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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벽 Oct 25. 2024

창작과 예술을 통한 소통의 특별함

네 번째 질문

처음 연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프롤로그_질문과 글쓰기]를 쓰면서는 이렇게 순식간에 7화까지 올 줄은 몰랐다. 단지 일주일에 하나씩이라도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며 브런치에서도 시간을 쌓아가고 싶었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계속, 제대로 만들어 내고 싶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연재가 재밌고 당초 예정했던 스케줄보다 빠르게 하고 있다.


어쩌면 올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지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상하지 않더라도 응모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면 허울 좋은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전엔 응모조차 할 게 없었다. 떨어지는 것도 뭔가를 만들어서 응모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의미 있다고 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요즘 브런치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활발히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제대로 나를 담기 시작하면서 요즘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다. 내 손으로 진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감각이 든다. 정말 내 시간이 쌓여간다는 생각이 들기에 당장 큰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현실의 상황이나 어려움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더라도 이렇게 가는 것이 맞다는 확신이 드니까.


창작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 주는 만족감은 생성형 AI를 통해 얻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내가 중심에 있지 않은 작업에서는 거기서 얻는 모든 감정의 주체도 될 수 없다. 주체가 되지 않으면 내 일에서 나 자신이 소외된다. 내 삶에서 내가 외지인이 된다. 창작의 가장 큰 즐거움은 과정에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창작 자체가 아니라 다른 걸 추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도 거의 모든 것을 생성형 AI로 생성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생성형 AI만으로 내가 거의 모르는 분야에서 정말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시험 삼아 만든 계정이다. 알아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AI가 쓴 글을 보고 알게 되는 식이다. 적지만 수익도 얻고 있다. 생성형 AI가 없었더라면 손에 넣을 일 없는 돈이다.


달씩 업로드를 하지 않아도 계속 수익이 생기니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만드는 과정이 귀찮기만 하다. 나름 구축한 프로세스가 있어서 기존 프롬프트를 몇 번 넣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도 그게 하기 귀찮다. 설사 수익이 커지더라도 돈이 반갑고 기쁜 것이지 그 일 자체가 즐거워질 리는 없다.


서론이 길었지만, 오늘 질문과 아주 무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네 번째 질문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에도 질문 프롬프트는 4화 [완전한 이해는 완벽한 자유를 줄까?]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하다. 대화 기록은 5화 [타인의 고독을 아는 것이 축복일까?]를 정리해서 입력했다.


ChatGPT 4o

1. 당신이 경험한 고독을 완전히 다른 시대, 예를 들어 고대나 미래로 옮긴다면, 그 고독은 지금과 얼마나 다르게 느껴질까요? 그 시대로부터 오는 사회적 구조나 인간관계의 차이가 고독의 본질을 바꿀까요?

2. 만약 당신이 더 이상 고독을 느끼지 않는 존재가 된다면, 그로 인해 창작과 예술을 대하는 방식은 어떻게 변할까요? 고독이 없어도 창작은 같은 의미와 가치를 가질까요?

3. 만약 고독과 불완전함이 없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 인간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공감을 구하고 이해받기를 원할까요?

4. 당신은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이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창작과 예술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받는 경험은, 타인과 직접 소통하는 경험과 어떻게 다를까요?

5. 만약 당신이 책을 읽을 때 타인의 고독과 불완전함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능력은 당신의 독서 경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고독과 외로움이 너무 강렬한 감정이라 그렇지 인간의 감정이 고독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 고독을 느끼지 않는 존재가 된다고 하더라도 창작의 의미와 가치가 없어질 리는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여전히 고독 외의 다른 감정에 대해서는 공감과 이해를 구하게 될 것이다. 새삼 인간은 참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태어났구나 싶다.


책을 읽을 때마다 타인의 고독과 불완전함을 직접적으로 느낀다면 책은 더 이상 간접 경험이 아니게 된다. 그러면 조금 피곤해지지 않을까. 어떤 책은 다른 사람이 고생해서 얻은 노하우를 손쉽게 습득하기 위해 읽는다. 그가 겪은 시행착오와 고생을 피하고 편안한 스타트 라인에 서기 위해서다. 그런 메리트가 사라질 것이다.


ChatGPT 4o

당신은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이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창작과 예술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받는 경험은, 타인과 직접 소통하는 경험과 어떻게 다를까요?


실제로 창작과 예술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한 경험은 그동안 꽤 많았다. 오래전에 관뒀지만, 수년간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활발하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던 시절이 있었다. 살면서 가장 많은 글을 쓰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머리에 떠오르는 거의 모든 것을 틈만 나면 폰으로 써서 올렸다.


