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설치전-7 08화

7-8. 막이 오르다

by moonrightsea

" 선배가 여기... 아 작가님이시군요. 반가워요. "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영석을 밀어내며 악수를 건넸다.


" 아 정작가랑 잘 알겠네. 둘이 선후배 사이지? "


교수님이 곁에서 보시고는 웃으시며,

" 오랜만에 이렇게 모이니 좋구먼. 들어들 가지. "


어느새 관장님께서 다가오셔서는

" 아 미소씨가 교수님 제자였군요. 제가 잘 데려 왔군요. 교수님."


" 아 자네는 뭘 또 그렇게... 이제는 교수도 아닌데 뭘. 뒷방 늙은이를 허허."


" 아뇨. 겸손은 사양합니다. 대선배님. 덕분에 저분들도 모시게 되었는걸요. 감사합니다. 소개해주셔서."

' 아 두 분이 아는 사이셨구나. 어쩐지... 여기서 하는 교류전에 관장님이 참여한다 했더니.'


" 아 알고 계신 사이셨군요.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잘 부탁드립니다. 관장님. 가시죠."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며 관장님을 바라보자, 관장님께서는 어깨를 으슥하시며


" 가죠. 이큐레이터. "

" 네. 관장님."





왠지 듣기 좋았다.

음 직업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와 안면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끈이 세월과 함께 흘러 어느새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난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그 사실이 왠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마을을 돌며 스텝들에게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받고 늘 해오시던 공간으로 독일 작가분들을 현우와 함께 이동하면서 안내해 드리고 다시 관장님의 작품 공간도 안내해 드리고 그리고 다시 설치할 곳으로 작품을 이동하고... 하루는 매우 길고도 짧다.


일이라는 것은 그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고 쏜살같이 지나가지만 막상 업무가 끝나면 마치 내 손을 떠난 일처럼 몸 안의 영혼도 함께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머릿속에 이런 의문이 점점 들기 시작할 때쯤 관장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나는 그 자리로 가서 한참을 다음 일정과 작품 설치 과정과 독일작가분들의 협업과정을 다시 설명 듣고 필요한 것을 꼼꼼히 체크를 하고 마을 이장님께 협조도 구하고 그렇게 막바지 체력을 방전할 때까지 쓰고 있었다


멀리서 상황을 계속 오가며 지켜보시던 연우어머니께서 내게 슬며시 다가와 생수를 건네주시며,


" 많이 힘들지? 여기까지 와서 일하는 거 보니 또 달라 보이네. "

" 아까는 인사도 못 드려 죄송해요. 어머니. "


연우 어머니는 그제야 내가 여유가 있어 보이시는지 방긋 웃으시며,

" 이제 곧 저녁 식사 시간이니 작가분들도 다모이시고 하면 한숨 돌릴 테니 그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봐요. "

"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챙겨주셔서."


" 쉬엄쉬엄해요. 우리 아기."

" 헤헤."





곧 마을에는 잔치 상이 펼쳐졌다.

예전의 나라면 저렇게 정신없이 오가는 스텝들 사이 이름도 모르는 작가로 그저 열심히 뒤치닥 거리 하는 존재였다면 9년이 지난 지금은 엄연히 주최 측의 초청을 받고 온 손님으로 또 인솔자로 당당히 내 이름의 명찰과 직함을 가진 존재로 나는 어느새 그곳에서 먼저 온 작가분들께 인사를 받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되어 있었다.


" 그래서 말입니다. 관장님. 저희가 이번에 미술관에서 전시를 좀 하고 싶어서 대관을 하려는데..."

" 아 그건 저기 이큐레이터와 상의하시죠. 차후 일정은 미술관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


이것이 나의 역할.

그리고 나의 위치. 아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그 숱한 날들을 버텨왔던가.


듣기만 해도 뿌듯했다.

