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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Feb 07. 2024

너희가 나를 살게 하는구나

근무 중인 회사에는 대부분 싱글인 직원이 많다. 종종 내게 결혼이나 자녀양육의 장점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배우자가 얼마나 함께 하는 마음으로 삶의 발걸음을 맞춰주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특별한 대답, 화려한 수식의 답변은 잘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렇고 주변에서 보기에도 나는 만족하며 살고 있음을 대번에 알아차릴 만큼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배우자와 귀여운 아이들 둘을 낳아 함께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회사동료들이 굳이 어떤 게 더 나은지 물어본다면 나는 싱글을 권하곤 했다. 특히 일욕심 많고 커리어에 신경을 많이 쓰며 아직까지는 일이 우선인 이들에게 결혼, 양육은 여간해서 업무능력을 향상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운동선수들을 보면 배우자의 희생스러운 내조로 그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편적인 시선에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나의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자유보다는 조화 속에서 내가 잊히고 가려지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하니까.


나의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것. 육아의 어떤 시기에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마저도 뜻한 대로 시간을 누리지 못할 경우 현타가 오는 것은 물론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자괴감 마저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나 무턱대고 시작한 결혼, 출산 육아는 절대 '열심'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 분야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다 한 번씩 진하게 주는 감동과 여운이, 그 힘으로 몇 달을 몇 년을 살게 하기도 한다.


내 눈에는 아직 철없고 부족한 게 많아 같이 신경 써주고 다듬어줘야 할 옥석 같은 내 딸아이 이건만, 오늘 초등학교1학년 종업식을 마치고 온 아이의 통지표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있었다.



'네가 엄마보다 낫구나.' 


1학년  통지 표라기에는 꽤나 진중한 내용이었다.

내가 그리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 나는 늘 딸아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7년 된 내 아이는 벌써 그리 살고 있다니 어쩐지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하나의 인격체로 태어나 앞으로도 겪을 시행착오가 참 많겠지만 엄마보다 깊고 고운 심성을 가진 아이에게 기특함, 행복함,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다.


이 마음을, 이 순간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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