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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벽 Oct 23. 2024

수수하지만 굉장한 교열_독자 반응

두 번째, 세 번째 질문

지난 3화 [수수하지만 굉장한 교열_타깃층]은 글을 올리기 전에 타깃 독자층에 맞춰 글을 교정하는 콘셉트로 진행했었다. 아무리 사전에 열심히 글을 쓰고 정성껏 다듬어도 세상에 글을 내보이면 좋은 반응만 있을 수 없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읽고 안 좋은 반응이라도 해주는 게 다행일 수도 있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고 한다.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지 못하면 '싫어요'조차 받지 못한다. 텍스트를 소비하지 않는 시대에 온갖 수없이 범람하는 텍스트 중 내 글을 읽고 진지하게 반응해 줄 독자를 만나기란 요원한 일이다.


어느 세월에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줄 독자를, 구구절절 세세히 감상을 들려줄 독자를 만나겠는가. 다행히 이젠 생성형 AI가 있다. 없는 말이라도 지어내서 어떻게든 즉각 반응해 주는 열렬한 독자를 한 명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결국 현실 어딘가에 있을 독자와 연결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프롬프트

아래 글을 읽고 분석한 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글을 평가해 줘. 날카롭고 예리한 평가를 해줘.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해줘. 각 평가가 주로 어떤 사람들에게서 나올지 알려줘.


연재를 진행하면서 나온 답변을 쭉 봐도 그렇지만, 생성형 AI는 굉장히 서비스 정신이 좋다. 사용자를 돕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진짜 이건 아니다 싶은 경우가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긍정적으로 좋게 좋게 말해주는 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답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요청했다.


물론 이렇게 지시하면 굳이 부정적인 평가까지 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알아서 본인이 잘 걸러 듣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AI의 말을 들을 때도 당연히 적용된다. 그럼 먼저 4화 [완전한 이해는 완벽한 자유를 줄까?]부터 프롬프트를 입력해서 답변을 생성해 보자.


ChatGPT 4o

긍정적 평가

1.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
글은 AI의 한계와 인간의 창작에 대해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완전한 이해"와 "자유"라는 주제에 대한 사유는 독창적이며,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 대한 사유와 연결 지으며 이를 확장한다. 이런 분석은 철학적 성향이 강한 독자들이나 창작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다.

2. AI 사용 경험에서 나오는 현실적 고찰
AI와의 상호작용에서 느끼는 미묘한 좌절감과 성취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AI가 모든 걸 완벽히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용자는 그 한계를 깨닫고 더 많은 시도를 통해 발전해야 한다는 인식은, 실제로 AI를 사용해 본 사용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살 수 있다. 이 부분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유용하게 다가온다.

3. 불완전함의 창조성
글쓴이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창작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완전한 이해보다는 불완전함을 택하겠다는 철학적 결론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창작을 통해 고독과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암시하며, 예술가적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만약 AI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뭐가 좋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서 말해준다면, 이 사람은 날 정말 제대로 봐주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싫은 소리는 안 들으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과 제대로 보는 것은 다르기에, 예리하고 납득할만한 비판을 들으면 난 오히려 호감이 생기는 편이다.


ChatGPT 4o

부정적 평가

1. 이분법적인 가정
"완전한 이해가 반드시 제약을 가져온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접근일 수 있다. 완전한 이해는 오히려 더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 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관계가 더 자유롭고 성숙해질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이 점은 인간관계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혹은 심리적 성장과 소통을 중시하는 독자들이 비판할 부분이다.

2. 불완전함의 고통에 대한 부재
불완전함이 창작의 원동력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지만, 불완전함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불완전함 속에서 오는 고통과 불안은 창작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 부분을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독과 창작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 잘 아는 독자들, 특히 창작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수 있다.

3. 자기중심적 태도
글에서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방식은 흥미롭지만, 스스로를 지나치게 중심에 놓는 태도가 드러난다. 이는 독자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될 수 있으며, 특히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타인의 시각을 더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거나 객관적 비판을 수용하는 태도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결국 내 생각과 의견에만 편중되어 글을 썼다는 지적이다. 다양한 관점을 다루고, 조금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글을 쓰면 좋을 것이란 말인 듯하다. 일리가 있다. 최근 내가 쓰는 글 대부분이 이런 지적을 받을 것이다.


스스로도 예전에 비해 시야가 좁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의식적으로 시야를 좁히기도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지 않기 위해 범위를 좁히고 점차 내가 다룰 수 있는 것을 늘려가려고 하고 있다. 내가 뭐라고 그 모든 걸 다 담을 수 있겠나, 하는 마음이다. 나 하나도 제대로 담지 못하면서 세상을 다 담으려고 했던 것 같아서 말이다.