관장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고 물어보고 물론 관장님 스케줄에 대한 일정이 대부분이었지만 미술관과 관련한 질문들. 작품과 관련된 견해 들에 대하여 이제는 막힘없이 술술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흥분되고 뿌듯하고 무엇인가 내가 이제까지 이룬 일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한 마음에 신이 나 있었다.


" 이큐레이터님. 일정은 그래서 어떻게 되시나요?"


불현듯 관장님 일정이 아닌 내 일정을 물어보는 질문에 고개를 돌리자,

영석이었다.

" 아 그건 제 개인일정이라서요. 공식적인 일정은 안내된 팸플릿 대로 나와 있습니다만."

" 아 그렇네요. 참고하죠. "


여느 때와 다른 내 표정 때문이었나.

아니면 내가 너무 딱딱하게 말해서 그런가. 순간적인 정적에 나는 잠시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미니 미술관이 되어 버린 옛 펜션으로 들어섰다.

1층 벽면은 넓은 통창으로 된 유리가 아름답게 보름달을 비추며 그렇게 창안으로 덩그러니 들어와 작품을 비추고 있었고 나는 내일 걸릴 독일 작가들의 작품과 관장님의 협업 작품을 눈에 그리며 공간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뻣어 허공에 대고 공간을 쓱 쓱 그려 보고 있었다.


그때 영석이 내 손을 잡았다.

" 여전하네. 뭐든 열심히 인건. 인정해."


나는 영석이 잡은 내 손을 쓱 빼며,

" 선배도 그 손버릇은 여전하네요. "


" 훗. 이제는 아무나 에게 그러지 않아. 누군가 내 가슴에 대못질을 해서 말이야. 쉽사리 안 잡아지더라고. 이손이. "

" 미안하네요. 그 아무나 가 아니라서. 하지만 제게 선배는 선배가 말한 그 아무나 중 한 사람, 그리고 아직도 저는 이게 나쁜 버릇으로 밖에 안 보여서요. "


그렇게 말하며 나는 다시 뒤돌아 나와 회식장소로 돌아갔다. 물끄러미 그런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영석을 그 자리 세워둔 채.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마을회관으로 갔다.

연우어머니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침을 준비 중이셨다.


" 어머니. 제가 할게요. 그만 쉬세요. "

" 뭘. 그래. 다들 보는 눈도 있는데."


" 괜찮아요. 신경도 안 써요."

나는 방긋 웃으며 살갑게 어머니를 뒤에서 안아 드리고 방향을 돌려 식탁의자에 앉혀 드리고는 밥을 뜨기 시작했다.


" 연우는 바쁜가 보네. 같이 왔으면 좋으련만. "

" 그러게요. 어머니. 근데 이건 제가 하는 일이다 보니 공식 일정이기도 해서요. "


" 그렇지. 그냥 말로만 듣다가 막상 곁에서 보니 네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새삼 실감이 나는구나."

" 죄송해요. 한번 찾아뵙는다는 게 늦어져서."


" 괜찮다. 미소야. 아니지. 이큐레이터님. 일하시는데 뭘요. "

" 아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나는 꼬옥 안아드렸다. 그러자 연우어머니께서


" 후훗. 보는 것만도 이리 좋으니 다음에는 같이 오렴."

" 네. 이건 제가 밖에 가져다 드리고 올게요. "


그렇게 말하며 회관 앞 마련된 야외 식사자리로 나서자, 어느새 아침을 드시러 오신 교수님과 관장님.

" 미소양. 올해는 국수 먹는 건가? 내 이장님께 들었네만. "

" 아.. 교수님. 아직 한창 일해야죠. "




그러자 관장님이 흠칫 놀라시며,

" 오 미소씨가 만나는 사람이 있었군요. 저는 하도 늦게까지 미술관에만 있어서 아직 없는 줄 알았는데."


" 아 모르고 있었군. 자네도.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라. 내색도 안 했을 거야. 그러니 그만 좀 부려 먹게나. 데이트도 좀 하고 놀러도 다니게 말이야."


