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리더의 배려가 당연해질 때

말 없는 헌신, 그 후의 허망함

by 도진

조직은 누군가의 배려 위에 세워진다.
조용히 앞서 걷는 사람, 말없이 책임을 떠안는 사람,
그리고 늘 예상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

리더라는 자리는 공식적 권한보다
보이지 않는 배려와 헌신으로 굳어진다.
그렇게 해왔고, 그게 맞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낯선 감정이 스며들었다.
배려가 감사로 돌아오지 않고,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때의 허무함.
“팀장님이니까요.”
“늘 그렇게 해오셨잖아요.”
기대 섞인 말 한마디가 칭찬이 아닌
무형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말하는 ‘당연함’의 기준이 내가 되었다는 사실이 가끔은 억울하고, 또 무섭다.
내가 만들어낸 기준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건 아닐까.



리더는 자주 묻는다.
내가 이끄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따라주는 척하면서 기대만 더해지는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왜 나는 지치고 있는가?”라는 자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팀원들의 역량이 자라길 바랐다.
그래서 앞을 치우고, 옆을 메우고, 때로는 등 뒤까지 살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해줄 거라는 확신 속에서, 모두가 멈춰 섰다.



배려는 리더십의 미덕이지만
조직이 그 배려를 고정된 전제처럼 받아들일 때,
그건 리더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 된다.
“괜찮으세요?”라는 말보다
“이번에도 해주실 거죠?”라는 기대가 많아질수록,
리더는 점점 자신의 온도를 잃어간다.



나는 요즘, 배려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헌신이 아닌,
성장을 이끄는 설계로서의 배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온기 있는 거리두기.
그리고 때로는 멈춤과 거절도,
리더의 용기이자 리더십의 일부라는 것.



좋은 리더란, 늘 앞장서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한 걸음 뒤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때 비로소 팀은 자란다.
그리고 그 자람은 리더의 고요한 뒷모습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팀을 향해 묻는다.
“이번엔 누가 먼저 나서볼까?”
그 질문이 낯설지 않도록,
나의 배려는 이제
함께 만드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keyword
이전 08화[AI 시대] 재테크, 정보보다 태도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