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입시 습작 '가벼움'
저번 화에는 입시를 시작하고 가장 처음 쓴 글을 테이블에 올려보았다. 오늘은 내가 입시 때 쓴 글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살포시 놓아두겠다. 이것도 입시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지 않아서 쓴 글이니, 비교적 초기에 완성했다. 다시 읽으면서 매우 즐거웠는데, SF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그때 내 모습을 기억하니 더욱더 그랬다. 장르를 하나도 의식하지 않고 장르에 근접한 소설을 쓸 수 있다니, 사람이 팔자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이 내 문예 창작과 입시의 머리와 꼬리를 장식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느낀 쾌감 덕분에(혹은 때문에) 본격적으로 문예 창작과 입시에 매진하게 되었다. 글제를 처음 받고 나면, 머릿속으로 서사와 상징과 복선을 이리저리 꿰어본다. 그것들이 한 줄로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면 회색질 어딘가에서 스파크가 튀긴다. 그 스파크가 무슨 느낌인지 몰랐어야 했는데... 12월을 넘어 다음 해 1월까지 그 스파크를 다시 느끼기 위해 불도저처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입시의 막바지에 도달했다. 내가 가장 마지막에 쳤던 시험은 명지대학교 정시 실기였는데, 우연히도 유연한 글제가 출제되어 이 글을 약간 변형하여 제출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문창과 입시 잔혹사의 수미상관. 여러분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길 바란다.
글제: 다음의 그림을 모티브로 하여 1200자 내외의 소설을 창작하시오.
제목: 가벼움
중은 지구 내핵에서 쳇바퀴를 돌렸다. 쳇바퀴를 돌림으로써 세상엔 중심이 생기며, 모든 물체는 그 점에 끌렸다. 중은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달리기 시작했고, 그는 단순히 자신이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중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쳇바퀴를 돌리는 데 드는 힘이 점점 커졌다. 기름칠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구상의 물체가 서로를 밀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밀어대다 못해 지구를 뜨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밀어내는 힘은 미약했다. 한 사람의 눈물이 떨어지며 땅을 밀어내는 힘은 하찮았다. 하지만 그것이 모여서 중에게 가시적으로 와닿았을 때, 중은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쳇바퀴에서 내려왔다. 쳇바퀴는 관성으로 계속 돌았다. 그러든 말든 중은 계단을 올라갔다.
지구가 중력을 포기하자 가장 가벼운 공기가 먼저 날아갔다. 모두들 산소마스크를 써야 했다. 사람들은 물건에 우선순위를 매겨가며 하늘로 떠나보낼 것을 골랐다. 국기가 날아갈 때 사람들은 착잡해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곧 더 많은 것, 더 개인적인 것까지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아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침대에 고정해 두든가, 끈을 매달아 헬륨풍선처럼 가지고 다녔다.
마침내 '나'를 포기해야 할 시간이 왔을 때 사람들은 강강술래와 같이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는 빙글빙글 돌며 은하를 장식했다. 중은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인력과 척력의 모순을 느끼며 중은 창문으로 한 건물 안을 살펴보았다. 천장과 두 벽면이 닿는 모서리에 한 여자아이가 끼어 있었다. 미처 땅에 몸을 고정하지 못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중은 물었다.
"꺼내드릴까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늘로 갈 거예요."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중은 아이답지 않은 담담함에 놀랐다. 중은 하늘에 떠 있는 것이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다. 아이는 웃었다.
"그냥 아빠도 못 들 만큼 무거워질 때까지 기다릴래요."
중은 여자아이의 말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중력이 사라진 이유는 너희가 지구를 밀어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희가 아직 너무 가볍기 때문일까. 대답은 중에게는 없었지만 아이에겐 있었다. 중은 계단을 내려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중은 탁상에 무언가를 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붕 떠올라 천장에 닿았다.
몇 시간 뒤, 아이는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무게를 느끼며 아래로 내려왔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무게가 생소했다. 그때, 중이 두고 갔던 사과가 아이의 머리를 때리고 탁상에 놓였다. 아이는 먼 옛날 중력을 처음 느꼈던 사람과 같이, 사과의 아릿한 무거움을 들어 올렸다.
명지대학교 정시 시험장에서 원고지와 함께 글제를 받아보았는데, 바로 '지진'이었다. 한 단어로 간단하게 주어진 글제를 보고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써야 할 글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글제에 맞도록 이 글을 열심히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시험장을 나오는데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을 보여주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글이 나에게 그런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결국 10번대 예비 번호를 받고(실기를 보는 문예 창작과에서 10번 대면 우주 예비로 봐도 된다.) 명지대학교에서 탈락하면서 나의 문예 창작과 입시는 막을 내린다. 그때 나는 크게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웃음이 났던 것 같다. 이 글이 입시에서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며 느꼈던 쾌감과 확신과 기쁨은 이제 모두 잊어버리자. 이제 나에게 남은 길은 공부밖에 없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내가 이 글에서 보인 중력을 향한 집착은 가장 최근에 쓴 장편 소설에까지 이어진다. 'SF를 몰랐는데도 이 글을 썼다'라고 말했던가? 그건 완전히 인과 관계를 뒤집은 말이었다. 나는 지하철에서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입시 결과를 확인하고, 도착 역에 발을 딛자마자 글을 그만 써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를 전한다. 이 글로 인해서 나는 SF를 쓰게 된 거라고.
다음 화에는 중력이라는 모티브를 최근 소설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 말해보면서 이 글의 의미를 찾아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