" 아 네 선배님.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선배님 부탁인데 당연하죠."


" 아 미소씨가 남자친구가 있었군요. 제가 실레를 할 뻔했어요. 너무 미인이셔서."

그렇게 말하며 현우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당황하며

" 아 아침부터 인사가 너무 과한 칭찬일색이셔서 어디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서 식사하시죠."


" 아침부터 다들 화기 애애한 신데요? 저도 끼워주시죠. "

그렇게 말하며 영석이 교수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런 그에게 밥을 주며,


" 잘 주무셨어요? 정작가님?"

나는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영석이


" 아 어제는 전시 때문에 잠을 설쳤네요. 얼마나 설레던지. "

"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시죠. 필요한 거 말씀하시면 챙겨 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말하며 나는 돌아서 다시 회관으로 향했다.

이윽고 속속들이 작가분들이 오셔서 식사를 마치시고 나는 아침도 굶은 채 관장님을 수행하며 독일 작가분들을 챙기며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 그럼. 이큐레이터. 난 일정 때문에 이만 올라가 보겠네. 나머지는 최작가와 진행되는 대로 알려주고 금요일 보자고. "

" 네. 여기는 제게 맡겨 두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금요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나는 최작가와 함께 마을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 음. 여기가 제가 작품을 설치했던 곳이에요. "

" 아 그렇군요. 여긴 의외의 장소네요. 마을과도 조금 떨어져 있는데 어 이건..."


현우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내가 설치 전을 했던 그곳에 색이 바랜 돌담길이 세월의 흔적만 남긴 채 아직도 촘촘히 남아 있었다.

" 아 그건 제가 설치한 작품의 일부였는데 몰랐네요. 미처. 아직도 이렇게 정교하게 남아 있을 줄은."

" 어떤 작품이었는지 궁금한데요? "


" 음. 그건. 설명드리기 좀 곤란해요. 사적인 이야기라서. "

" 하하하. 그럼 미소씨가 제게 봤다던 그 궁금한 눈빛과도 연관 있나요?"

" 아 그건... 이것과는 전혀 별개인데..."


" 음. 아마 지금 제가 바라보는 눈빛을 미소씨가 그때 공항 가는 길에 제게서 본 모양이군요."

" 아 그런가요? 훗. 제 눈을 제가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 후훗."

" 음. 그럼 그 눈빛의 대답은 미소씨 머리에 있겠군요. 그런가요?"


" 음. 맞추시면 제가 말씀해 드릴게요. "

" 어디 보자."

현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는 연신 뒷짐을 쥔 채 고개를 갸웃갸웃거렸다. 그때,

" 이큐레이터님? 작품과 관련해 상의드릴 게 있는데 잠시 시간 좀 내어 주시겠어요?"

돌아보니 영석이었다.


" 아 죄송합니다. 정작가님. 지금은 회의 중이라서요. "


나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현우가

" 그럼 하던 이야기 마저 하시죠. 음. 뭐랄까. 아련한? 그리운?"




나는 당황하며, 현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길 위 방향을 가리키며,

" 저희 여기서 이러지 말고 독일작가분 작품을 보며 이야기 더 나누죠?"


" 그럼 그럴까요? 이큐레이터님?"

그렇게 말하며 현우는 내 손에 이끌려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면서 쓱하고 영석을 돌아봤다. 나도 모르게 그런 현우를 바라보다 보니 영석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 음. 혹시 아까 그 분과 그 돌담길이 상관이 있을까요?"

" 음 이런 질문은 곤란한데... 그럼 그 아련한 눈빛과 관장님과의 추억과는 상관있는지요?"

나의 당돌한 물음에 현우는 갑자기 그 자리 서더니,


" 하하하하하하. "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다시 내게 놓았던 손을 잡더니,

" 음. 가시죠. 가면서 말씀드리죠. 어서."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재촉했고 나는 그의 손을 놓고 팔짱을 혼자 끼며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 음. 뭔가 섭섭하신가 봐요?"

