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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Dec 05. 2024

나마스테 원당봉 요가원

그날 이후 원당봉 외출은 낮에만 감행했다. 나름의 추론으로 그 할머니와 마주칠 확률이 적은 시간, 정오 즈음에 원당봉으로 몸을 숨겼다. 4층 건물의 실체를 마주했으나 호기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에이포 용지와 유리 미닫이문 사이로 보이던 요가원의 풍경이 내가 알던 요가원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태권도장에서 보던 초록색 퍼즐매트 같은 게 바닥을 뒤덮고 한쪽에 나무로 된 긴 탁자와 책이 빼곡한 키가 작은 책장이 놓여있었다. 단출한 차림새의 요가원에서 열린 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텁텁한 인센스 향기가 코끝에 남아있다.

그날 저녁 네이버에 원당봉 요가원을 검색했으나 최신 글이 2년 전 2022년도 글이었다. 제주로 요가 여행을 와 1회 수련 체험을 한 서울 여자의 이야기는 ‘자유롭다’가 요점이었다. 자유로운 요가? 안 자유로운 요가도 있나?

그곳에 대한 또 다른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러다 며칠 뒤 자는 도중에 기지개를 켜다 직접 가보라는 몸의 신호를 받았다.


수면에 잠긴 채 몸을 돌리며 무릎을 펴 다리를 쭈욱 뻗는 순간 ‘이거 큰일 났다’라는 본능적 생각이 종아리 근육을 타고 올라왔다. 일말의 빛도 용납하지 않는 암막 커튼의 효과로 탄광과도 같은 어둠 속이었다. 오른쪽 종아리에서 주먹보다 작은 돌멩이가 생성되었고 자신을 캐내어 달라고 온몸으로 비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통증이 곧 끝나리라는 걸 알면서도 새우처럼 등을 둥글게 말고 힘들게 바짝 독이 오른 돌멩이를 쥐어짜니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흐으으읍. 과한 단단함에 순식간에 잠은 달아나고 식은땀이 났다. 종아리 알이 수축해서 죽는 건가 싶다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며 쥐에서 벗어났다. 단기기억 상실증에서 돌아온 다리는 후유증인 건지 자주 쥐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또다시 ‘죽어야지’ 생각은 잊어버린 채 다시는 이런 쥐가 나타나지 않게 방도를 찾아야 했다. 증발하고 싶다는 마음은 단어처럼 증발했다.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어떤 신호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통장 잔고 867만 4670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개월 정도의 쓸 수 있는 돈.

원당봉 요가원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원당봉 요가원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꼬박 보름 넘게 망설였다. 은둔 생활 4개월. 외출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그 사이 내가 대면 한 사람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하면 그때 그 건물에서 마주친 할머니가 유일하다.

요가원.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머무를 수 있을까. 차라리 아는 사람이 없어서 더 낫지 않을까. 굳어있던 몸이 움직일 수 있을까. 머릿속에 먹구름이 잔뜩 낀 내가 누군가의 말에 집중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장벽을 연달아 만들어낸다. 동시에 가고 싶은 마음도 서서히 자라났다. 산책을 시작한 후 습관적 우울과 비관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며 희미한 의지 같은 게 생겨났다.


똑똑똑.

생각을 끊어내는 노크 소리에 자연스럽게 걸어가 문을 연다. 이제 다리는 어느 정도 기억을 찾아 기합이나 신호로 독려하지 않아도 된다. 빳빳한 반투명 비닐을 집어 들자 고소한 기름냄새가 미각을 자극한다. 현관에서 모처럼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본다. 이제는 잘 씻어 기름지지는 않았지만 어깨까지 자란 머리카락이 푸석하다.  눈 속 습관화된 우울은 조금은 가신 듯하다. 손에 들린 치킨 때문은 아니다. 허연 피부에 얼굴은 더 커 보이고 동그래진 팔뚝과 색이 바랜 검정 티 아래로 실루엣이 드러나는 배를 보니 한숨이 나온다. 허벅지 사이가 가까워졌다. 눈 보디로 보아하니 65킬로는 나가 보인다. 키가 160인데……. 식욕이 더욱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거울에서 시선을 거두어 테이블로 간다. 봉지를 여미던 테이프를 떼고 치킨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연다. 비비큐 치킨 특유의 고소한 올리브유 향이 눈 보디로 인해 조금 떨어진 식탐 옆구리를 찌른다. 다리를 집어 들어 크게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한 튀김옷 속으로 뜨끈한 기름과 촉촉한 다리 살이 느껴진다. 속도를 내어 씹은 후 또 한입 베어 문다. 치킨은 언제나 옳다. 이삼일에 한 번꼴로 시켜 먹는 배달음식 중 가장 질리지 않는 것이 치킨이다. 열심히 먹어도 반 마리가 남아서 좋다. 남은 건 햇반을 데워 치밥으로 먹으면 두 끼. 조금 아껴먹으면 세 끼까지 가능이다. 오늘은 넉넉히 반 마리를 먹어야지 생각하다 테이블에 놓인 탁상 거울과 눈이 마주친다. 처량한데 신나 보이는 게 아이러니다.


