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생각하면서도 보지 못한 채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낑낑대며 얼어붙은 나무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노라면 1월 새벽 공기에서 는 후추처럼 매운 냄새가 나면서 콧구멍이 들어붙었다.
서로 잘 이어지지 않는 얘기를 나눴다. 낯선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그리하여 그 사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예상 외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말만 하고 나면 ‘아차, 이건 말하지 말걸’ 이런 후회가 들었다. 그건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나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만나면 만날수록 괴로워지는 어떤 것,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감미로워지는 어떤 것, 대일밴드의 얇은 천에 피가 배어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스케이트를 지칠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자고 삶은 그처럼 빨리 변해가는가? 어쩌자고 열아홉 살에 우리는 헤어지게 된 것일까? 어쩌자고 모든 것은 조금만 지나면 다 나아지는가? 어쩌자고 고통은 때로 감미로워지는가?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끝이 없으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릴 때 엄마가 잠깐 집을 비우면 몰래 하던 일이 있었다. 바로 커피를 마시는 것. 어린이라면 한 번쯤은 어른들이 마시는 커피를 먹고 싶어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못 먹게 하니 괜히 더 먹고 싶은 건지. 나 역시 어린이일 때 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면서 커피를 마실 때 아빠 옆에서 모기처럼 앵앵거렸다. 그때 한 두 모금 얻어먹은 것이 아마 처음 맛 본 커피였던 것 같다. 달달하면서 쓴 커피 2 프림 2 설탕 2의 맛! 표준어로는 커피크림이라는데 프림이라고 해야 그 맛이 날 것만 같다. 아무튼 그때 내가 좋아했던 맛은 커피보다는 프림의 맛에 가까웠다.
엄마가 집을 비우는 일은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면 벌써 커피를 타 먹을 생각에 설렜다. 우선 엄마의 외출 시간이 아주 짧을 것으로 예상될 때는 예쁜 유리 밀폐용기에 담긴 프림만 퍼먹었다. 약간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맛과 침을 흡수하는 퍽퍽한 느낌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조금 여유가 있는 시간이라면 물을 끓여 커피를 타서 마셨다. 어차피 집에 아무도 없는데 물을 끓이려고 가스레인지를 켜는 것부터 떨려서 재료와 컵을 괜히 물건 훔치러 온 도둑마냥 살금살금 꺼냈다. 그때는 믹스가 없어서 커피와 프림과 설탕을 다 따로 타서 마셔야 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맛의 커피를 마음대로 제조할 수 있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1:3:3 정도였을까? 물이 끓는 동안 커피와 설탕 프림을 머그컵에 퍼 넣고 또 도둑처럼 물건들을 제자리로 옮겨 놓았다. 완성된 커피를 들고 창밖을 보며 어른 흉내를 냈지만 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벌써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탈은 20분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그 후의 시간은 기다림으로 더디게 흘러갔다.
그렇게 더디게 흐르던 시간은 어느 순간 빠르게 흘러 대학 졸업을 1년 남겨두고 있었다. 그 현실을 믿을 수가 없던 나는 시간을 멈추고 싶은 심정으로 휴학을 학기마다 하고 있었다. 두 번째 휴학했을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바리스타일을 계속 배우고 싶어 했던 터라 처음에 일을 배울 때는 정말 재밌었다. 커피를 금전적인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나와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 내용과 상관없이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안다는 것 자체가 대학 졸업도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매장의 직원들과 사장이 그렇게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알게 되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에 가까웠지만 9시간씩 월~금 일했으니 시간으로는 아르바이트 이상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사장은 직원들에게 자꾸만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그런 말과 달리 행동은 직원들을 믿을 수 없어 집에서도 CCTV를 보며 매장에 전화를 해 수다 그만 떨고 테라스를 치우라거나 3층을 정리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쿠키는 팔아도 된다며 꼭 너희가 사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제조음료를 마음껏 먹게 해주는 대신 시급은 최저시급보다 더 적었고 4대 보험도 없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쿠키를 놀러 온 친구에게 줘버린 직원을 하루아침에 해고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나에게 머신을 수리하러 보낼 때 부른 퀵서비스 비용이 비싸다며 네가 주인이라면 적어도 2~3개는 찾아보지 않았겠냐고 했다.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라는 마치 선생님 같은 말투여서 더 황당했다.
그런 원초적인 감정과는 별개로 지금이라면 콧방귀를 뀌거나 당장 그만두거나 또는 신고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이라 그렇게 주인처럼 일을 해야 하는 건데 내가 못하고 있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다. 사장은 내가 거기서 일한 지 몇 개월 정도 됐을 때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그동안 뽑은 애들이 이상한 애들이 많았다며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애들이 일을 하다 말고 손님이 없을 때 매장에서 줄넘기를 하지 않나 그릇을 훔쳐가는 애도 있고 매일 지각을 해서 자기가 땜빵을 한 적이 셀 수가 없다고 했다. 왜 그렇게 CCTV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조금 이해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장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순 없었다.
바리스타 일도 커피를 만드는 재미와 별개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재밌지만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고 무거운 것들을 들고 내리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니 쉬는 날은 말 그대로 쉬는 것 말고 다른 일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복학 2달 전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사장은 복학 직전까지 일하면 안 되냐고 했다. 나는 라섹 수술을 하기로 해서 조금 여유 있게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사장은 라섹 수술해도 일할 수 있다고 또 주인의식을 말했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일말의 이해심마저 다 떨어져 웃으며 말했다. "저는 주인이 아니잖아요."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는 말을 이런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겨우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나니 카페에서 일했던 날들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회사일에 좀 적응되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주 7일 노동자가 되었다. 시작할 때 나를 너무 믿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회사도 카페도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 할 만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 때 회사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배를 안쪽에서 누가 꼬집는 듯 엄청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 아픔은 난생처음이라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아졌다. 그렇게 긴장을 풀고 있으면 갑자기 또 미친 듯이 아팠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공복에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간간히 속이 뜨거워진다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속이 아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라 금세 잊어버리곤 했는데 이미 그때부터 속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나 보다. 그 증상이 위경련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증상은 이틀 정도 지나니 잠잠해졌고 주 7일 노동자는 무리였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둘 중에 하나는 그만두어야 했다.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으니 아르바이트는 그만뒀다.
한번 약해진 몸은 완전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특히나 커피를 마시면 바로 위가 쪼그라 붙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커피를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래 저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 커피지만 나는 여전히 커피를 좋아한다. 예전처럼 아무렇게나 공복에 먹거나 하루에 여러 잔 먹을 수는 없지만. 하루에 딱 한 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어릴 때 쉽게 먹을 수 없던 커피가 너무도 달콤하고 맛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