쳐 보였다. 마찰과 갈등이 잦아들자, 다비드는 점잖게 그녀를 꾸짖는 짧은 경고가 담긴 편지를 보냈다.
"부인, 여인들이 변덕이 심하다지만 화가도 그렇답니다. 내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난 당신의 초상화를 지금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둘 것입니다.”
이 편지 이후로 그들의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고 작업 중단으로 이어졌다.
초상화가 미완성으로 끝난 원인은 또 있었다. 다비드의 작업 방식과 진행 속도 그리고 두 사람의 미적 취향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루이 드주인(François-Louis Dejuinne)의 1826년 유화 <마담 레카미에와 그녀의 거실, Abbaye-aux-Bois>를 보자.
사교계의 여왕 거실에는 커다란 책장과 액자 그림 그리고 하프가 그녀를 둘러싸듯 배치되어있다. 미모와 지성을 갖춘 레카미에는 오른손에 책을 들고 그리스인들이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던 유형의 긴 소파, 데이 베드(Daybed)에 앉아있다.
프랑스 화가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Gros)의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을 보자. 추운 날씨에 대비해 따뜻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에서 그녀의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외모뿐만 아니라 살롱의 인테리어를 감각적으로 꾸밀 줄 아는 미적 재능을 갖춘 여인이었다.
오귀스트 가브리엘 투두즈(Auguste Gabriel Toudouze)가 그린 <마담 레카미에의 샬롱, Abbaye-aux-Bois>을 보자. 실내 벽은 그림들로 장식되어있고, 거실 바닥은 일명 '레카미에 타입'의 의자로 불리는 녹청색 안락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다 보니 화가 다비드가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레카미에는 자신의 의상 등 패션 그리고 그림 배경에 배치된 소품들을 놓고 그와 사사건건 부딪쳤을 것이다.
처음에 다비드는 레카미에 부인에게 초상화를 의뢰받아 준비 작업을 하며,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당시에는 이상적인 동경이 고대 그리스였다.
때문에 옷과 장신구의 꾸밈새에도 고대 그리스의 기본 옷 꾸밈새인 키톤(chiton) 풍이 다시 등장했다.
이러한 시류는 모델의 의상과 포즈 그리고 화면 속 가구와 주변 소품들에게서도 잘 나타나 있다.
다비드의 작품 속 마담 레카미에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이나, 신전의 여사제와 유사한 의상을 입고 있다. 누워있는 자세는 고대 그리스 종교의 여신 헤베(Hebe)와 흡사해 보인다.
또한 레카미에의 짧은 곱슬머리와 블론디 헤어에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 속 주인공들의 헤어스타일을 떠오르게 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여성들의 의상 양식은 개인의 가치관과 지위를 반영했기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고 그만큼 스타일도 다양했다.
다비드는 모델의 머리카락 렌더링(rendering)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화가였다. 특히 <마담 레카미에>의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대 그리스 미술은 물론, 고대 로마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을 연구했다.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고대적인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며 고고학적 정확성을 중요시했듯, 다비드 또한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쳐 초상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레카미에는 다비드의 이런 더딘 작업 방식과 속도 그리고 자신의 헤어에서 발끝까지 온통 고대풍으로 꾸민 패션 양식에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레카미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통제하려는 욕망이 강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검게 보이길 원했다. 그런데 다비드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블론디(blondie)로 묘사하자, 그녀는 충분히 검게 칠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로코코 미술의 경박함에서 벗어나 고전적인 미학을 추구했던 다비드.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미술들이 안정적인 구도 속에서 보여준 엄숙하고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초상화에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레카이에 부인에게 고대 여신의 신성함을 입히기 위해, 고대 그리스풍의 헤어스타일로 묘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23살 젊은 레카미에는 그런 작가의 의도, 즉 신고전주의의 절제미와 고전적 우아함을 선 듯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다비드가 <마담 레카미에의 초상화> 작업을 멈추고 있는 동안, 그녀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이자, 최고의 마당발이었던 마담 레카미에는 자신이 원하는 초상화를 그려줄 새로운 화가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화가 프랑수아 제라르(Francois Gérard)를 만나,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한다. 윌리엄 퀼러 오차드 슨(William Quiller Orchardson)의 작품 <레카미에의 살롱(Salon de Juliette Récamier)>을 보자.
필립 조제프 발로(Philippe Joseph Vallot, after Antoine-Jean Grosline)의 판화 <프랑수아 파스칼 시몽, 남작 제라르(François Pascal Simon, Baron Gérard)의 초상화>를 보자. 당시 제라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취업을 위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힘든 이십 대를 보내고 있었다.
마담 레카미에가 다비드와 틀어진 지 2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심통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녀가 새로 초상화를 부탁한 화가 프랑수아 제라르는 다비드의 수제자였다.
미완성작을 만지작거리며 그녀의 초상화 작업이 다시 시작되길 기대하고 있던 다비드는 어느 날 '마담 레카미에의 초상화' 작업이 자신의 제자인 제라드에게 넘어갔다는 소문을 듣는다.
화가 난 다비드는 그녀의 초상화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한다. 그는 모델녀와 수제자로부터 명예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결국 다비드의 <마담 레카미에의 초상화>는 미완성으로 남는다.
2편, '젊은 화가를 만난 살롱의 여왕'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