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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4 호르몬이 만든 마음 들여다 보기

by 조아름


오늘 아침은 평소와 달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번 주 내내 아기용품 빨래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오늘은 집안일을 조금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집 어른 빨래부터 시작해 청소기까지 돌리며 분주하게 아침을 보냈다. 그런데 산부인과 진료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조기 축구를 나간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신경이 쓰였다. 그런 와중에 동생이 아침을 준비하며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자매들 사이에 늘 그렇듯 유치한 실랑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생각해 보면, 그 다툼은 결국 내 기분 탓이었던 것 같다.



회사 동료가 임신했을 때, 그냥 걷다가도 눈물이 났던 적이 있다고 했다. 임신 기간 동안 호르몬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몸소 느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는 괜찮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돌이켜보면, 다른 임산부들에 비해 큰 감정의 기복 없이 무난한 임신기를 보낸 것 같다. 하지만 임신 초기에 한 번, 그리고 요즘, 아주 가끔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거나 이유 없이 울컥할 때가 있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설어 당황스럽고, 때로는 속상하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호르몬이라는 무형의 무언가에 내 기분이 휘둘린다는 것이.



남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급히 씻고 준비한 뒤 나와 함께 산부인과로 향했다. 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 말을 하자마자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진짜 내 기분, 왜 이러는 걸까. 오늘 남편이랑 병원 진료 후 호텔 뷔페도 가기로 했는데... 괜히 나 자신이 서글퍼졌다. 하지만 조용히 휴지를 건네는 남편을 보니, 그 마음이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



다행히 병원 진료를 마칠 즈음엔 호르몬도 잠잠해졌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차 안에서 동생에게 짧은 사과의 카톡을 보냈다.

'미안. 아침에 괜히 신경질 냈어.' 동생도 마음을 이해해 주었고, 때로는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내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아마도, 서로가 편하기 때문이겠지.


이럴 때도 있는 거야, 라며 오늘의 내 감정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독인다.






14일 전 허니에게 쓰는 편지


엄마의 기분은 곧 아가에게 전달된다고 하던데, 오늘 엄마의 속상했던 마음이 허니에게 닿을까 봐 걱정이 되었어. 작은 부정적인 감정조차 허니가 느끼지 않길 바랐는데, 이럴 때면 오히려 미안한 마음마저 들더라.

하지만 허니야, 감정에는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있단다. 기쁠 때도 있고, 가끔은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감정이 다 자연스러운 거야. 그러니 허니도 언제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오늘 진료를 보니, 아직 허니는 세상에 나올 준비가 안 됐다고 하더라. 의사 선생님이 많이 걸으라고 하셨으니까, 우리 함께 더 많이 걸어보자. 허니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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