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불교 유적 순례기 : 스라바스티 편(2)
한 바탕 소란이 끝나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노스님은 인도에는 자주 오신다고 하셨다. 2~3년에 한 번은 오신다는 것 같았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교도소에서 법사직도 맡으셨고, 무슨 예술인 단체 활동을 하셨다고 하시는데 정확히는 말해주지 않으셨다.
무슨 얘기를 하시고 싶으신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얘기가 하고 싶으신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 중간중간 나오는 여러가지 소재로, 스님은 기억 속의 일들을 이야기해 나가셨다.
내가 젊은 사람이여서 그런지, 갑자기 분위기가 우리나라 젊은이로 변했다. 긴 침묵을 깨고, 스님께서는 사시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소득에 맞지 않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본인이 이 지역의 사람들의 소득을 알고 있는데, 그 자식들로 보여지는 젊은 사람들이 돈을 헤프게 쓰는 것 같이 보인다고 지적하셨다.
나도 조심스럽게 나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그렇게 얘기하시는 점도 어느 부분 맞는 말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내 친구들, 요즘 광고에서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제품은 거의 선택받지 못하고. 좋은 브랜드, 명품이더라도 가성비가 좋지 못한다면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똑똑해진 젊은 사람들의 소비가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접근에 취약하신 분들보다 결과적으로도, 더 합리적이고, 사치스럽지 않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냐고 반문을 하였다. 감사하게도, 스님도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스님과의 이런 생각의 다름은 아마 개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스님의 기억 속 모습은 분명 사치스러운 모습이 맞았다.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 자체가 “비싼 제품”이라는 사치로서 얻어지는 것이 쉬울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가능하지만, 개성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사치”가 아닌 “가성비”라는 성격이 뛰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갑자기 젊은이 얘기가 나온 것처럼, 일기를 쓰면서 튀어나온 이 개성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남과 구분되는 개인의 고유한 특성은 보이지 않는 성격과 마음보다는 눈에 쉽게 보이는 것들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7080시대, 집과 자동차라는 물품과 부동산에서 지금의 어학과 여행이라는 능력과 경험으로 “개성”은 측정되어 지고 있었다.
소비를 통한 소유로, 내가 무엇을 가진다는 것으로 나의 개성이 표현될 수 있을까? 유행을 따라가는 개성은 유행의 속성을 닮을 수밖에 없지 않나? 개성이 나를 표현하는 독창성이라면, 유행을 따라가는 개성은 모순적이다. 개성을 가지기 위해, 유행을 따라가지만, 일정 수준의 크기 이상으로 커긴 개성은 개성의 본질을 잃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유행를 쫓는 행동은 개인에게 개성을 부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개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찾을 필요는 있을까? 개성이 고유한 특성이라면, 나는 나의 개성을 구할 필요도, 소유할 필요도 없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스님이 인도에 처음 왔을 때를 이야기 해주셨다. 첫 번째로 방문한 도시가 뭄바이라고 하셨는데, 공항의 택시기사에게 부탁해 뭄바이의 빈민촌과 도시들을 구경하셨다고 했다.
또 인도 자체가 너무 더럽고 혼란스럽다고 이야기를 더하셨다. 거리, 위생, 삶의 질 모두 좋지 않다고 이야기 하셨다. 나도 스님의 말씀에 의견을 더했다.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런 시각은 여행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반문을 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인도가 엄청 위험하다든지, 엄청 더럽다든지에 대해서 여행자들에게 많이 부풀려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인도인들에게 인도가 살만한 곳이 아니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곳인가? 라고 질문해 보았을 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인도의 인구수가 세계 1위를 향해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인도의 혼란스럽고 더러워 보이는 삶의 형태가 바뀌지 않으며 계속 지속하여 수천 년의 문명이 계속되어 왔다면 분명 여행자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질서에 대해 다시 질문해야 하고, 혼란에 대해서도 다시 질문해야 했다. 여행자들 다수의 객관적 의견 또한 인도 전체에서는 주관적 해석일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이 승리의 조건이라면, 인도의 무질서와 혼란 역시 마지막엔 재평가 되어야 했다.
