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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Apr 17. 2022

S병원이 아니면 안 됩니다.

" 허리 아파 죽겠어. 하준이 데리고 와."


투석실의 평화를 단숨에 깨는 고함이었다. 병원 나이 90세. 지난봄 이후 우리 병원에서 최고령자로 등극한 송 할아버지다. 그에게로 달려갔다. 병원을 떠나는 데에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그는 나에게 가장 염려인 환자였다. 


2주 전. 송 할아버지는 관상동맥 3 혈관 질환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고령에 심장 기능이 좋지 않아 그 어떤 시술도 하지 못한 채 퇴원했었다. 약한 심장은 혈액투석에 부담이 된다. 그 부담을 나눠지기 위해 일주일에 네 번, 투석 횟수를 늘려야 했다. 덕분에 우리는 더 자주 만나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누군지 알아본다. 환자의 의식에 나는 안도했다. 그럼에도 환자의 고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투석을 중단하고 보호자를 불렀다. 환자가 애타게 찾는 하준이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혈액 투석 전 안정적이었던 혈압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건 혈압뿐만이 아니었다. 의식이 흐려지며 횡설수설. 세상에 없는 하준이 찾기가 계속되었다.  


환자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보호자, 부인은 발만 동동거린다. 송 할아버지는 어제저녁에는 가자미 한 토막을 다 먹고, 오늘 아침에는 떡국을 먹었다.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던 할아버지에게 나타난 혼란스러움을 보호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보호자에게 상황을 전달받으며 머릿속으로 환자의 혈압과 의식이 떨어지는 이유를 더듬어 본다. 


부정맥, 빈혈, 폐부종, 전해질 이상, 뇌출혈, 심근 경색 등. 


치명적인 모든 질병이 나타날 수 있는 환자였다. 하지만 나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해야 했다. 119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동안 나는 송 할아버지의 혈압과 의식을 확인하며 동시에 다른 환자들의 염려를 살폈다. 구급차가 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그 시간이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드디어 환자와 나의 구세주. 119 구급 대원 셋이 침대 카트를 들고 우리에게로 왔다. 


우리 병원과 가장 가까운 대학 병원은 10분 거리에 있는 E 병원이다. 그곳으로 가겠다는 구급 대원을 보호자 할머니는 안된다고 막는다. 


안돼요. S 병원이 아니면 안 됩니다.
꼭 S 병원 응급실로 가주세요.

S 병원은 여기서 30분이나 걸리는 곳이다. 구급차는 택시가 아니다. 그것의 존재 이유는 응급 치료가 가능한 곳으로 환자를 안전하게, 그리고 빨리 이송하는 것이다. 


S 병원은 응급실이 포화 상태라 갈 수 없다는 구급 대원의 설명에도.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나의 설득에도. 보호자는 일편단심 S 병원 만을 요구했다. 환자의 모든 기록이 S 병원에 있고, 이틀 전 건강에 대한 확인도 그곳에서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호자는 설명했다.


그 상황이 이해되기도 했고, 보호자의 고집을 꺾을 수도 없었다. 

 

환자의 의식을 확인해 보니, 여전히 나를 알아본다. 다시 한번 S 병원에 연락을 하고, 간신히 그 문을 허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자꾸만 뒤로 넘어가는 환자의 의식을 깨워가며 나도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S 병원으로 향했다. 


창백하다 못해 이젠 노란 얼굴을 환자. 여전히 낮은 혈압. 늘어지는 맥박.


왈칵. 송 할아버지는 그날 아침 먹었다던 떡국을 쏟아냈다. 검은 봉투에 그것들을 담아내고, 환자의 의식을 재삼재사 확인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명줄의 일부를 잘라 송 할아버지에게 바치고 싶었다. 그건 오로지 환자만을 위한 바람은 아니었다. 환자가 살아있는 것이 내 수명을 연장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눈 떠보세요. S 병원에 거의 다 왔어요. " 

"우리 선생님..."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 


드디어 S 병원에 도착했다. 약하지만 심장을 뛰게 하고, 끝까지 의식을 잃지 않았던 송 할아버지가 고마웠다. 응급실 의사에게 환자를 인계하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10시간쯤은 지난 것 같은데 겨우 1시간이 흘렀을 뿐이라니. 이러니 빨리 늙을 수밖에 없다. 


S 병원은 스무다섯 살, 젊은 날의 내가 의사로 처음 일했던 곳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하나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병원에 있는 들고 나는 사람뿐이다. 


그때엔 내가. 지금은 나의 시아버지가 몸담고 있다.


전화를 들었다. 가장 먼저 병원에 남겨둔 환자들의 안녕을 확인했다. 나의 환자들은 무사했고, 대부분 집으로의 귀가를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저 잠깐 S 병원에 왔어요."


이제는 아버님의 병원이 된 S병원. 여기까지 와서 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은 마침 재활 치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는 신경과 입원실에서 재활 치료실로 이동하는 곳의 길목으로 향했다. 


11층 신경과 병동에서 시작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면회가 원천 금지되어 있는 코로나 시대에 아버님과의 만남은 한 달 만이었다. 기대, 두려움, 반가움이 뒤섞인 기다림이었다. 내가 본다고 해서 치료가 달라질 리 없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뭐든 직접 확인해야 하는 직성이 풀리는 내과 의사의 성미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남들이 얘기하는 효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쳐 지나가더라도 보고 싶었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휠체어에 앉은 채 졸음에 취한 아버님. 그 졸음을 쫓아내느라 팔을 휘휘 저어대는 어머님. 


'아버님, 여기 막내며느리 왔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게 염력이 있다면, 아버님의 두 눈을 뜨게 하여 나를 보게 끔 만들고 싶었다. 그럴 리 없었다. 하긴 그럴 수 있었다면, 119에 몸을 싣고 가슴 졸이며 이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시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멀리서 간격을 유치한 채 재활병동으로 향하는 곳까지 뒤따라 갔다. 그 길. 아버님의 뒷모습을 내 두 눈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 모습을 내 마음에 새겼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나는 뒤로 돌아섰다. 하마터면 눈물이 흐를 뻔했다. 혹시나 나를 보았을 아버님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이었다. 아마도 응급 상황에 미처 벗지 못한 가운 덕분일 것이다. 가운만 걸치면 나는 언제나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냉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늘을 본다. 이제 겨우 정오였다. S 병원을 나서며 남겨진 그들을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 송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나를 알아봐 주어서, 우연을 가장하여 먼발치에서나마 아버님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S 병원이 아니면 안 된다며. S 병원으로 가자고 부득불 우겼던 내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보호자 덕을 톡톡히 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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