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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애희 Jul 25. 2024

박숙현_ winter, 2017

winter 겨울

박숙현, winter 2017, 한지 안료 돌가루 은박 55 ×55cm

My own winter_A winter that makes my heart tremble

사뿐사뿐 고요하게 내리는 눈.

쌩쌩 휘몰아치며 내리는 눈.

랄랄라 리듬감을 느끼며 내리는 눈.

통통통 내 마음 설레는 첫. 눈.

 

난 11월 첫눈이 내릴 무렵 태어났다. 매년 생일이 다가올 때면 하얀 첫눈도 함께 기다리기에 더 설레는 겨울이다. 박숙현 작가의 <winter 2017> 작품은 돌가루와 은박으로 더 환상적인 겨울을 느끼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물 위에서 반짝이는 윤슬처럼 눈 위에서 반짝이는 빛의 왈츠는 따스한 봄 햇살 아래에서 춤추는 나비처럼 자유롭다. 

스무 살 나는 눈처럼 하얀 코트를 입고, 

눈이 오는 날 수줍은 미소를 보낸다. 

그 마음속에 풋풋하고 싱그러운 희망을 안고, 

두근두근 설렘을 온몸으로 내뿜기라도 하는 듯.


스무 살의 나

Our own winter_A winter where love blooms

햇님 유치원(나의 첫 직장이며 6년이라는 시간을 지낸 공간이자 이십 대 젊은 시절의 추억이 함께하는 장소)을 탈출하는 그 시간이 왔다. 하늘은 벌써 깜깜해졌고, 나는 지친 몸을 39번 버스에 실었다.(약 40분 정도 이동)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지쳤던 몸에 생기가 차오름을 느꼈다. 나는 KH오빠(아는 오빠, 친한 오빠, 나 좋아해 주는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눈 온다. 전대후문에서 보자.]

 

난 집 도착 7번 전 정거장인 북구청에서 내렸다. 눈이 온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난 충분히 신났다. 조금 걸어 도착한 전대 후문 건너편에 KH오빠가 마중 나왔다.

"오빠! 눈 온다. 우리 집까지 걷자." 유치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쏟아내며(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걸었다. 눈 내리는 길이 마냥 좋았다. 내리는 눈도 잡았을 것이다. 눈 오던 겨울 어느 날, 나는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는 밤낮이 따로 없다. 매일 전대 후문 근처 랩실에서 프로그램 만드느라 컴퓨터와 씨름을 하며 지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문자가 왔다.

[오빠, 눈 온다. 전대후문에서 보자.]

그녀가 만나자고 문자를 보내온 거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랩실에서 입고 있던 편안한 복장과 슬리퍼를 신고 전대후문으로 나갔다. 멀리서도 그녀의 신나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날 발견한 그녀는 "오빠! 눈 온다. 우리 집까지 걷자." 하며 앞장섰다. '음...... 춥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우리는 걸었다. 그녀는 눈 오는 날 신나게 뛰노는 강아지 마냥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폴짝폴짝 뛰며 좋아한다. 이렇게 해맑은 그녀가 참 좋다. 눈 오는 깜깜밤 밤도 빛나게 해주는 그녀가 정말 사랑스럽다. 그녀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이 꿈만 같았다. 랩실에 들어서자 온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난 꼬박 사흘 동안 열 감기에 시달렸다. 하지만, 행복한 겨울이다.

(그녀에게 이 사실을 15년 정도 지난 후 이야기 했다. 그녀는 많이 미안해했다.)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겨울, 눈이 오면 먼저 눈을 본 사람이 [눈 온다] 문자를 보낸다. 눈 오는 겨울날 KH와 산책을 하며 지난 추억 이야기를 했다. 전대 후문에서 우리 집까지 나와 걷고 난 후 감기에 걸렸고, 며칠 동안 아팠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말 미안했다. 눈이 왔던 그 겨울날, 철없던 그 겨울날 나는 너무 들떠서였을까? 슬리퍼 밖으로 인사하던 KH의 발가락들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여보, 그때 행복했어!"

 

어쩌면 그 겨울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을지도......

 

Sue's winter_A winter sparkling in silver light

매섭게 추운 겨울처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싹을 틔우며 빛나는 것들이 있다. Sue 또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추운 겨울을 혼자, 그리고 고독히 보냈을 것이다. 오늘은 눈이 벚꽃 잎처럼 내린다. 한 잎, 한 잎 내린다.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은빛으로 반짝이는 꽃잎은 찬바람에게 인사하듯 얼굴을 내미는 복수초 같다. 이른 봄, 눈이 녹기 전에 눈 속에서 꽃을 피워 주변의 눈을 식물 자체에서 나오는 열기로 녹이는 복수초! 그녀는 어느새 한 송이 복수초가 되어 자기 자신의 내면부터 시작해 차츰차츰 주변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그녀의 따뜻함은 어느새 널리 퍼져 추운 마음도 녹여주는 묘약이 된다. 그녀의 은은한 향기는 잠들어있던 나비까지 깨운다.

"엄마! 나비는 어느 정도 높이 까지 날 수 있을까요?" 아이가 묻는다.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녀의 향기가 퍼진 만큼 나비는 날아오를 것이다. 

높이, 

더 멀리.


복수초

글쓴이 - 전애희

현재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며 도서관에서 독서지도사로 독서연계, 창의융합독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그림은 예술이라는 한 장르! 예술을 매개체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소통하는 삶을 꿈꾸며, 내 삶에 들어온 예술을 글로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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