무질서와 혼란은 결국 관찰자의 규모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멀리서 보면, 지구 자체도 태양계의 질서 속에 있듯이, 내 눈 앞에 보이는 인도가 정말 혼란스럽고, 더러울리는 없다. 나의 시야로 단순히 무엇인가를 계산하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나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다. 그나마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좋은 원인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 그것 하나다.
계속 “아닌데요?“ 하는 것 같아서 나도 괜히 말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님은 한 주제에 대해 내 얘기가 끝나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주제로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가셨다. 나도 재미있었다. 다만, 내가 오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라고 하시면 그만해야지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서울대의 무슨 과에 아는 교수님이 있으시다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 교수님과 이야기 하신 것이 있는데, 요즘 학생들은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직업을 선택하고, 대학에 와서 대학원이나, 관련 직종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이런 말슴이 학생들의 잘못이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실제로 보았고, 경험했던 일이여서 그런지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흥분을 했다. 솔직히 그런 교수님의 말씀에 어이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했다. 왜 나도, 나의 친구들도, 그 친구들도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까? 라는 질문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스님께 말씀드렸다.
좋아서 들어온 과라고 하더라도, 분야에 따라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어렵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와 인문분야는 더욱 그렇다. 단순히 꿈이라는 이유로, 그것들을 지속해 가기에는 학생 개인으로서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럴 바에야,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남들이 하는 안정적인 일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이미 포기를 해버린 학생들을 탓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영양분도 없는 땅에서 꿈이라는 열매를 키우는 것 자체를 포기했으니, 이제 그 분야와의 연관과 책임 또한 없다.
왜 그것을 배우는 학생의 책임으로 돌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만이 있으면, 불만을 느끼는 쪽에서부터, 스스로 질문을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의 원인을 안이 아닌 밖에서만 찾는다면, 학생들은 계속 떠나갈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수분이 일어날 꽃들이 없을 때쯤, 그 학문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불만이 있는 학생들이 요구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의무는 아니다. 나도 그냥 포기했다. 의견을 내라고 하면 내겠지만, 나를 내세우며까지 요구하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이익들을 잃는 것은 무서웠다. 변화를 위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도 그 교수님과 같았다. 다만, 나는 꿈을 포기했을 뿐이다. 그것만 포기하면, 나와는 별개의 문제였으므로.
스님과의 대화는 3시간 정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엔 매니저 아저씨가 점심을 드시라는 소리에 대화가 끊어졌다. 죄송하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스님은 내일이나 모래에 사르나트를 향해 가신다고 하셨다. 표를 디왈리 기간이라 표를 구하시지 못하고 계셨는데, 다행히, 새로 오신 한국 스님들이 사르나트로 가셔서, 남는 자리에 같이 타고 가실 수 있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기원정사 유적지로 향했다. 천축선원에서 나가 왼쪽으로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유적지로 가는 샛길이 나온다. 아스팔트로 깔린 길 위를 차가 쌩쌩 다니기 때문에, 양 옆의 흙길로 걸어갔다. 유적지로 가는 길목마다, 구걸을 하시는 분들이 기다리셨는데, 나를 보고 저 멀리에서 뛰어야 돈을 달라고 하셨다.
유적지 근처에는 많은 관광버스가 있어서 위치를 알아보기 쉬웠다. 그렇게 크지 않았고 아담한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원래는 발굴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을 것이라고 안내서는 전했다. 입장료는 300루피 였다.
이곳에서 부처님이 머무시던 두 곳의 향실은 먼저 찾아갔다. 향실은 안이든지 밖이든지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나도 한편에 앉아 이곳에서 설해졌다는 금강경을 읽었다. 그리고 기원정사를 돌아다녔다. 벤치에 앉아 과거의 이곳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곳에 와서 꽃과 음식을 가져다 놓는 모습, 말씀을 듣는 모습, 유행을 떠난 부처님을 그리워하며 보리수 나무 앞에서 부처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눈을 떠보니 그 사람들과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 겹쳐졌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여서일까. 시간에 의해 변해버릴 수밖에 없던 것들이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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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나와 앙굴리마라와 수자타 장자를 기리는 탑이 있는 곳을 향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이야기를 담은 곳이었다.
