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생신날, 크레이프 케이크 조각의 모서리를 포크로 푹 찍으려던 외삼촌을 나는 다급히 막아섰다. 다행히 케이크 표면에만 포크 끝이 살짝 찍힌 자국이 났다.
크레이프 케이크는 누가 뭐래도 빵 층과 크림 층을 함께 포크로 돌돌 말아서 한 층 씩 벗겨 먹는 것이 제맛이다. 조금 얇아서 아쉽다 싶으면 조금 더 두껍게 말아도 되지만 여하튼 핵심은 여느 케이크와 달리 수직적 접근을 해서는 안되고 수평적 접근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포크로 푹 찍어먹으나 말아서 먹으나 빵 층과 크림 층이 동등한 비율로 섞여 있어서 맛에서는 그게 그거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정확히 어떤 이유를 대면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다르다. 포크를 감싼 크레이프를 보는 것이 케이크의 맛을 더 돋울 수도 있는 것이고. 세상에는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다.
이 날은 덕분에 어르신들께서 모두 나의 안내에 따라 케이크를 천천히 돌돌 말아 드셨다. 케이크를 사 간 사람으로서의 발언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웃기다면서도 케이크를 말아 드시는 외할머니를 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이 주제에서는 아보카도 또한 중요하게 다뤄질 만하다.
아보카도를 처음 먹은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4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저녁밥을 다 먹었는데 엄마가 생전 처음 보는 과일을 상에 놓았다. 처음에는 과일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입에 넣는 순간 너무 맛이 없어 깜짝 놀랐다. 그것도 아주 생소하게 맛이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그 맛에 아보카도는 다시는 먹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제대로 된 아보카도의 맛을 어디서 다시 알게 됐더라. 그 중요한 순간이 언제였는가는 불분명해도 나는 아보카도 마니아로 급선회하게 된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 만난 아보카도는 아마 상당히 신선한 상태였던 것 같다. 하나도 익지 않은 떫은맛.
아보카도를 직접 사먹는 어른이 되고 나서 ‘후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 지금도 늘 성공하지는 못한다. 초록색 아보카도를 실온에 꺼내 두고 2~3일 정도 후에 껍질이 까맣게 변한 상태에서 먹으면 주로 원하는 맛을 볼 수 있었다. 딱 좋게 익었을 때의 아보카도는 왜 ‘숲 속의 버터’라는 별칭이 붙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만한 맛이다. 사실 버터보다도 고소하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레몬즙을 뿌려 먹으면 다소 느끼할 수 있는 부분을 상쇄해주면서 딱 좋은 맛이 된다.
비슷한 원리로 피클과 먹어도 맛있고, 나의 경우에는 명이나물 장아찌를 잘라 함께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보카도에 장아찌만 함께 먹어도 좋고, 밥과 함께 덮밥처럼 먹어도 잘 어울린다.
잘 익은 아보카도는 과카몰리를 해 먹어도 맛있다. 여러 번 해본 것처럼 적었지만 사실 과정을 굉장히 간소화해 딱 한 번 해 본 경험이 있다. 남편이 남자 친구였던 시절, 레일 바이크를 타러 김유정역으로 떠나는 피크닉 간식이었다.
아보카도를 딱 맞게 후숙 해서 잘 으깨고, 양파와 토마토를 잘게 썰어 넣고, 소금도 적당히 잘 넣은 것까지는 좋았다. 다만 레몬즙을 조금 더 넣는다는 것이 너무 들이부은 모양이었다. 간도 좀 보고 나갔어야 했는데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맛이 너무 궁금해서 레일 바이크를 타려고 줄을 선 채 꺼내 먹어본 과카몰리는 너무 시었다.
갈비는 뜯어야 제 맛-사실 개인적으로는 먹기 좋게 살코기만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이라고 하고, 영국에서는 잔에 홍차와 우유 중 무엇을 먼저 부어야 하는가를 두고 홍차 먼저(MIA, Milk in After) 파와 우유 먼저(MIF, Milk in First) 파가 대립하고 있다고 하고, 핫도그는 빵 먼저 소시지는 나중에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이들이 넘치고, 탕수육은 부먹파와 찍먹파가 여전히 소스 그릇을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고. 어떻게 먹는가는 이렇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