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싶은 오리

내 꿈의 직업

by 점프

난 예쁜 사람이 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쁜 여자가 좋다. 애 둘까지 낳은 여자가 난데없는 커밍아웃이냐? 하겠지만 난 정말 예쁜 여자가 좋다. 패션잡지를 봐도 스타일이나 소품보다 예쁜 얼굴에 매료된다. 길을 가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는 쪽은 잘생긴 남자보다 예쁜 여자 쪽이다. 내 예리한 눈은 대스타가 될 연예인들도 단박에 알아본다. 김태희도 화장품 일간지의 서브모델 시절부터 눈 찍어 두었다. 공효진도 깡마른 몸매로 잡지 모델을 할 때부터 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원석을 잘 가려내는 내 예리한 눈! 이 눈에 들어온 직업이 있었으니... 바로 스튜어디스!! 이건 신이 내린 직업이야!!


내가 리즈시절 아시아나 항공과 대한항공은 TV광고를 줄기차게 해댔다. 아직 승객이 타지 않은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가 자리를 정돈한다. 승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튜어디스의 옆모습이 줌 아웃된다. 정갈하게 모은 두 손을 비춘 다음 스튜어디스만의 각도로 인사를 하는 그녀를 풀샷으로 잡는다. 그리고 환한 미소가 있는 앞모습! 너무 되고 싶었다. 내가 비행기 안 바로 그 자리에 서 있고 싶었다.


난 공무원을 배출하는 과에 입학했다. ‘통치구조론’이란 듣도 보도 못한 과목을 두 학기를 돌아 재수강했지만 또 C+이 나왔다. ‘전공이 내 적성과 맞지 않다’라는 가설이 ‘참’ 임을 증명하는 성적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나에게 맞는 직업을 갖겠다. 그 꿈의 직업이 스튜어디스였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회화학원에 수강했다. 전공서적은 재본을 떠도 영어책 사는데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테이프를 듣고 받아쓰기를 했다. 틀어놓고 자기도 했다. 심지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영어책을 베고 자기도 했다. EBS 영어 라디오 방송의 애청자가 되어 전국에 내 목소리가 나간 적도 있다. 하루에 단어 150개쯤 외우는 토익 단어 스터디에도 꾸준히 나갔다.


대학교 4년 내내 다이어트를 했다. 원푸드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랩으로 몸도 감아보고.. 여하튼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다했다. 일주일에 하루씩 단식을 꾸준히 했다. 헬스장도 다녔다. 새벽에 나무에 배치기 등치기 하는 어르신들을 제치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줄넘기도 2000개씩 했다.

드디어 스튜어디스 1차 면접날!

1차 시험장에 들어가면 대기하는 곳에서 차례로 키와 몸무게를 잰다. 키를 높이려고 발뒤꿈치에 동전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난 몸무게가 좀 많이 나가 부끄러웠지만 키는 무난히 패스각! 잠시 후 수업 번호 순서로 10명씩 면접장에 들어갔다. 수험생 거의 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치마를 입고 검정 구두를 신었다. 머리는 스튜어디스 쪽 머리다. 1차 면접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신한 수험생이 있었다. 수험생 모두 너무 놀랐지만 미소를 잃으면 안 되기 때문에 눈은 토끼 눈이라도 입가엔 스튜어디스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3명의 면접관 중 중견으로 보이는 사람의 눈빛이 나에게 0.1초 머무는 것이 느껴졌다. 됐어! 된 것 같아! 결과는 1차 면접 합격!

2차는 체력 테스트! 서울에서 있었다. 저질 체력이지만 운명을 하늘에 맡겨보기로 했다. 하지만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단박에 느꼈다. 모두 체육과를 나왔나 보다. 운동복 차림에 대의를 머금은 얼굴들.. 내 청바지가 원망스러웠다. 왜 이렇게 준비에 미흡한 것이냐!! 여러 가지 기구들이 있었고 손의 악력, 지구력, 유연성 등을 측정하는 듯했다. 대망의 윗몸일으키기.. 평평하지 않았다. 위엄한 각도를 자랑하고 뒤로 휘어져 있었다. ‘아..’ 작은 탄식 소리가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나 뒤로 휘어진 데서 못 일어나는데...' 딱 30초다.. 30초만 참으면 된다.. 하지만 그 30초가 나에게 30년 같았다. 내 옆에 있는 수험생은 1초에 1번씩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나는 30초간 천장만 보고 있었다.. 결과는 2차 체력 테스트 탈락!


예견된 결과였지만 눈물이 났다. 대학교 4년 내내 나는 무엇을 한 것이냐. 그 후로도 3년간 스튜어디스 시험에 응시했지만 점차 1차 면접에서 조차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제는.. 깨끗이 포기를 할 때였다..

노력했던 수많은 세월은 허무하게 사라진 것 같지만.. 그래도 남은 건 있었다. 후훗.. 영어로 자기소개는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난 지금도 예쁜 사람이 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쁜 여자가 좋다.



대문사진 : 인플루언서 알로하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ogito658/2220591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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