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투표를 하고 왔다. 투표소는 나의 모교, 초등학교였다. 1학년 때 사용하던 그 교실, 바로 그곳에서 투표를 했다.
할머니가 사 주셨던 오리털 패딩을 입고 입학식에 갔던 기억이 났다.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키티 가방이 그렇게나 예뻐 보였던, 8살의 아이였다.
1-2반이었는데 (번호는 33번이었다. 이게 왜 기억나지..) 오랜만에 들른 교실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꼬맹이의 나는 교실이 엄청 넓다고 생각했는데.
1학년의 어느 날, 반 아이들과 함께 스무 살의 나에게 편지를 써 타임캡슐을 묻었다. 학교 화단 어딘가에. “꼭 다시 열자” 하고 약속했지만, 이제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듯하다.
나는 가끔 이런 쓸모없는(?)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당장에 필요하진 않지만, 한 번 웃음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과거의 장면들.
타임캡슐을 심은 그 화단은 이미 없어졌으며 대신 반질반질한 새로운 콘크리트 길이 놓여 있었다. 넓게 뛰놀던 운동장엔 체육관과 도서관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교회 초등부 아이 중에 지금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있어, 반 학생 수를 물어본 적이 있다. 6학년인데 반 전체 인원이 18명이라고 한다. 많은 반이 21명 정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참………” 하고 혼잣말을 뱉었다.
투표하고 오는데 아저씨들이 공사장에서 쉬고 계신다. 몇 년 전부터 생태하천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요즘은 모양새가 꽤 잡혔다. 한 달 전부터는 물소리도 들린다.
'아침부터 더우신데 음료수라도 사 드릴까?’ 하는 마음이 잠깐 스쳤다. 하지만 그냥 집으로 왔다. 졸렸다. 이런 마음이 들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면 좋은데..
또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경계하는 요즘 시대가 떠올라 주저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세상이, 조금 안타깝다.
다음엔 실천해야겠다고 글을 쓰며 생각해 본다.
경비실 옆을 지나는데 코랄색 장미가 곱게 피어 있었다.
이 꽃들이 오늘 아침의 나의 엔도르핀이었다.
4월쯤 집 앞에 만개했던 벚꽃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무성한 초록 잎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25년은 어느새 절반을 향해 달려간다.
곧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어 또다시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를 하겠지.
주일날 교회에서 창조과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사님은 공학박사셨고, 성경이 과학적으로도 타당하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강의하셨다.
주제는 크게 인간의 수명과 노아의 방주-대홍수.
성경의 기록은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이 900살을 넘게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아담의 계보는 이렇다.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았다. 아담은 930세를 살고 죽었다.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다. 셋은 912세를 살고 죽었다.
에노스는 90세에 게만을 낳았다. 에노스는 905세를 살고 죽었다.
게난은 70세에 마할랄렐을 낳았다. 게난은 910세를 살고 죽었다.
마할랄렐은 65세에 야렛을 낳았다. 마할랄렐은 895세를 살고 죽었다.
야렛은 162세에 에녹을 낳았다. 야렛은 962세를 살고 죽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에녹은 365세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들려 올라갔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고 죽었다.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 라멕은 777세를 살고 죽었다.
노아는 500세에 셈, 함, 야벳을 낳았다. 노아는 950세를 살고 죽었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시간 계산에서 10배가 부풀려진 것이 아니냐라는 주장을 했는데, 그러면 아담은 13세에 , 게난은 7세에 아이를 나은 것이 되므로 생물학적으로 더 말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초기 인류의 수명이 현재보다 훨씬 길었다는 성경 기록에 대해, 몇 가지 주요한 이론들이 있다.
이 이론들은 과학적 가설과 성경적 해석을 바탕으로, 왜 아담부터 노아 시대까지 수백 년을 살 수 있었는지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1. 유전자 손상 축적 이론
초기 인류는 돌연변이 없는 완전한 유전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돌연변이가 쌓이며 수명이 점차 줄어들었다는 주장이다.
2. 자외선과 대기 보호막 이론
대표적인 설명 중 하나는 '수증기 천 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창세기 1장 7절의 "물 가운데 궁창을 만들사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게 하시고"라는 구절을 착안한다.
대홍수 이전, 지구를 둘러싼 두꺼운 수증기층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수증기층은 해로운 자외선이나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인체가 효과적으로 보호되었을 것이며, 온실 효과를 통해 지구 전체에 따뜻하고 균일한 기후를 형성했을 것으로 본다.
