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Sep 06. 2021

이기적인 기분 그 너머의 진짜

가려진 진짜를 찾는 일에는 감정이 들어가지않아야 한다.

"엄마, 우리 시장 언제 또 가?"


몇 달 전, 첫째만 데리고 시장을 간 적이 있다. 그날 아이는 무척 즐거워했고 또 가고 싶다며 계속해서 졸랐다. 동생 없이 엄마와 몰래 데이트를 한 것도, 좋아하는 젤리를 가득 사준 것도, 길에 서서 물 어묵 하나 먹은 것도 모두 좋았다고 했다. 흔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아이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다음에 또 가자는 말로 미루다가 지난주, 다시 한번 아이와 시장에 들렀다. 이번에도 첫째만 데려갈 수는 없기에 공평하게 둘 다 데리고 말이다. 기분 좋게 시장 주차장 골목을 들어갔는데 이게 뭐야. 지난번 주차장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좁은 골목은 줄을 선 차들로 가득 찼고, 분명 차 2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인데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여기 왜 이렇게 차들이 기다리고 서있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급히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나오며 확인해보니, 그 차들은 모두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었다. 

문득 든 생각...

오늘이 혹시 장날인가??



물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이 장날이구나.



"얘들아 우리 다음에 시장가자"

"왜? 엄마 왜? "

"아까 차들 줄 서있는 거 봤지? 오늘 장날인가 봐"

"장날? 그게 뭔데?"

"음... 시장에 사람 많은 날^^"

"안돼. 줄 서있다가 주차하고 시장 구경하자.

오늘을 기다렸단 말이야"

"그냥 마트 가면 안될까? 이 줄을 언제 서서 시장을 가..."

"안돼. 우리도 저기 줄 서자 얼른~~!!"


아이는 얼마나 오늘을 기다렸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꼭 오늘 시장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마트에 가는 건 언제든 할 수 있고 마트에 먹을 것도 있는 건 알지만, 오늘은 시장을 가야 한다고 어찌나 이야기하는지. 아이말대로 마트와 시장이 다른 느낌인 걸 알기에 다시 그 골목으로 들어서 주차장 입구가 보이지도 않는 곳에 줄을 섰다.


이미 주차장이 꽉 찼으니 한 대가 나와야 들어가는 상황. 어느 세월에 내 차례가 올까. 1시간을 기다리면 가능할까... 이왕 온 거 즐겁게 기다리자고 해도 지루하고 답답했다. 슬 짜증도 올라왔다.

주차요원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차들을 정리했고, 좁은 골목의 오가는 차들은 자주 꼬였고... 누군가의 고함소리와 빵빵 경적소리는 덤으로 더해져 아주 시끄러웠다. 사설 주차장의 주인아저씨는 자기 차들이 나오는 길을 막았다며 줄 서있는 운전자에게 항의를 했고..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누구 하나 기분 좋지 않았다. 나처럼 오늘이 장날인지 모르고 왔다면 더 그랬을 터. 




좀 편하게 안내를 할 수 없나,

꼭 저렇게 소리를 질러야 하나.

장을 보러 왔을 뿐인데 주차 할아버지한테 계속 혼나는 기분. 30분째 줄 서있는 내 기분은 딱 그랬다. 긴 줄을 서있으면서 주차요원 할아버지의 손과 출차하는 차만 쳐다보다가 끝내 구시렁 소리가 나왔다. 애들이 조금만 양보하면 그대로 돌아갈 수 있는데 얘들은 대체 왜 시장을 가자는 건지. 기분 좋게 나선 외출이 이미 다른 색으로 바뀌어버렸다.



점점 내 순서가 가까워졌고, 닿을 수 없을 것 같이 멀리 있던 주차요원 아저씨는 어느새 뚜렷하게 보였다.

"엄마, 근데 할아버지 목소리가 왜 그래?"

"할아버지 목소리? 왜? 이상해?"

아이의 질문에 다시 주차요원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쉰 목소리가 들렸고 바쁘게 움직이는 할아버지의 몸짓도 보였다. 

짜증스럽기만 하던 상황이 객관적으로 바뀌는 순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공영주차장을 혼자 관리하시는 듯했고, 자리가 있나 없나 3층까지 올라갔다가 뛰어내려오셨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는 운전자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양쪽에서 쏟아지듯 들어오는 차들을 정리하느라 1초도 쉬지 않았다. 감정이 없이 가만히 보았더니 할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계셨다.


"그러네 엄마는 몰랐는데 할아버지 목소리가 쉬어버렸네. 장날이라 차가 많아서 새벽부터 저렇게 크게 하고 말하느라 그러신가 봐. 목 아프시겠다 그렇지?"

"응. 할아버지 힘드시겠다"

"우리 시장 보고 오는 길에 할아버지 줄 음료수라도 하나 살까?"

"좋아. 뭐 사드리면 할아버지가 좋아할까?"

앞에 서있던 2,3대의 차가 마저 들어가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주차요원 할아버지에게 드릴 무언가를 생각해내느라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기다리니 그 시간이 짜증 나지 않았고 수월하게 마지막 대기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할아버지, 이거 드세요"

장을 보고 오는 동안에도 밀려드는 차들로 골목을 꽉 차 있었고, 할아버지는 여전히 바쁘셨다. 빵집에 들러 우리가 먹을 빵을 사면서 할아버지께 드릴 것까지 챙겼다. 하루 종일 소리 지르며 일하느라 허기가 질 것도 같고... 아이도 빵이 좋겠다며 모두 동의한 끝에 딸아이의 손에 들려진 봉지 하나. 아이가 직접 주차요원 할아버지께 전해드렸다.


"아니야 아니야 너 먹어"

손사래를 치시던 할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받으셨다. 






나의 기분 때문에 어떤 이를 좋지 않게 보는 일이 있다. 오해와 선입견에 의해서 그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도 있다. 가려진 진짜를 찾는 일에는 감정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차라리 아이들이 어른인 나보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능통하다. 어른인 나는 이미 마음이 흐려져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혼자였으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아이의 질문 덕분에 감정이 확 변해버렸다. 

기다리는 과정이 기분 좋은 시간은 아니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황을 나쁘게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더 죄송했다. 



아이에게 전하라고 한 빵은 그냥 먹을 것이 아닌, 짜증스러운 상황을 정리해주시는 역할에 대한 고마움이자 자신의 일을 부지런히 해내는 분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오해에 대한 죄송함이기도 했다. 누군가에 짜증이 느껴지면 이기적인 평가가 아닌지 그날을 기억하며 다시 점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의 이기적인 기분, 그 너머의 진짜.

그것을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이전 10화 주택살이, 꿈은 이루어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