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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Jul 22. 2021

-29, 쓰임새를 만난 것은.

二十년 九월 三十일, 지금으로부터 九개월 二十二일 전

공교롭게도 오늘 날짜로부터 계산할 때 유독 二와 九가 많이 연관되어 있는, 쓰임새와 조우한 일화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이야기에 앞서, 내 나이 스물아홉에서 스물아홉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에 살짝 소름이 돋았음을 언급하고 싶다. 어쩌면, 쓰임새를 만나던 바로 그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자,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과대포장을 해야겠냐 싶겠지만은, 앞으로 60일 가까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질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아, 끝으로, 이 이야기의 전말을 지금도 쓰임새를 찾아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그'에게 바친다.




'아직도 파랑새를 좇고 있는 거 아니에요?' 
면접관의 시니컬한 한 마디에 나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아, 이 회사에도 내 자리는 없겠구나. 


그 후로는 면접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도 잘 모르겠다. 몇 가지 확실한 사실은, 30분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엄청나게 많은 땀을 흘렸고, 내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사시나무 떨리듯 파르래졌고, 절대 우호적이지 않았던 그 면접관의 질문들에 단 하나도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쓰임새가 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


하지만 내 쓰임새는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듯,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이 놈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생각하며 나는 다시 테헤란로 옆 옆 블록에 위치한 작고 낡은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는, 언젠간 떠나게 될 임시 공간인 그곳에도 역시 내 쓰임새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홀리고 홀연히 떠난 그놈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쓰임새를 찾고 싶었다.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작고 낡은 그 방에 어울리지 않게, 오로지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 놓여진 물건들이 잔뜩이었다. 역시나, 그들에게도 쓰임새는 없었다. 6평 남짓한 공간에 작은 스툴이 2개, 높은 바 스툴이 2개, 4단 서랍이 3개, 갖가지 조명이 대략 10여 개. 이 외에도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는 사이 그 방 곳곳에 놓여진 이런저런 물건들이 대략 수십여 개. 

그런데 사람은 1명. 그런데 사람은 한 명. 사람은 단 한 명.


한쪽 구석에 놓인, 이미 뿌리까지 모두 메말라 버린, 그 상태로 잊혀져 화석처럼 죽은 채 굳어가는 이름 모를 열대 관엽식물처럼. 그 방에는 어느새 죽음의 향이 짙게 배었다. 임시 공간 -모든 것이 왔다가 가버릴, 잠시 거쳐갈 뿐인, 지속되지 않는- 에서 자신의 쓰임새를 끝내 찾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것은 나뿐이면 족하지. 

그래, 쓰임새를 찾아주어야겠다. 때 마침, 빌롱잉스가 새로운 스튜디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곳에서는 쓰임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 물건들의 임시 보호를 부탁드렸고, 며칠도 지나지 않은, 비가 쏟아지던 날에 그것들은 작고 낡은 임시 공간을 떠나 넓고 깨끗한 임시 공간으로 옮겨졌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날 여러 마리의 쓰임새들이 즐겁게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쓰임’.




     『앞뒤로 30날』은


삶의 크고 작은 분기점의 앞뒤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마음을 다 잡는 솔직한 고백이자 성찰의 기록입니다. 매일 남은 혹은 지난 날짜를 체크하며, 주제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


앞뒤로 30날을 기록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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