사람들을 죽여 손가락 목걸이를 만드는 앙굴리마라
부처님을 죽이려 다가가는 앙굴리마라 얼굴
결국에는 깨달아 법문을 하는 그의 모습과
부처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며 세 번이나 확인하는 수닷타
제타 태자에게 땅을 사기 위해 황금으로 땅을 매우기 위한 수례
결국에는 완성되어 부처님을 모시며 기뻐하는 수자타의 모습
이야기를 복기하며 걸으니 20분 정도 되는 거리가 금방이었다.
처음 앙굴리마라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이었다.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그 증거로 손가락을 잘라서 목걸이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살인자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에 대해 발췌했다.
또 앙굴리말라는 원래 베다의 학습에 열심히던 학생이었는데, 스승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아 자신은 비록 절개를 지켜서 깨끗했지만 스승의 오해를 받고 도적이 되었다. 그 후 그는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여 그 손가락을 가지고 목걸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를 매우 두려워했다.
불타의 세계, 나까무라 하지메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스승은 앙굴리마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1,000명의 손가락을 잘라오라고 시켰다. 스승의 명령을 목숨같이 여긴 앙굴리마라는 닥치는데로 사람을 죽여 999개의 손가락을 모았다. 그리고 마지막 손가락 하나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 때, 부처님은 앙굴리마라가 그의 어머니와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어머니와 만나기 전에 부처님이 먼저 앙굴리마라와 마주친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가도 부처님과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그는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수행자여 거기 멈추어 서라!”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자비심이 넘치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씀하다.
“앙굴리말라여, 나 여래는 항상 여기에 멈추어 서있다. 멈추어 설 줄 모르고 험악하게 달리는 것은 바로 네가 아니냐?” 부처님의 이 말씀에 지금가지 살기로 가득 찼던 앙굴리말라의 가슴 속에 일순간 맑은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이러한 심정의 변화를 일으킨 그는, ‘여래는 멈추어 서있고, 자신은 멈추어 서있지 않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를 반문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법을 설하셨다. ‘여래가 멈추어 서있다는 것’은 모든 생명을 자비로 보호하여 그들의 괴로움을 멈추게 하는 행위이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처참한 윤회의 굴레를 직시함으로써, 도리어 생명을 지키려는 의지로 살상을 멈추라는 불살생의 계율을 선포한 것이 바로 여래가 멈추어 서 있는 모습이다.
이 불살생계는 인간의 실상에 의하여 모든 생명이 겪는 고통에 대한 변호이다. 그러나 그대는 많은 생명을 살상하여 모두에게 공포와 고통을 안겨주면서도 그것이 죄악인 줄 모르는 것은 ‘멈추어 설 줄 모르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깨우치셨다.
앙굴리말라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하여 전율을 느꼈다.
피 묻은 칼을 던져버리고 가슴에 걸었던 손가락 목걸이도 벗어 던졌다. 곧바로 부처님 제자가 되어 수행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향하여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가 거리에 나아가서 걸식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살인마라고 돌팔매를 던졌다.
그러나 그는 단 한 개의 돌팔매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저지른 과보에 대해서 기꺼이 감내하며 수행을 쌓아갔다. 걸식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앙굴리말라를 맞이하시는 부처님은 참고 견디는 인욕제일로의 제자로서 그를 칭찬하셨다.
불교언론, 본각 스님
가르침과 정진으로 깨달음을 얻은 앙굴리마라께서는 아래와 같은 시를 남기셨다.
지난 날 부주의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주의 깊게 알아치리며 사는 사람
그가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날 달처럼
지난 날 저지를 악행을 선행으로 덮는 사람
그가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날 달처럼.
나이가 어리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힘껏 닦는 비구
그가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교도들이여! 귀 기울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에 헌신하며 법으로 인도하는 착한 벗을 사귀게나
이교도들이여! 인욕을 설하고 악의 없음을 칭찬하는 사람에게
법문을 듣고 악의 없는 법을 따르게나.
