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찐득한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 않는데 가을의 나무들은 왠지 처연하다. 무성한 잎들이 갈색의 잔해로 길가에 나뒹구니 시간은 어김이 없었다. 그동안의 글쓰기를 반성하자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퇴고는 절차탁마의 글귀처럼 끊고, 갈고, 쪼으고, 다시 가는 지난한 작업이다. 나름의 퇴고가 없다면 정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글쓰기를 구상할 때, 어느 한 가지 주제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좌고우면 하자는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다양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마침내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생각의 확장성을 가늠해 본다. 이런 기본적인 전제가 없으면 나의 경우에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한 번 쓰기를 시작하면 쉽게 고쳐쓰기를 못하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일단 전자 활자화가 되면 그냥 그럴싸 하기에 연필로 쓴 글처럼 지워버리기가 그리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의 구절은 무의식 속에서 출현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퇴고는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한갈고닦는 과정이다. 김소월 시인의 詩 '진달래꽃'은 초안을 만든 뒤 수십 번의 다듬기를 통한 후에야 대중에게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유난히 익숙하기도 하지만 리듬감에 읽으면서도 감탄을 자아내는 그의 '진달래꽃'은 그러한 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일단 쓰기 시작을 하면 여러 생각의 갈래가 뒤엉키고는 한다.머릿속 문구도 순간적인 첨삭이 필요하다.
퇴고라는 말은 사실 글쓰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한자어라고 한다. 밀거나 두들기다는 뜻의 고사가 글쓰기와 선뜻 연결되진 않으니 말이다. 엉뚱하지만 퇴고는 인생의 조락(凋落)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목의 이파리가 떨어져 나무가 벌거숭이처럼 쓸쓸히 서 있듯이, 구차한 미사여구를 다 떨구고 진짜 알맹이를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하니 말이다.
실제로 글을 쓰다 보면 진솔하며 직선적인 글이 이해도 쉽고 감동도 주기 때문이다.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니, 글쓰기도 의지와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듯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기억에젊어서는 옷차림이나 치장이 중요했다. 무언가 결핍을 느낄수록 치장은 요란했다. 그렇게 공을 들였건만 화장은 들뜨고, 다른 이는 늘 나를 꿰뚫어 봤다. 나이가 드니 근심스러운 아랫배만큼이나 배포가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거추장스러운 잎들을 떨구고 싶어 진다.
글쓰기도 나만의 알갱이를 보여야 한다. 보이는 것도 하물며 그러할진대 읽히는 것의 부자연스러운 껄끄러움은 참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퇴고가 글쓰기에서 꼭 필요하겠는가 하는 생각은 필연코 후회를 남긴다. 일필휘지의 기세로 장문의 글을 쓴 다음 조급함에 올린 글들은 꼭 얼굴이 붉어질 만큼의 오류가 있었다. 맞춤법의 문제는 예의가 아닐뿐더러 문장의 오류도 한번 올린 다음은 이미 띄운 배와 같아 고치기가 낯 뜨겁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어 불과 얼마 전의 글에서도 그런 오류를 찾아내곤 하였다.
나름의 원칙들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내려놓기'가 최적이라는 결론에 생각이 미친다. 글쓰기를 하면서 내려놓기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한나절의 시간만으로도 내가 쓴 글이 새롭게 와닿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 보이던 문장의 오류도 눈에 띈다.
과감하게 쓰고 소심하게 고쳐본다.주제가 정해지면 그 느낌 그대로 자기의 어조를 유지하면서 써내려 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한 기조를 놓치면 글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다 쓰고 나서 바로 점검해 보지 않는다. 내려놓기는 그때 필요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보는 글은 비로소 결점과 오류가 보이기 때문이다.
단어의 오류는 수시로 사전을 찾아봐야 알 수 있다. 한글은 의외로 어렵고 혼돈되는 단어가 많다. 띄어쓰기도 주의해야 한다. 국문학 교수분들도 맞춤법 검사가 아니면 띄어쓰기는 도통 어렵다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게 나의 글을 점검하고 바로 잡아, 한 그루의 나무처럼 바로 세우는 작업이 퇴고라고 생각한다.
벌써 시월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온다. 한 해도 훌쩍 지나 연말이 가까워졌다. 나의 삶도 글쓰기와 많은 성장을 했다고 느끼고 있다. 좀 더 다듬고 가지치기를 통해 또 다른 비약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