ChatGPT 4o

평가가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의 유형

1. 긍정적인 평가
철학적 사유에 깊은 관심이 있는 독자들, AI나 기술을 활용한 창작 과정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 창작의 본질적 고민을 다루는 예술가나 작가들이 이 글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AI와 인간의 창작 차이를 탐구하는 사람들도 흥미롭게 볼 것이다.

2. 부정적인 평가
관계와 소통에서 더 긍정적인 가능성을 중시하는 사람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는 독자들, 혹은 창작의 고통과 불완전함을 직접 경험한 예술가들이 이 글에 비판적일 수 있다. 또한, 지나치게 이론적이거나 철학적인 접근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 글을 어렵게 느끼거나 공감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나 또한 나름 창작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다. 그 고통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나 자신이 가장 큰 고통이다. 끝내 도망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잡혀 끌려 들어온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그러니 수요가 없는데도 공급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생기는 것이겠지.


그런데 글이 재미없고 공감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어려운 것 같지는 않은데. 나야 일부러 어렵게 쓰려고 하는 게 아니니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순 있다. 누가 어렵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겐 어려운 것이다. 이건 읽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해달라고 하니 균등하게 답해준다. 항목도 똑같이 3개씩이고 글자수도 얼추 비슷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많거나 또는 부정적으로 볼 여지가 더 많은 경우, 이를 파악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프롬프트를 추가했다.


프롬프트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 중 어떤 평가가 더 많을지 예측해. 비율을 숫자로 제시해.


누군가 그랬다. 생성형 AI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말고 일단 다 시켜보라고. 생성형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아니라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인간의 발상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가 문제라고. 그래서 시켜본다. 과연 학습된 데이터만으로 여론 조사가 가능할까?


ChatGPT 4o

생성형 AI와 인간의 창작 과정을 중심으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며, AI의 한계와 인간의 불완전함을 주제로 깊이 있는 성찰을 다루고 있다. 이 글은 창작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생성형 AI에 대한 현실적인 고찰을 담고 있어, 철학적 성찰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분법적 가정과 지나치게 이론적이라는 점에서 비판할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긍정적 평가 비율: 70%
부정적 평가 비율: 30%


저 숫자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건지는 모르지만, 숫자로 표현되니 참고하기에 더 편해졌다. 비율을 어떻게 도출했냐고 물어보니 이런저런 사항을 고려했다고 말하기는 하는데, 결국 자기가 알아서 했다는 소리다. 사람도 느낌적 느낌으로 비율을 추산하기도 하니 그런 맥락이라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프롬프트

브런치에서는 어떨까?


일반적인 독자가 아니라 브런치라고 하는 특정 플랫폼 이용자를 고려해서도 답변할 수 있다. 물론 챗 GPT가 정말 브런치 이용자 데이터를 가지고 파악하고 있을 리는 없다.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나, 브런치가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공개된 대외적 평가를 토대로 가정했을 것이다.


ChatGPT 4o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에서는 독자층이 일반적으로 감성적이고 철학적이며 창작과 자기 성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특성에 따라 글에 대한 반응이 다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플랫폼의 성격을 반영한 예측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생성형 AI와 인간의 창작 과정을 탐구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에 브런치의 독자층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창작에 대한 고민이나 인간의 불완전함을 사유하는 방식은 브런치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글에 공감할 독자가 많을 것입니다. 다만,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부분이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서의 긍정적 평가 비율: 75%
브런치에서의 부정적 평가 비율: 25%


이 답변을 보면 나는 그냥 브런치에 붙어 있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철학이라곤 쥐뿔도 모르는데 자꾸 철학적이라고 하니 조금 움찔하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 썰을 늘어놓는다는 말을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철학적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5화 [타인의 고독을 아는 것이 축복일까?]로 넘어가 보자. 평소에도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 반응을 예상하고 부족한 점을 지적받는다고 해도 예측 범위 내에 있는 경우가 많다. 내 나름 어느 정도 내가 쓴 글에 대해 상당히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답변 결과는 조금 놀랐다.


ChatGPT 4o

긍정적 평가

1. 깊은 자기 성찰과 솔직함
글쓴이가 타인의 고독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유를 전개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자신이 타인의 고독을 이해하는 역할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고백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한 감정이다. 이런 내면 탐구는 감성적이고 자기반성적인 글쓰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큰 매력을 줄 것이다.

