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나조차 믿지 못하는 걸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디쯤일까

by 도이안





최초의 부정은 의심을 만들고,
의심은 누구도 믿지 못하게 만든다.
믿지 못하면, 결국 자신조차 믿을 수 없게 된다.
자존감은 깎이고, 남은 건 자기혐오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디쯤일까.
의심의 시작에 서 있는지,
아니면 나처럼 마음속 감옥에 갇혀 있는지.


이 글은 스스로를 의심하고, 미워하지만,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 보려는 사람이 쓴다.






초등학교 11살부터 25살까지 팀 스포츠를 했다.

팀 스포츠는 선수들이 주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팀워크를 중요시하지만 그 안에서 선수들 개개인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팀에서 실수를 하면 무조건 연대책임이다.




초, 중학교 때까지,

유독 나만 혼났다.

왜 나만 혼나는지 몰랐다.


다른 애들의 크고 작은 실수엔 넘어가면서,

내 실수엔 작은 것도 늘 소리부터 질렀다.

나중에는 실수가 아닌 것들도 혼냈다.

목소리가 작다고 혼나고,

그게 힘들어 표정이 어두워지면 또 혼나고,

표정조차 없어지니, 이번엔 불만이냐고 혼났다.

결국엔 다 같이 혼나니까,

나는 동료들의 눈치를 더 많이 보게 되고 더욱더 위축되었다.


나는 그렇게 칭찬 한번 못 듣고 혼나기만 했다.

그땐 그냥 내가 진짜 못해서 그런 줄 알고

더 잘하려고 스스로 의심하며 채찍질만 했고,

그래서 버티는 게 다였다.


시합에서 메달을 따도

나는 내가 못한 것만 생각하기 바빠서

온전히 즐기지도 못했다.




졸업 후 드래프트가 잘 되고 나서 고등학교 감독을 찾아가 물었다.

“그때 왜 그렇게 저를 많이 혼냈어요?”

“너는 혼내야 잘하는 애였어.”


돌아온 답이 정말이지,

그 오랜 시간 혼자서 쌓아왔던

억울하고 화나는 감정이 목 끝까지 올라와서,

순간 숨이 가빠질 정도였다.


내가 유망해 보여서,

또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그것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건 변명이다.

내가 칭찬을 해주면 더 잘하는 선수인지

알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당신 때문에 나를 혐오하게 됐는데,

당신은 자신의 실적을 쌓았다고,

내 앞에서 그걸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다니.



나는 그 이후로,

누가 나를 칭찬해도 그 말이 온전히 들리지 않았다.

“내가 잘한 게 맞나?”

“그냥 분위기상 해준 말 아닐까.”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나를 버티고,

혐오를 밟고 올라서는 방법만 배워서,

도저히 나를 혐오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난, 내가 혐오하는 걸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을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누군가 나에게 방법을 알려주어도,

내가 그것을 해낼지도 확신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나를 이겨내고,

마지막에라도 나를 사랑하고 싶다.

나의 이 마음과 결심을 모두가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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