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대가리 Aug 25. 2017

안녕하세요, 이원희입니다.

가난한대학생이요.

브런치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네요. ‘가난한 대학생의 남미 배낭여행기’로 시작해서 섬진강 무전여행기, 아르바이트 이야기, 소하동 사람들 등 50편 넘는 글을 썼어요. 재능도 뚝심도 없는 제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브런치에 감사하며 지난 여섯 달을 돌아봤습니다.


먼저는 제 인생을 변화시킨 두 차례의 여행, 섬진강 무전여행과 남미 배낭여행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군대를 막 전역한 스물셋, 돈이 없어 여행을 못하는 게 슬퍼서 충동적으로 떠난 무전여행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섬진강의 아름다움, 전라도의 인심, 지리산의 바람은 가난한 청년이기에 더 깊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글로 옮기니 다시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고, 이기지 못할 싸움을 싸우고, 불가능한 꿈을 꾸라고 했던 돈키호테의 말에 설레던 스물셋의 저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https://brunch.co.kr/@dnjs9523/47

2달 동안 초저예산으로 구질구질하게 돌아다녔던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는 ‘돈이 충분히 있어서 먹고 싶은 모든 것을 먹고, 가고 싶은 모든 곳에 가는’ 여행기들에 신물이 났으니, 가난한 대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여행기를 써보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다 써놓고 보니 궁상도 이런 궁상이 없었습니다. 노숙한 이야기, 현지인과 흥정에 성공한 이야기를 뭐 그리 자랑스럽게 써댔는지. 이거 원. 돈이 없어서 한 게 별로 없으니 남들이 읽었을 때 재밌는 여행기가 아니라 그저 나 혼자 재밌는 여행기가 돼버렸어요.


아무렴 어때요. 남미에 가는 건 제 오랜 꿈이었고 그걸 이룬 것 자체가 행복이었는걸요. 남미가 가난한 대학생에게 가르쳐 준 가장 큰 교훈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 잃을 것도 없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는 거였어요. 글을 쓰며 여행을 되돌아보는 추억에 잠기는 것도 행복이었지요. 무엇보다 그런 글도 읽어주고 라이 킷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 감사했어요.

https://brunch.co.kr/@dnjs9523/37

다음으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이야기로 담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이 생각났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진 거예요.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기기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친구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교수님과 1:1로 면담할 때 혼나면서도 속으로는 ‘아 이 이야기 글로 옮기면 대박이겠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어요. 나중에는 교수님께 반항하는 내 모습이 그저 교수님에 대한 반감에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상황을 더 다이나믹하게 끌고 가서 글로 잘 옮겨보려는 욕심 때문이었는지도 구분이 안되더라고요. 기말고사를 치를 때는 한 손이 기계처럼 문제를 줄줄 풀어나가면서도 머릿속에는 이 의미 없는 시험질을 주제로 글을 써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https://brunch.co.kr/@dnjs9523/16

마지막으로, 글을 쓰며 누린 가장 큰 기쁨은 올바르게 성장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찾았다는 겁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답이 없는 인생에 자꾸만 정답을 찾으라고 재촉하는 주변의 기류에 휩쓸리게 되죠. 그러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생각과 내 꿈을 천천히 공책 위에, 키보드 위에 옮기다 보면 어느새 여름보다 푸른 청춘의 순간에 올곧이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가슴 뛰는 일을 찾아 스스로 고생길에 오르자는 다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글을 쓸 수 있었고, 변변치 못한 제 글을 사랑해 주는 독자분들이 충분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가난한 대학생’이 아닌 제 이름 석자, ‘이원희’로 당당하게 다시 시작합니다. 쓰는 내용에 변화는 없을 거예요. 저는 여전히 스물여섯 청춘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생을 담담하게 그리고 싶습니다.


스물한 살, 새벽 한 시가 되면 페이스북에 감성 돋는 글을 올리곤 했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불을 뻥 차고 글부터 비공개로 돌렸던 지난날이 생각납니다. 그처럼 5년 뒤, 서른한 살의 제가 가난한대학생이 쓴 글들을 보면 부끄러워질지도 모릅니다. 아직 세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놈이 마치 세상에 저 혼자 사는 냥온 세상이 지 것인 냥 말하네하하. 그런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5년 뒤에 저는 5년 전의 가난한대학생 시절을 그리워할 것 같아요. 겉으로는 요 녀석 봐라 저만 옳은 줄 아네, 하겠지만 속으로는 20대 중반의 대학생이 가진 젊음과 패기 때문에 배 아파할 걸요? 트레이드오프죠 뭐. 젊음을 잃는 대신 지혜는 생기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31살의 제가 26살의 저에게 “너는 인생을 뭐 그런 식으로 사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글 하나 쓸 때 구독자가 한 명씩 늘어나는 작가였으면 좋겠습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쓴 글 하나가 어디 메인에 소개되고, 공유수가 몇 백을 넘어가서 순식간에 수백 명이 제 브런치를 구독하는 멋진 일이 벌어진다면 너무 좋겠죠. 근데 저는 저를 잘 아는데요!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에이 뭐야. 글 쓰는 것도 별거 없네.”하면서 교만해지고는 이내 알맹이 없는 글들만 쏟아낼걸요? 글 한 편당,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그램씩 성장하는 작가이고 싶습니다. 1000편을 써서 1000명의 구독자를 얻고 1kg 성장할 때까지 쓰고 또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자님. 감사합니다 브런치.

작가의 이전글 그대 안의 창의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