3. 기후 및 환경 차이 이론
과거 지구의 산소 농도가 현재보다 높았고, 그로 인해 세포 재생과 면역력 강화에 유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성경의 대홍수가 그랜드 캐니언을 형성했다는 이론은 창조론적 관점에서 제기되며, 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시도한 연구들도 존재한다.
1. 지층의 빠른 퇴적
그랜드캐니언의 두꺼운 지층들은 넓은 지역에 걸쳐 균일하게 쌓여 있다. 이 점을 근거로 홍수 때 엄청난 물과 퇴적물이 짧은 기간에 빠르게 쌓였다는 주장이 나온다.
2. 침식 흔적이 적은 평탄한 지층 경계
지층 경계면이 매우 평탄하고 침식 흔적이나 식물 뿌리 같은 흔적이 거의 없다. 이는 각 지층이 오랜 시간 간격을 두고 쌓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고 빠르게 쌓였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3. 거대한 부정합면
그랜드캐니언에는 약 10억 년의 시간 차이를 나타내는 부정합면이 있다. 홍수론에서는 이 부정합면이 홍수 때 거대한 침식으로 이전 지층이 깎이고 새로운 지층이 빠르게 쌓인 결과라고 본다.
4. 휘어진 지층(폴드)
일부 지층이 부서지지 않고 부드럽게 휘어져 있다. 이는 암석이 굳기 전 연약한 상태에서 휘어진 것으로, 여러 지층이 거의 동시에 퇴적된 뒤 급격한 지각 변동을 겪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5. 빠른 침식 가능성
홍수 후 거대한 물의 흐름이 현재 그랜드캐니언의 깊고 넓은 협곡을 빠른 시간 내에 파냈다고 본다.
내 앞에서 강연하신 박사님은, 자신이 믿는 이론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셨다.
교인 대부분은 그 내용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고, 특별히 크게 의심하거나 거부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나는 크리스천이지만 '왜?'라는 생각을 계속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강의 내용보단 오히려 중간중간 나오는 농담에 더 크게 반응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들도 자신이 믿는 바를 전하려 애쓰며, 각자의 청중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찾아보며, 강의 중 들은 내용에 반하는 의견도 읽어보았다.
반대 입장
주류 지질학계는 그랜드캐니언이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었다고 본다.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환경에서 퇴적물이 쌓였고, 오랜 시간 동안 침식과 지각 융기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정합, 폴드(지층의 휨), 여러 층의 퇴적구조는 수억 년에 걸친 지질학적 변화의 결과이며, 홍수지질학적 해석은 과학적 증거와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많다.
이 강의는 누군가에겐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갔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작지만 강한 궁금증을 남겼을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삶을 바꾸는 유레카의 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미국에 있을 때, 교회 목사님께서 한 번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대체로 남자보다 여자가 믿음이 더 좋다.”
그분은 정말 똑똑하신 분이었다. 말에 힘이 있고, 기세가 있었다. 목사가 되기 전엔 주얼리 샵을 운영하시던 사업가였다. 사업이 잘 풀려 돈도 많이 벌고 계시고 LA에서 가장 비싼 지역에 집도 가지고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주에 지점을 내기 위해 비행기를 타셨는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곧장 하던 사업을 모두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인생도 있구나’ 싶었다.
목사님이 여자들이 더 믿음이 깊다고 하신 말은, 내 생각엔 여자는 마음으로 믿는 힘이 더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어딘가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 대상이 신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여자는 대체로 공감 능력이 높고 감성적인 면이 있어서, 무언가를 믿는 데 있어서 자연스러운 확신이 생긴다.
반면 남자들은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편이다. ‘왜?’라는 질문을 끝까지 파고들고, 이해가 되어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강의해 주신 공학 박사님도 그런 분이었다. 공학하는 사람으로서, 성경 속 이야기들이 자연 속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될 때 감동과 희열을 느끼며 믿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들은 일단 확실한 근거나 주장이 뒷받침되면, 그 믿음이 더 강해지고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믿음을 전파하는 힘도, 여자보다 더 크고 강한 경우가 많다. 그게 남자들이 가진, 여자들과 다른 힘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별로 없고, 다들 삶이 바빠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나마 끄적여 본다.
오늘의 결론,
꽃이 참 예뻤다.
운동이나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