그런 사람은 분명히 나와 남을 해치지 않고 지극한 평온을 성취하여
약하거나 강하거나 모든 중생들을 보호한다네.
농부는 물길을 내어 물을 끌어들이고
활 만드는 이는 화살을 곧게 펴며
목수는 굽은 나무를 곱게 다듬고
지혜로운 이는 마음을 잘 다스리네
사람들은 몽둥이나 막대기나 회초리로 길들이지만
부처님께서는 몽둥이도 칼도 없이 나를 길들이셨네.
예전에 해칠 때에 나의 이름은 ‘힝사(해치는 자)’였지만
지금 나의 진실한 이름은 ‘아힝사(해치지 않는 자)’여서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네.
예전에 나는 앙굴리말라(손가락-목걸이)라는 살인마로
거대한 폭류에 휩쓸렸지만 부처님에게서 의지처를 구했네.
예전에 나는 손에 피를 보는 앙굴리말라였지만
존재의 밧줄을 끊고 부처님께 귀의한 것을 보라!
나는 지옥에 떨어질 많은 악행을 저질러 지금 그 과보가 닥치고 있지만 빛 없이 음식을 먹는다네.
지혜 없는 어리석은 중생들은 알아치림이 없어 늘 악행을 저지르지만 지혜로운 이는 알아차림을 아주 귀한 가보처럼 보호하네.
늘 깨어있으라. 감각적 욕망에 빠지지 마라.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지극한 행복을 얻으리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네.
그것은 아주 좋은 가르침이었네.
나는 알려진 가르침 중에서 가장 수승한 것에 도달했네.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는 기꺼이 받아 들였네.
그것은 아주 좋은 가르침이었네.
나는 세 가지 지혜를 얻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법을 성취했네.
앙굴리마라 경, 대림스님 번역
존재에도 무게가 있다면, 그 무게가 오는 곳은 어디일까. 내가 느끼는 나의 존재의 무게는 보통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생겨났다. 하지만 이 무게는 남들의 시선으로서 표현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 되야 한다”는 표현으로 나의 존재에 무게감을 더해왔다.
다시 말하면, 남들의 시선이라는 눈빛에 나 스스로 “질량”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 눈빛은 나를 향하며 시선이라는 “무게”로 나를 찔러왔다. 이런 방식으로 나의 존재는 몸집을 불려왔다. 내가 느끼는 존재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나의 삶을 이끌고 나아가기가 버거워졌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행복으로 나아가면서 견뎌야할 시선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이 행복을 포기하겠다.
행복을 목적으로 삶을 산다면, 행복으로 향하는 길도 행복이라는 블록으로 잘 닦여진 길이여야 한다. 끝으로 다가갈수록 나의 존재의 무게는 가벼워져야한다.
어쩌면 나는 말 자체를 잘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행복과 삶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인데, 나는 이 행복과 삶이라는 두 단어로 하나인 것을 둘로 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행복과 삶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삶자체가 행복으로 표현되는 것이여야만, 내가 느끼는 이 무게감에 대한 인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존재의 무게감이 0에 가까워질 때, 우리는 그 삶이 행복으로 표현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눈빛이라는 빛의 질량이 거의 0에 가깞듯이, 남들의 시선에 그보다 더한 질량을 부여하지 않는 한 본래의 나의 존재의 무게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존재의 밧줄을 끊었다는 앙굴리마라의 고백처럼, 이제 더 이상 1000개의 손가락을 얻어, 되야 할 무엇인가도, 얻어야할 무엇인가도 없는 그가 “행복”과 “삶”으로 표현되는 “한 사람”이 아니였을까.
