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입시는 잔혹해라

by 정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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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을 정리하다가 두꺼운 종이 노트 10권을 발견했다. 2017년 당시 내가 문예 창작과 입시를 위해 공부했었던 습작들이었다. 대학교마다 문예 창작과 시험 양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짧은 소설을 창작한다는 큰 틀은 같다. 다만 '주어진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난이도가 천차만별로 갈린다. 나는 수시 6장, 정시 3장, 군 외 원서(예술전문대학 등)까지 야무지게 써냈으나, 단 한 번의 합격도 받지 못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글이 그렇게 가치가 없었나'하는 절망에 빠질 새는 없었다. 바로 반 강제 재수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재수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정신없이 살다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잊어버렸다. 그 사이에 열심히 썼던 습작 노트 10권이 옷장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어찌 살다 보니 다시 글을 열심히 쓰고 있다. 내 이름으로 된 소설책이 한 권 나오기도 했다. ('오뉴월에도 빛이 내리고'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와서 미성년일 때의 습작을 읽어보니,


매우 잘 썼다고 느꼈다!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이 글이 옷장 안에 처박혀 있는 것이 아까웠다. 아무 대학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나라도 내 글을 받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브런치에서라도 바깥공기를 좀 쐬어 주면 좋겠다 싶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도 할 테지만 무슨 상관인가. 남의 글에 마음대로 평가를 하면 무례한 일이지만 내 글에 하는 것은 자기 성찰이라고 부를 수 있으니.

많은 예술 학과 입시가 그렇지만, 문예 창작과 입시를 하다 보면 재능에 대한 의심이 커진다. 나 같이 열 장이 넘는 원서를 휴지 조각으로 날려버린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마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자격을 의심하면서 입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2017년에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내 글이 조금 뒤처진 감이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참고가 된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다. 특히 혼자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른 입시생들이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접하기가 매우 어렵기도 하다. 이 사람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구나, 하고 재미로 봐줬으면 좋겠다.

문예 창작과 입시는 잔혹하지만 습작은 남는다. 아직 모든 습작을 읽어본 것은 아니라 나도 어떤 글이 나올까 많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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