그렇게 물어보는 현우를 외면한 채 스치듯 지나 먼저 걸어갔다. 그러다 왠지 답을 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 뭐 개인적인 이야기는 더 안 하고 싶어서요. 어차피 일적으로 만난 사인데..."

" 음. 그렇게 말씀하시니 갑자기 확 말하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요?"


" 글쎄요. 상대가 마음을 받기 거부하는데 밀어붙이는 건... 음. 그리 좋은 거 같지 않네요. "

" 음. 이래서 제가 말하고 싶었나 보군요. 후훗."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거죠?"

" 이제야 구미가 당기시는 모양이군요. 음. 제가 말씀드렸던 지극히 제 사적인 이야기죠."




현우는 천천히 내 뒤를 따르며 내 귀 뒤로 그의 지난 추억을 살며시 꺼내 들었다.


그가 대학에 갓 입학해서 실기실을 잘못 들어갔을 때 그곳에 창가에서 내리는 햇빛을 받으며 눈부시게 멋진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관장님이셨다.

현우는 평소 미술관에서 봐오던 그림을 그리는 관장님을 실물로 뵙게 돼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평소 본인이 좋아하고 그림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이끌었던 대작을 직접 그리는 사람을. 그것도 눈앞에서 본 그 설렘은 마치 우리가 '살아 있는 미켈란젤로를 만난 기분'으로 그는 정의 내렸다.


그러며 그는 한동안 그렇게 교수님 작업실에 몰래 들어가 그림을 훔쳐보고는 했는데 어느 날 교수님이 부르셔서 불같이 화를 내셨다고 했다. 이유는 현우의 작품은 모방에 지나지 않는 쓰레기라고. 어디 감히 영혼도 들지 않은 모방작으로 자신을 모욕하냐고.


그때 현우는 너무나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아팠고 화도 불같이 나서 화김에 교수님께 캔버스를 집어던져 버리고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곧 그가 그 실기실을 벗어나며 깨달은 사실은.


그가 교수님을 남모르게 연모해 왔다는 사실이었다고 했다.


그가 긴 방황을 하며 수업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자, 교수님이 찾아오셔서는 학교로 돌아오라 말하시며 곧 학교를 떠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러며 연모는 연모에서 그치고 인생을 위해서는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영혼이 깃든 작품을 들고 그를 찾으라고 했다고.


현우는 그 길로 군 제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유학길에 올라 독일에서 교수님께 지속적으로 사과의 편지와 연락을 해왔었고 그러면서 자연히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다 그 분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보니 관장님을 대하던 그 애정과 연모가 존경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 후훗. 이건 그림에 미쳐본 사람만이 이해하는 감정이네요. 그 정신과 그 완성의 세계. 사랑의 모습이 다 같을 수는 없죠. 저도 그 마음 이해돼요. 아까 보셨던 그 돌담길이 그걸 증명하거든요. "


" 왠지 그렇게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형태가 남아 있는 정교한 조각들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마치 정말 정성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하나하나 맞춘 거 같은 퍼즐 같은 느낌. 그 조각은 완성되셨나요?"


"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묻고 싶네요. 이제는 제대로 영혼이 깃든 작품이라는 게 손에 잡히나요?


" 아 이런. 제가 실례를 범했군요. 잘 아시죠? 후훗."

" 알죠. 제가 무슨 말할지도 아시죠?"


" 그렇죠. 세월을 더하면 더할수록 깊어지는 작품세계라는 게 평생 작가의 풀지 못하는 숙제 아니겠어요?"

" 그렇죠. 제 말이 그 말이죠. 살아갈수록 더해지는 수많은 것들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게 마음이고 영혼이죠."

" 하하하하하하 오늘 뜻깊은 이야기 너무 좋네요. 자주 뵙죠. 이큐레이터님."

" 음. 언제든 미술관은 열려 있답니다. 최작가님. "


" 아하. 이런 하하하하하. 도저히 이길 수가 없군요. 이큐레이터님의 말솜씨를."