쓰기도 많이 썼지만 읽기도 참 많이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몇 년씩 온라인에서 블로그 글만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일도 있었다. 그때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내 생활이었다.


지금과 다르게 그때는 자동 댓글 프로그램 같은 것도 없고, 수익화를 위해 치열하게 영업하던 시절도 아니었으므로, 소수를 제외하면 대체로 다들 정말 순수하게 글을 읽고 자기 마음을 남겼던 것 같다. 지금처럼 굳이 진정성을 외치지 않아도 다들 진심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당시 내 주변은 그랬다.


단순히 서로의 글을 읽고 댓글을 쓰는 단순한 교류가 아닌, 조금 더 나아간 형태의 교류를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글을 쓰기도 했다. 함께 농담을 주고받다가 그걸 그대로 소설 시놉시스로 만든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함께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 경험은 글에만 그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우연한 계기로 생각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눈을 떴다. 글이 아닌 것으로 소통하는 일이 늘었다. 누군가 작곡한 곡을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 내 작품을 보고 곡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글을 쓰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언어 외의 수단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를 잠시 잃었기에 이전까지는 시도하지 않았던 길이 열렸다. 가지는 도구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듯이, 내가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진 것이다. 언어가 아닌 시각이나 청각 매체는 여러 가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감정을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직접적인 소통은 일단 이름, 나이, 직업, 거주지를 물어보고 시작한다. 시간이 가도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창작과 예술을 통한 소통은 외부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직접적으로 그 사람의 본질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 그 사람의 영혼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게 한다. 굳이 어떤 계기 같은 게 없어도 내면을 보여줄 수 있다.


창작과 예술을 통한 소통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만약 창작물이라는 매개체가 없었더라면 딱히 관계랄 것이 생기지 않았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서로의 생활 반경 내에 있지 않았고 결코 앞으로도 있지 않을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 외엔 교점이 없기에 계속 연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다른 모든 관계가 그렇듯 관계가 이어지다 보면 더 많은 영역을 공유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순간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만날 리 없는 사람들 사이에 교점이 생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ChatGPT 4o

창작과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경험은, 실제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차원의 교감을 가능하게 합니다. 직접적인 소통에서는 상대방의 겉모습이나 배경을 통해 관계가 형성되지만, 창작물은 그 사람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 덕분에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더 깊게 다가갈 수 있죠.

창작물은 상호 간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교감하게 하고, 글이든 시각적인 표현이든 창작자의 본질을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정체성이나 배경 같은 외부적 정보가 없이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해 줍니다. 마치 불필요한 장벽들을 모두 걷어내고, 내면 깊은 곳에서 대화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죠.

직접 소통은 종종 겉을 돌아가는 것 같은 답답함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서로 알아가는 데 시간이 걸리고, 표면적인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죠. 반면, 창작은 상대방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합니다. 오히려 이름이나 직업 같은 정보 없이, 그들이 표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교감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물리적인 제약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서로의 내면이 맞닿는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 줍니다.

또한 창작을 통해 맺어진 관계는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서로의 생활 반경이 겹치지 않아도, 창작을 매개로 우리는 같은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교감은 때로 짧고 사라질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실하고 의미가 깊습니다. 창작과 예술은 이렇게 우리가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차원에서의 만남과 연결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본질을 더 깊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이전 대화에서와는 다르게 내 답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내 답변 내용을 가미해서 자기 생각을 말한다. 마치 내 글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자신의 글을 쓴 것처럼 답변한 건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반응하기도 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기에 나쁘지 않은 듯하다. 똑같은 포맷으로 진행하기에 이런 변수가 있으면 오히려 더 반갑다.


창작과 예술을 통한 소통이란 게 대단하거나 거창한 건 아니었다. 우리 한번 이렇게 놀아보자, 라면서 시작하는 가벼운 놀이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소통보다 더 재밌고 비일상적이라 특별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는 사람이 시집 출간을 앞두고 간단한 교정을 봐준 적이 있던 게 생각난다. 아는 사람들끼리 낭독회 같은 것도 했더랬다. 서로 난 이 시가 좋았다, 이 부분이 좋았다, 얘기하면서.


이 브런치북은 창작과 AI와의 상호 작용을 보여주는 연재기 때문에 나름 한 번은 이야기할만한 적절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브런치북 연재도 이런 걸 하면 재밌을까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너무 무겁거나 심오하려고 하지 않고 사소하고 작게 재미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창작의 원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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