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것
아직도 그 코칭선생님과 민영언니의 정체는 정확하게는 모른다.
세상에 종교를 가장한 사이비가 얼마나 많겠는가, 코칭선생님은 그중 누굴 믿는 사람이었는지.
민영언니는 언제 어디서부터 그런 속내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는지 같은 것들?
그땐 진심이었나? 이때는 진심이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을 혼자 되뇌다가 조금 씁쓸하게 연락처를 지웠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저 사람이라면 좋아서 미주알고주알 내 신상정보를 다 나불대고
쉽게 정을 주고 쉽게 마음을 주던 그 어리숙하던 과거의 나에 대한 후회와 어리석음에 자다가 이불을 뻥뻥 차대는 날들을 보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들 하지 않겠는가.
모든 일에는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10여 년 전, 신입생 시절 학생회에서는 새내기들에게 '캠퍼스 내에 설문조사, 과제등을 이용하여 개인정보를 묻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라는 공지를 내렸었다.
매 새 학기가 되면 내려오는 공지였는데, 그만큼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스무 살 어린아이들을 타깃으로 잡는 거였다.
그리고 그들의 수법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난 그 고일대로 고인 수법에 그대로 넘어가 버린 것이 아닌가.
무려, 이제 스무 살 신입생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는데,
내가 이 수법에 넘어간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나는 사이비 같은 거 당하지 않아'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나쁜 일도 그걸 알고 당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은 뭐, 당하고 싶어서 당했겠을까
자신감 이라기보단 오만이었다.
'나는 사이비 같은 거 당하지 않아.'에서 시작한 생각은
'설마 이게 사이비겠어?'
'사이비들은 원래 카페 가자고 유도해서 얻어먹으려고 한다는데, 이 사람들은 안 그런 거 보니까 아닌가 봐'로 이어져 더 깊은 늪으로 끌고 가 버렸다.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면 내가 믿을 수 있는 타인에게 상담해 보는 것도 좋은데,
저런 판단을 할 즈음에는 내 마음속 언저리에 고고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자존심이 또 허락하지 않았다.
서른이나 넘어서 사이비에 당했다는 걸 얘기했을 때의 상대방의 반응 같은 게 예상이 되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사이비 예방주사 말고도 한 가지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라면,
생각보다 내 상처를 얘기하는 것이 쉬웠다는 것이다.
나에겐 2018년 사태라고 할만한 어마어마한 큰 사건이 있었는데,
처음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털어놓을 당시 엄마를 앞에 두고 장장 20분간 입을 달싹거리며 말을 못 했었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세 번째 만남에서 너무나 쉽게 툭 털어놔버린 '그 일'
나는 내 상처를 아직까지도 안타깝고, 기구하고, 힘들고
꽁꽁 숨겨야 할 고고한 존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연민을 너무 가지고 있는 것도 나르시시스트라고 했다.
뭐,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그들을 통해 나름 얻은 것도 있기에 고맙...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울 거 까진 아니다.
그 일 이후로부터 나는 사이비라면 치를 떨게 되고, 주변 친구들에게 늘 '사람 조심해',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떠올려봐, 생각했어? 그 사람이 바로 사이비일 수도 있어.' 라며 사이비 예방주사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내 이 경험담은 굉장히 사소한 경험일 수도, 새로운 경험일 수도, 바보 같은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