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의 경제학
주말 아침, 운동을 마치고 땀에 젖은 채 현관문을 들어설 때의 공기는 유독 투명하다. 샤워를 마치고 식탁에 앉자, 대학생인 딸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20대 특유의 도발적인 호기심이 섞인 목소리였다.
“아빠, 요즘 위고비 같은 비만치료제가 엄청 유행이잖아. 주사만 맞으면 살이 빠진다는데, 왜 아빠가 다니는 헬스장은 갈수록 사람이 많아지는 거야? 경제학적으로 보면 대체재가 나왔으니까 운동하는 사람은 줄어야 하는 거 아냐?”
식어가는 커피 잔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 27년간 수많은 시장의 ‘비합리적 장면’을 분석해 왔지만, 딸의 이 질문은 유독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는 단순한 건강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희소성’의 위치를 어디로 이동시키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었기 때문이다.
비만치료제 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는 인류가 수만 년간 해결하지 못한 ‘식욕’이라는 본능을 기술로 제압했다. 사람들은 주사 한 방으로 고통스러운 절제를 건너뛸 수 있다는 가능성에 열광한다. 그러나 여기서 첫 번째 경제적 착시가 발생한다. 약은 ‘체중’이라는 숫자는 줄여주지만, 신체의 ‘내재가치’를 반드시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명과학을 전공했던 아빠의 눈에 비친 GLP-1 계열 약물의 메커니즘은 정직하면서도 무섭다. 이 약들은 강력한 식욕 억제를 통해 섭취 열량을 급격히 낮추는데, 우리 몸은 이를 ‘기아 상태’로 인식한다. 이때 인체는 생존을 위해 지방뿐만 아니라 근육과 골밀도라는 핵심 자산을 함께 소모한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감량 무게의 25~40%가 제지방, 즉 근육 손실로 채워진다.
경영학적으로 보면 이는 명확하다. 단기 손익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공장의 핵심 설비를 매각하는 기업과 다르지 않다. 체중계 위의 숫자인 손익계산서는 일시적으로 개선될지 모르나, 신체라는 기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은 훼손된다. 근육이 사라진 자리를 피부 처짐과 대사 저하가 대신하고, 약을 끊는 순간 몸은 이전보다 훨씬 더 취약한 상태로 되돌아간다. 똑똑한 소비자들은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은 줄어드는 숫자가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근육 자산이구나.” 헬스장이 붐비는 첫 번째 이유는 약이 만든 빈자리, 즉 근육 손실에 대한 공포가 ‘자산 보전’의 수요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서 비만치료제와 운동은 완벽한 ‘대체재(Substitutes)’ 관계여야 한다. 고통스럽고 시간이 많이 드는 수단 A 대신 쉽고 빠른 수단 B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은 이들을 강력한 ‘보완재(Complements)’로 재정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진입 장벽’이라는 개념이 숨어 있다. 고도비만 환자에게 헬스장은 건강의 전당이 아니라 좌절의 공간이다. 120kg의 몸으로 러닝머신 위에 서는 것 자체가 무릎 관절의 고통이자 심리적 공포다. 이들에게 운동은 선택지가 아니라 시도조차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비만치료제는 이 ‘문턱’을 제거하는 혁신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약을 통해 초기 체중의 10%를 덜어낸 상태에서 운동은 비로소 ‘가능한 도전’이 된다. 약이 멈춰 있던 몸에 시동을 걸어주는 스타터(Starter)라면, 운동은 그 차를 안전하게 주행하게 만드는 유지 관리(Maintenance) 도구가 된다. 약으로 감량한 몸을 본 이들이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낄 때, 운동은 비로소 필수적인 보완재가 된다. 두 시장은 서로를 밀어내는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의 파이를 키워주는 전략적 파트너가 된 셈이다.
경제학의 대원칙은 명확하다. 공급이 늘면 가치는 떨어진다. 과거에 ‘날씬한 몸’이 부와 자기 관리의 상징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희소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절제와 정직한 노동(운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나 주사 한 방으로 마른 몸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름’ 그 자체는 더 이상 차별화된 사회적 신호(Signaling)가 되지 못한다. 이제 시장의 희소성은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급격히 이동한다. 약으로 지방을 덜어낼 수는 있어도, 정교한 근육의 결, 바른 자세에서 나오는 품격, 오랜 시간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과 움직임의 아우라는 복제할 수 없다.
명품 시장을 생각해 보자. 기계가 완벽하게 가방을 찍어낼수록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장인의 제품 가치는 올라간다. ‘Skin in the game’이라는 말처럼, 직접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약으로 만든 몸과 땀으로 만든 몸의 미세한 차이를 대중이 알아채기 시작할 때, 운동을 통해 얻은 신체는 그 어떤 명품보다 귀한 ‘진짜 자산’이 될 것이다. 기술이 범람할수록, 기술이 만들 수 없는 ‘인간의 시간’과 ‘정직한 땀’은 가장 비싼 프리미엄이 된다.
제약사들은 이미 지방은 태우되 근육은 보존하거나 키우는 ‘바이마그루맙’ 같은 차세대 약물을 개발 중이다. 그렇다면 정말 헬스장은 문을 닫게 될까? 아빠의 대답은 명확하다. “아니, 오히려 더 진화할 것이다.”
역사는 기술이 결핍을 해결해 주면 인간은 그 위에서 새로운 ‘표현’과 ‘유희’를 찾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탁기가 가사 노동의 고통을 덜어주자 사람들은 남는 시간에 더 고차원적인 문화를 소비했다. 자동차가 이동의 불편을 해소하자 사람들은 여가로 사이클과 마라톤을 즐기기 시작했다.
근육 보존제가 육체노동의 강도를 낮춰준다면, 사람들은 운동을 ‘고통스러운 숙제’가 아닌 ‘즐거운 스포츠’나 ‘사교의 장’으로 소비할 것이다. 미래의 헬스장은 단순히 칼로리를 태우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 능력을 연마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며,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이다. 미국의 ‘에쿼녹스(Equinox)’ 같은 클럽이 비싼 회비에도 대기자가 넘쳐나는 이유는, 그들이 운동이 아니라 ‘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팔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는 이 [땀의 경제학]을 통해 너희가 한 가지를 꼭 기억했으면 한다. 인생에도 반드시 ‘기초대사량’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외부의 도움 없이도 삶을 지탱해 주는 나만의 최소한의 에너지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근육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정보가 쏟아져도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적 근력, 실패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서적 회복탄력성, 그리고 기술의 편리함 속에서도 나태해지지 않는 자기 통제력.
지식은 AI에게 외주 줄 수 있고, 살 빼는 건 약에게 외주 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너희의 ‘기초대사량’만큼은 절대 외주가 불가능하다. 아빠가 매일 새벽 헬스장에서 무거운 바벨을 드는 이유는 근육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세상에서도 결코 대체되지 않는 ‘정직한 노력’의 가치를 내 몸에 새기고,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다.
지름길이 넓어질수록 정공법으로 걷는 사람의 뒷모습은 더 빛나는 법이다. 너희가 선택해야 할 길 또한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 어떤 기술적 변혁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길이었으면 한다. 약이 많아질수록 땀의 가치는 더 비싸진다는 사실, 이 역설이 너희의 인생을 지탱하는 단단한 철학이 되길 바란다.
오늘 네가 던진 날카로운 질문 덕분에 아빠도 다시 한번 마음의 근육을 다잡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