앙굴리마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가 죽인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인생을 망쳐버린 앙굴리마라가 정말 싫었다. 읽으면서도, 999명의 삶을 망가뜨린 사람의 삶 역시 999번 망가져야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가 저지른 나쁜 일들에 대해서 그 역시 나쁜일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는 지옥에 떨어질 많은 악행을 저질러 지금 그 과보가 닥치고 있지만”이라는 고백에서, 기분이 묘했다. 진짜 완전한 처벌이란, 똑같은 일을 그 사람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받은 사람의 아픔을 똑같이 느낄 수 있어야만 정확히 그 처벌을 다 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쁜 일을 하고도, 그저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와 똑같은 짓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행동을 다시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은 그들의 저지른 일과, 그로부터 아픔을 받음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처벌은 벌의 무서움이 아닌, 피해자들의 슬픔의 처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야만, 그가 한 행동이 만든 결과들과 그가 직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앙굴리마라는 자신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악행으로 인한 사람들의 욕과 구타를 받아들였다. 만약 그가 그의 살인으로 인해 생겨버린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그는 그 사람들을 향해 다시 칼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사람들에 대해 다시 복수할 마음을 그만두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원인으로 인해 결과 생긴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고, 남을 해치는 행동을 원인으로 자신을 해친다는 결과가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렇게 알았기 때문에, 해치는 자에서 그는 해치지 않는 자가 될 수 있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의 모습으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확실해졌다. 회사의 경영처럼 플러스는 플러스로 이익을 강화하고, 마이너스의 마이너스로 손해를 최소화하는 것과 비슷했다.
행동으로도, 마음으로도
남들을 헤치지 않을 것
(마이너스 요인을 만들지 않을 것)
내 눈 앞에 나타나는 결과를 그져 받아들일 것
(이미 가지고 있는 마이너스 요인의 악순환을 시키지 않을 것)
주변 사람들의 삶에 보탬이 됨으로써 살려짐이라는 결과를 받을 것
(플러스 요인을 강화에서 지속적으로 플러스 요인을 만들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그 뿐이었다.
다른 관광객들도 이곳을 많이 찾았다. 까치꾸티를 오르던 중 한 분이 카메라를 건네며 단체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다. 오래된 디지털 카메라였는데, 30분 정도 되시는 분들이 꽉 차게 찍었다. 사진은 썩 괜찮게 나왔다.
이곳 까지 온 것을 보면, 불교신자들이 분명했다. 어디서 오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하얀색 옷을 입고 계셨었다. 스님으로 보이는 분은 계시지 않았지만, 주황색 옷을 입고 계신 여성 한 분이 계셨다. 머리를 밀지는 않으셨었는데, 눈치로 봐선 이 분들을 이끄시는 분처럼 보였다.
나가는 길에 그 분들 버스를 얻어 탈 수 있을까 생각해서 막무가내로 버스 입구에 발을 올렸다. 올라탄 나를 차장이 막긴 했지만, 아까 찍어준 날 기억한 아저씨께서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셨다. 셔터 한번 누른 것으로 편하게 입구까지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유적지를 나와 다시 선원 쪽으로 길을 걸었다. 그리고 기원장서 유적지 반대 방향, 선원에서 오른 쪽으로 10분 정도를 더 걸었다. 그곳에는 천불화현의 탑이라는 유적이 있었다.
언덕 위에 위치한 탑이여서, 탑을 올라 유적 위에 앉아 있는데 주황색 옷을 입으신 젊은 인도 비구 스님 하나가 올라오셨다. 눈이 마주쳐, 인사를 드리고 힌디어로 짧게 소개를 했더니 신기해 하셨다. 영어를 하실 수 있으셨는데, 내가 이곳의 현지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이곳이 붓다에어포트(Buddha Airport)라고 하셨다.
이곳에서 부처님 시대의 여러 종교인들과 수행자들이 모여서 신통 대결을 하셨다고 한다. 신통이란게 일종의 기적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손오공 같이 1,000개의 분신을 만들어서 공중에서 각각 따로 움직이셨다고 한다. 이런 신통을 보여, 신통 대결을 청해 온 다른 수행자들의 기를 죽여 놓으신 곳이라고 하셨다. 이 신통을 보이신 후, 부처님은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늘의 신들과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에게 설법을 하시고 샹카샤라는 곳에서 이륙을 해서 내려오셨다고 한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스님은 나에게 물으셨다. “안 믿기지?” 나는 말로는 믿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믿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스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는 다시 천축선원으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와, 다과방에서 땅콩을 까먹고 있었다. 밖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두 그룹의 한국 스님들이 이곳으로 오셨다. 순례중인 분들이셨는데, 나중에 만나겠지 하고 나는 계속 땅콩을 까먹었다.