"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작가님 그럼 가시죠."


현우와 그렇게 웃으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연우다.




" 오빠가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 갑자기?"

" 어 미소야. 나 할 말이 있어. 저 말씀 중에 죄송한데 잠시..."


" 아 괜찮습니다. 마침 퍼즐이 오셨군요. 하하하하하 두 분 그럼 이야기 나누시죠. 저는 미리 받은 이거 "

그렇게 말하며 현우에게 주었던 독일작가와의 사전인터뷰 지를 들어 보였다.

" 즐거운 이야기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뵈면 인사는 하시죠. 그럼 전 이만. "


현우가 그렇게 유유히 사라지자, 연우는 다짜고짜 나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 오빠 왜 이래. 갑자기. 흡. 아니 잠시만... 흡.. 오빠 잠시만 좀~!"


나는 연우를 뿌리치며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돌발행동에 화가 나 그를 바라봤다.

연신 내 시선을 피하는 연우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고 두 눈은 초점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 아 나 미안. 내가 미쳤었나 봐. 잠시. 미안. "

그렇게 말하며 연우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놀라 연우에게 다가가


" 괜... 찮아? 무슨 일 있어?"


그러자 그가 다시 힘껏 나를 끌어안으며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 괜찮아. 괜찮아. 나 이제 괜찮아. 너를 봤으니 그걸로 되었어. 괜찮아. 휴우... "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무슨 일인데? 응? "




" 미란이 말이야. 미란이가 죽었어. "

" 오늘 병원에 실려왔어. 교통사고라는데... 왜 난 그 애를 봤는데 갑자기 네가 사라질까 봐 온통 그 생각밖에 안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미쳐 버릴 것만 같았거든. 왜 하필 그 애를 봤는데 왜 네가 사라질까 봐 그게 너무 걱정이 되어서 정말 돌아버릴 것만 같았어. "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렇게 주저리 대며 주저앉아 한참을 눈물을 흘렸다.

나는 말없이 그의 곁에 앉아 그의 머리를 가슴에 품고 그렇게 쓰다듬었다.


" 바보. 그럴 일없잖아. 여기 이렇게 있는데... 난 또... 휴우."


그러자 그가 나를 보고 다시 키스를 퍼부었다.

" 넌 안돼. 넌 내 곁에 있어야 해. 알았지? 내 눈 감기 전에는 절대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돼. 알겠지?"

그런 그를 다시 품에 안고 나는 말했다.

" 있지? 오빠. 소중한 사람은. 소중한 인연은 그렇게 쉽게 잊히지 않아. 그리고 그 마음도 항상 여기."


연우의 손을 들어 내 가슴에 대며,

" 여기 있잖아.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 구해주면 되잖아. 안 그래?"


" 응. "


" 그럼 되었네. 다행이다. 당신의 그 여린 마음. 그 마음에 들어서 당신을 눈물바다 만든 게 미란 언니가 아니라서. 고인께는 죄송하지만... 휴우."

"당신 조금 정신 들면 내가 운전할 테니 장례식장에나 같이 가봐요.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죠. "


그렇게 말하며 연우를 일으켜 세우는데 영석이 우리의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그냥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영석의 뒤를 따라


' 왜 난 그때는 안되었는데 연우에게는...'




나는 현우에게 급히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미란언니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며 집에 들러 연우가 사준 하얀 원피스와 신발.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쉬지도 않고 다시 운전을 해서 강원도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시각은 새벽 4시 30분.


" 오빠 일어나 봐. 다 왔어. "

" 으음. "


연우는 내 곁에 누워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살며시 곤히 자는 연우가 잠시 깨지 않도록 쓰다듬었다.


나도 알 것 같아.

당신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이제는.

정말 알겠어.


내 작은 속삭임은 그렇게 새벽 공기를 타고 들어온 이슬과 같이 우리를 맴돌며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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