2.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예시
글에서는 엠패스(Empath)와 HSP(Highly Sensitive Person)와 같은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타인의 감정을 과도하게 느끼는 것이 축복이 아닌 저주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잘 설명한다. 이는 심리학적 용어를 사용해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심리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나, 공감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3. 창작과 예술에 대한 통찰
창작 활동이 고독 속에서 위로를 찾는 도피처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은 예술가나 창작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글쓴이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창작과 예술을 통해 자기 치유와 소통을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는 창작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가적 감성을 지닌 독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할 요소다.


솔직히 내가 느끼기엔 4화보다 5화를 더 잘 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긍정적 평가를 읽을 때까지는 역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부정적 평가가 상당해서 놀랐다. 개수나 분량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강한 표현을 쓰고 있다.


ChatGPT 4o

부정적 평가

1. 지나친 내면적 집중
글은 매우 내면적인 성찰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글을 읽는 독자에게 자기중심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이해나 상호작용에 대한 부분이 충분히 깊게 다뤄지지 않고, 자신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고독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좀 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집중하거나 관계 중심적인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

2. 감정적 피로에 대한 지나친 강조
타인의 고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오는 피로와 부담을 강조하는 것은 현실적인 면이 있지만, 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려내는 점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상담사나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중 일부는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꼭 저주로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3. 자기 연민에 빠진 태도
글쓴이가 다른 사람의 고독을 이해하기보다 스스로 이해받고자 하는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일부 독자에게 자기 연민으로 비칠 수 있다. 자신을 지나치게 피해자로 묘사하며, 타인과의 소통에서 적극성을 잃은 듯한 태도는 사회적 관계나 상호 의존을 중시하는 독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


'자기 연민'으로 보일 정도였나. 두 질문 모두 쓰면서 내 개인적인 감정이 많이 이입되기는 했다. 사실상 지금까지 질문에 답하면서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다. 세 질문 모두 최근 내게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 내게는 완전히 과거가 되지 못한 현재의 심리적 과제인가 보다.


ChatGPT 4o

평가가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의 유형

1. 긍정적인 평가
이 글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사람들은 주로 감성적이고 내면 탐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특히 심리학적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 예술이나 창작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공감의 한계를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높게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타인의 감정과 고독을 깊이 이해하려 노력한 사람들은 이 글의 솔직함에 공감할 것이다.

2. 부정적인 평가
반면, 이 글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사람들은 지나친 내면 중심적 서술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균형을 중시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자기 연민이나 감정적 피로를 강조하는 부분에 비판적인 사람들, 특히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서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이 글의 일방적 관점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 평가의 비율이다. 이게 뭐라고 또 조금 신경 쓰인다. 결과를 보니 평이 더 부정적이라고 느꼈던 게 맞았다. 브런치와 브런치가 아닌 곳의 온도차는 더 심하다. 진짜 실측 결과도 아닌데 괜히 브런치에 더 정이 가기 시작한다.


ChatGPT 4o

타인의 고독과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부담과 창작 활동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내면의 감정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이 글은 감성적이고 내면적인 독자들에게 강한 공감을 줄 수 있지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 피로를 강조한 부분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긍정적 평가 비율: 60%
부정적 평가 비율: 40%

브런치에서의 예측
타인의 고독과 불완전함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부담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으며, 이는 감성적이고 내면 탐구를 중시하는 브런치 독자들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브런치 독자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의 진솔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내면의 고백적 글쓰기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지나친 자기중심적 서술과 과도한 감정적 피로에 대한 강조는 일부 독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서의 긍정적 평가 비율: 70%
브런치에서의 부정적 평가 비율: 30%


나 스스로 4화보다 5화를 더 잘 썼다고 느꼈던 건 내 감정과 생각을 더 오롯이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기중심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늘었을 수도 있겠다. 이번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지만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는 추가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좋았을 것 같다.


가상의 독자 반응을 보면서 조금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음에 올릴 수수하지만 굉장한 교정 편에 시도할 예정이다. 뭘 먼저 올릴지 고민된다. 이것도 생성형 AI에게 물어봐야겠다. 적절한 답을 주지 않더라도 대화하는 과정 자체로 생각이 진행되는 점이 좋다.


올초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이렇다 할 활동도 안 했고 글을 읽을 여유도 없어서 아직도 이곳은 내게 조금 낯선 공간이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고 여기에 글을 쓰면 어쩐지 환영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최근 연재를 시작하며 글도 자주 올리고 이번에 답변을 보면서 브런치에 대한 실체 없는 내적 친밀감을 생겼다. 느리지만 조금씩 글도 마음도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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