자기 전 그곳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기에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도 나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냥 가서 수련만 하고 오면 된다. 그 할머니는? 뭐… 나를 기억하겠는가? 또 기억하면 어떠하리.

오늘은 부디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지 않기를 바라며 눈을 감는다. 사방이 조여오지 않는다.


눈을 뜨니 새벽 5시 반. 어제저녁을 일찍 먹어서인지 아니면 조금은 사라진 무거운 기운 때문인 건지 몸이 무겁지 않다. 커튼을 여니 여전히 깜깜하다. 늘 그래왔듯이 할 일이 없다. 넷플릭스나 볼까 하며 아이패드를 잡으려다 침대맡에 내려두고 일어선다. 머리를 질끈 묶고 눈곱을 떼고 잘 때 입었던 검정 티와 트레이닝복 바지에 야상을 걸치고 밖으로 나선다.

원당봉 방향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야상에 달린 후드를 쓰고 한껏 웅크린 채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늘 걷던 방향으로 비슷한 속도로 걷는다. 누구를 마주쳐도 놀라지 말자 다짐했건만 이상하게 오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길 끝에 다다른다. 건너가면 원당봉 왼쪽으로 꺾으면 요가원. 오는 길 내내 고민했다. 오늘은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 핸드폰을 눌러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56분. 왼쪽으로 꺾어 건물 입구로 들어가 속도를 내어 계단을 밟는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용한 인도풍 음악과 텁텁한 인센스 향기가 맞이한다. 가운데 전기난로 두 개가 노란빛을 발산하며 훈훈한 공기를 내뿜고 있고 난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대여섯 명이 마사지 볼을 하거나 누워서 폰을 하거나 담요를 덮고 있다. 새벽에 마주쳤던 얼굴들이 있어 괜히 알아볼까 민망하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안쪽 좌식 탁자에 앉아있다. 선생님과 눈인사를 하고 살금살금 그쪽으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봉투에 담아 온 2만 원을 건네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일일 체험하러 왔습니다. 화장기 없는 마알간 얼굴에 커트머리를 한 선생님의 쌍꺼풀 없는 유난히 큰 눈이 나를 응시한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며 봉투를 받으시고는 말한다. 네 어서 오세요 편하신 데 가서 앉으시고 옷은 옆에 벗어놓으시면 됩니다. 짧은 인사 후 몸을 돌려 문 옆 오른쪽, 선생님과 제일 거리가 먼 구석으로 간다. 야상을 벗어서 옆에 개어 놓고 양말을 벗어 그 옆에 놓은 후 앉는다.


심장소리가 머리까지 울린다. 일어나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괜히 왔나. 잠이나 잘걸. 원당봉이나 갈걸. 불안함에 가슴이 답답하다. 휴우……. 숨을 길게 토해낸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빨라진 호흡을 고른다. 뜨끈한 바닥과 훈훈한 실내 공기 덕분인지 긴장이 서서히 가라앉자 인생 첫 요가의 추억이 떠오른다.


요가를 처음 만났던 건 5년 전 첫 직장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다. 입사 동기는 최근 요가를 배우는 데 너무 재미있다며 같이 다니자 권했다. 당시 나는 늦은 나이에 전공과는 대척점에 있던 직장 생활을 시작해 업무와 사회생활에 허덕이고 있었다. 팍팍한 직장 생활에서 새로 사귄 친구 같은 동기의 청은 외면하기 힘들었다. 한 번만 해봐야지 하고 서른 살에 처음 요가원에 갔다. 평소 집에서 입던 검은색 운동복 바지에 흰색 반팔 티를 입고 수련실 내부로 들어가자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쭈뼛쭈뼛 뒤쪽에 매트가 있는 곳으로 가 공용 매트 하나를 집어 들고 어디에 앉을까 잠시 고민했다. 너무 뒤쪽은 안 보일 것 같았고, 그렇다고 맨 앞줄은 부담스러워서 대충 중간 즈음 거울이 있는 오른쪽 벽면 옆으로 매트를 펼쳐 자리를 잡았다. 안 보는 척하며 곁눈으로 주위를 의식하니 다리를 찢는 아주머니, 누워서 핸드폰을 보는 남자, 마사지 볼 위에 올라타 신음을 뱉는 아저씨, 수다를 떠는 여자들이 보였다. 혼자 어색해하고 있을 무렵 앞문이 열리며 민소매 주황색 탱크톱에 검정 레깅스를 입은 동기가 매트를 가지고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순간 다시 앞 문이 열리며 도인의 향기를 풍기는 사내가 등장했다. 강렬한 민머리. 짙은 눈썹 밑으로 보이는 작은 눈에 강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회색 민소매에 드러나는 팔뚝이 울룩불룩했다. 친구가 귀에 대고 오늘은 아쉬탕가수련이라고 속삭였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수련은 시작되었다. 코끝으로 의식을 집중하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뭔지 모를 신성함을 느끼며 그의 말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요가란 무엇일까.