땅콩을 까서 먹으니 심심하지가 않았다. 온 신경이 땅콩 껍질을 까는데 집중이 됐다. 다람쥐가 땅콩을 까먹듯 앉은 자리에서 한 봉지를 모두 까먹었다.
저녁 공양을 마친 뒤 얼마 후, 아까 도착하신 스님들이 다과방으로 모이셨다. 나도 불러주셨는데, 혼자 이곳에 온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시는 듯 보였다.
한 그룹은 비구니 스님 한 분과 신자 분이 같이 오셨었고, 또 다른 그룹은 두 분의 스님과 두 분의 비구니 스님, 한 분의 신자 분이 같이 오신 것으로 보였다.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왠지 무슨 캠프에 온 기분이었다. 스님들 사이에서 수행 장소, 다른 스님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르는 장소와 사람에 대한 단어가 많아서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접 내려주시는 차를 마시며 귀동냥을 하였다.
한 비구니 스님은 인도에서의 물갈이로 고생을 하고 계셨다. 또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셔야 하는데, 홀로 남아 계시는 것이 두려워서 비행기 표를 바꾸셨다고 하셨다.
마지막에는 나에게도 여러 질문을 하셨다. 왜 인도에 오게 되었고, 불교 유적지 순례를 하고 있냐교 물으셨다. 나도 짧게나마 오게 된 이유와 앞으로 이 여행을 정리하여서 다른 여행자들과 공유하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글을 정리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부처님의 이야기를 가공하는 것에 대해 조언을 주셨다.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글을 쓴다면 그것은 오히려 부처님의 말씀에 먹을 칠하는 것이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 중 하나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셨다. 빨리어 경전을 같이 소개하는 가이드북이였는데, 다분히 한국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져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 글을 정리하면서, 내가 이렇게 글을 가공하고, 이야기를 쓸 자격이 있냐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권위 있는 학자나 스님들이 쓰신 책에 의지를 하게되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인용하는 책도 한 개인의 시선을 넘어가지 못한다. 내가 쓰는 글도 마찬가지이다. 쓰여지는 글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이 무서워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겁이 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적하신 책도 물론 처음 읽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의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읽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였다. 그런 아쉬움이 있더라도, 내가 그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내게 더 크게 다가왔었다. 읽는 사람이 느끼는 것까지 정하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조심하는 것뿐이었다.
스님들과의 다과를 마치고, 매니저 버단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그의 업무실을 향했다. 내일 떠난다고 인사를 하고, 버단에게 교통편을 물어봤다.
다음 목적지는 아그라였다. 버단은 자신의 누이가 아그라에 있어서 잘 안다며 가는 길을 설명해주었다. 이곳에서 아그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다고 했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스라바스티-바이리치-럭나우-아그라라고 하였다. 스라바스티는 들어오기도 힘들고, 나가기도 힘든 곳이었다.
또 아그라로 가기 위해서는 선원 앞을 지나가는 버스를 아무거나 잡으면 된다고 했다. 다만, 한 8시가 지나야 버스가 돌아다니니 가서 기다리지 말고 시간을 맞춰서 나가라고 조언을 주었다. 감사의 말을 전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내일이면 이곳도 떠난다. 델리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박물관과 타지마할만 보면 나의 여행도 끝이 난다. 돌아보려고 했던 곳을 다 돌아봐서였을까, 나를 누르고 있던 어떤 의무감이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집과 멀어지는 여행이 아니라, 가까워지는 여행을 하면 된다는 생각에 설랬고, 더 이상 힘들게 찾아가야할 유적지가 없다는 것에 정말 신이 났다. 내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8. 걸어가야겠다[마지막 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