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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Aug 08. 2021

-14, 전래 동화: 쓰임새 이야기 二.

(앞선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제대로 임자를 만나버렸네. 바로 호랑이였어.


좀체 약한 모습을 보일 리가 없는 동물인데, 어째선지 바닥에 나뒹굴며 꺼이꺼이 울고 있는 게야.
쓰임새가 또 다가가 물어봤지.


“호랑아, 너는 왜 울고 있니?”


“아이고오, 나 죽네 죽어!”


가까이서 보니, 온 가죽에 긁힌 자국이 남아 있는데, 어찌나 상처가 깊은 지 피가 배어 나올 정도라.
쓰임새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앞으로 나아갈 길이 아주 좁은 계곡인 데다가, 온통 가시 덩굴로 그득하지 뭐야. 호랑이 정도의 덩치면 아무리 조심해도 온 몸이 가시 덩굴에 긁히고 찔릴 수밖에.


“쓰임새야, 쓰임새야. 나 좀 도와다오…. 내 은혜는 잊지 않으마.”


쓰임새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다시 저 멀리 날아가 버렸어. 


이번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망치나 싶은가?
아니, 그럴 정도로 의리가 없는 놈은 아니란 말이지. 이번에는 또 무슨 기똥찬 해결책을 찾았을지 보자고.


기다리다 지친 호랑이가 하품이 절로 날 즈음, 오호라, 쓰임새가 드디어 저 멀리서 무언가를 물고 돌아오고 있네. 아까 바다를 건널 때 소를 묶었던 그 기다란 끈이로구나.


“호랑아, 내가 이 끈을 물고 계곡 끝까지 갈 터이니, 내 울음소리가 들리면 줄을 잡고 있는 힘껏 빙글빙글 돌리거라.”


“뭐라? 그게 대체 무슨…”


“잠자코 내가 시킨 대로 하면 될 것이야.”


쓰임새는 작은 몸으로 요리조리 가시 덩굴을 피해 가며 계곡 속으로 금세 사라졌고, 몇 분 뒤 그 울음소리가 계곡에 메아리쳤어.


"쓰임-"


“옳거니!”


호랑이는 끈을 입에 물고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어. 곧바로 어지러움이 느껴지긴 했지만 경주에서 지지 않으려면 어쩔 도리가 없었지.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서 죽겠다 싶을 때까지 호랑이는 힘차게 고개를 돌리고 또 돌렸어. 그리고는 조금씩 비틀거리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 호랑이 놈도 별 것 아니로구먼!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호랑이에게 쓰임새는 아무 말 없이 계곡을 가리켰어. 계곡을 보니 그 많던 가시 덩굴들이 끈에 얽히고 설켜 돌덩이처럼 뭉쳐 있는 게 아니겠어. 그 덩굴 뭉치는 소가 뿔로 가볍게 밀어낼 수 있었고, 쓰임새와 호랑이와 소는 아무 탈 없이 그 계곡을 지날 수 있었단다.


그렇게 쓰임새는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는 내내 곤란해진 동물들을 하나하나 도와가며 나아갔고, 도움을 받은 동물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쓰임새를 돕기도 했지.
그렇게 얼마나 많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을까, 드디어 결승선이 저 멀리 보이는 게야.


하지만 그동안 쓰임새는 다른 동물들을 돕느라 너무 지친 상태였어. 저 산 꼭대기에 결승선이 보이는데도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지.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쓰임새는 어떻게든 도착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내기로 했어. 그래도 쓰임새는 날개가 있으니까, 몇 번만 힘차게 날갯짓을 하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몸을 겨우 추스르고 나서 펄-쩍 뛰어올랐을 때, 몰래 풀숲에 숨어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양이도 같이 뛰어올랐어. 고양이 놈은 날개가 있는 쓰임새가 자기를 제치고 먼저 도착하는 꼴이 아니꼬웠던 게지. 
숨겨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고양이는 쓰임새의 날개를 할퀴었고, 그 길로 쓰임새는 고꾸라져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어.


이를 지켜보던 전지전능하신 그 분은 잔뜩 화가 났지. 바로 고양이를 경주에서 탈락시켜 신이 될 자격을 박탈해버린 거야. 하지만 불쌍한 쓰임새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어. 


이미 쓰임새의 도움을 받은 다른 동물들은 하나 둘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었어.
소의 등에 타고 있다가 약삭빠르게 1등으로 들어온 쥐부터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까지 모두. 흙탕물에서 뒹굴며 놀다가 늦어버린 돼지 놈까지도 결국 결승선을 통과했고, 쓰임새는 그렇게 열두 간지에 포함되지 못하고 낙오되고 말았지.


아아, 가엾은 쓰임새. 정작 자기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버려지고 말았으니. 신도 분명 이를 가엾게 여겼을 거야.


그래서 그 분은 쓰임새에게 다른 역할을 주기로 했단다.






     『앞뒤로 30날』은


삶의 크고 작은 분기점의 앞뒤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마음을 다 잡는 솔직한 고백이자 성찰의 기록입니다. 매일 남은 혹은 지난 날짜를 체크하며, 주제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


앞뒤로 30날을 기록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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