동작을 따라 할수록 요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수련은 역동적이었다.

옆으로 기울였다 앞으로 숙였다 다리 하나를 들었다 엎드려뻗쳐를 했다 팔 굽혀 펴기를 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동작에 요가인지 피티 체조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막 뜰채로 건져 올린 활어처럼 팔딱거리며 간신히 진도를 따라갔다. 힘들고 땀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번갈아 등장하며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시를 따라가느라 잡생각은 저 우주 너머로 달아났고 매트 위의 내 세상과 연결된 건 오로지 선생님뿐이었다. 그의 멘트 하나하나가 나를 지휘했다. 나는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그의 조종을 받으며 점점 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수련 후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고 결국 한 달을 등록했다. 그러나 첫 요가는 4일 출석으로 마무리되었다.

수습 기간 후 정식 발령이 나자 부서는 칼퇴를 허락하지 않았고 동기에게 선생님이 나를 제자로 삼아야겠다고 한 말만 전해 들은 채 그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라니. 세월의 빠름과 달라진 처지를 생각하는데 인도풍 음악이 꺼지며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데려온다.


자 이제 수련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심장이 세차게 뛴다.


“편한 자세로 앉습니다. 양쪽 엉덩이 균등하게 바닥을 누르고 척추를 가볍게 쌓아 올립니다. 양손 편안히 무릎 위에 올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감은 눈을 통해 코끝을 응시합니다. 코 끝으로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

중저음의 약간 느린듯한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울린다. 눈을 감고 코끝을 바라보니 코 끝에서 얕은 숨이 들락날락한다.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순식간에 눈물이 흐른다.

눈을 감은 채 손을 들어 눈물을 닦는데 계속 흐른다. 터져버린 감정이 주체가 안된다.


“양손 가슴 앞으로 가져와 합장합니다.

고개 숙여 자신에게 인사합니다.

양손 내리고 천천히 고개 들고 눈을 부드럽게 뜹니다.”

붉고 물에 젖은 눈을 뜬다.

캄캄하던 양쪽 창문으로 하늘빛의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힘들다는 생각을 수백 번은 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팔은 덜덜덜 자세히 보면 수전증처럼 보인다. 두피에서 콧등, 겨드랑이, 등, 사타구니까지 땀이 새어 나올 수 있는 모든 곳이 축축해졌다. 야상이 무겁게 느껴질 만큼 진을 뺐다. 조용히 한숨을 길게 내뱉은 후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소리 없이 꾸벅 인사를 하다 눈이 마주 치자 차를 권하신다.

수련 후 누워 있던 사람들이 더러는 일어나 돌아가고 선생님 포함 네 명이 나무 테이블 주위에 앉아있다. 거절하기엔 선생님과의 거리가 멀다. 선의의 눈빛에 이끌려 조심조심 나무 테이블로 다가가자 이미 앉아 있던 사람들이 서로 붙어 앉으며 선생님 맞은편 자리를 비워준다. 매번 나를 놀라게 했던 검은 덩어리와 고양이 밥그릇 할머니가 있다. 행여나 할머니가 나를 알아볼까 긴장한다.


“처음이라 힘드셨죠? 잘 따라 하시던데요! 이 동네에 사세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선생님이 묻는다

“네.”

선생님의 다부진 어깨를 바라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다행히 선생님은 더 질문하지 않고, 포트에 물이 끓어오르자 사과크기 정도 되어 보이는 자사호에 비운다. 뚜껑에 있는 구멍으로 찻물이 솟아 흐르며 절간에서 나는 차내가 올라온다. 차를 따르는 소리, 잔과 받침이 나무 테이블을 가로지르는 소리, 한 모금 한 모금 차를 넘기는 소리 외에는 별말이 오가지 않는다. 고요가 경계를 무뎌지게 만들어서인지 차를 서너 잔 마신 후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잘 마셨습니다.”

용기 내어 꾸벅 인사한다.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차만큼이나 따뜻한 선생님의 대답에 엉겁결에 내뱉는다.

“한 달 등록할게요.”

함께 앉아 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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