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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architects Nov 28. 2020

담장과 대문이 없는 집

돌곶이집 ep. 8

어릴적 살던 초록대문집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던 해,

그 집으로 이사를 했고 35년을 살았다.

 

옆집도, 앞집도, 뒷집도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옥상과 테라스에는 나름 모양을 낸 하얀 콘크리트 난간,

붉은 벽돌과 석재로 마감된 집,

당시에는 인기를 끌었던 보급형 모델이었다.


옥상을 올라가면

동네 지붕들을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담을 수 있었고,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여름밤에는 평상에 누워 수박을 먹고, 별을 올려다봤다.

옆집과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이웃과 가까웠고 다정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는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그린파킹 사업을

자발적 참여로 시행하고 있었다.

주택가 주차난 해소를 위해

담장이나 대문을 허물어

여유공간에 자가 주차장과 정원을 만들기 위한

공사비를 지원하고,

담장 철거로 사생활 침해 및 방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인 자가 방범시스템 설치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길이 넓어졌고

마당에서 키우는 이름 모를 꽃과

나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담장이 없는 동네는 기분이 좋았다.


담장, 대문, 초인종이 없는 집



돌곶이집에는 담장, 대문, 초인종이 없다.


서로의 소유권과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일이

높은 담장과 대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골목 쪽으로 창을 만들고 담장을 허물어

동네의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1층에 있는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동네 친구가 생기면 창을 활짝 열고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기존에 있던 집은 도로와 단차가 약 60cm 정도 났고

계단을 3단 정도 올라서야 현관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우리는 동네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계단이 될 수 있도록

단차를 이용해서 경계를 만들고

바닥에는 쇄석을 깔았다.


현관으로 들어올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공 좀 꺼내주세요-

한 번은 주말에 동네 꼬마들이

초인종도 없는 우리 집 현관을 두드리고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구슬땀을 훔치며

“친구들이랑 축구하다가

공이 마당 쪽으로 굴러갔어요-” 라며

대문이 없어 그냥 가져가도 될 텐데

허락을 구하려고 현관문을 두드리던 꼬마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길은 뒷마당까지 연결되어 있다.

주말에 집에서 쉬거나, 밥을 먹고 있을 때,

마당까지 들어와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작은 동네에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동네 사람들의 관심 1순위였다.


이런 집을 짓고 싶다고 설계를 해줄 수 있겠냐는 사람,

시공사에 다니는 데 같이 콜라보를 하고 싶다는 사람,

“우리 아들이 이번에 결혼을 하게 돼서

이곳저곳 알아보고 있는데… 집이 너무 예쁘네요-”

라며 웃음 지으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건축가로서

작지만 경험을 나누고 싶었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주택에서 사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동네 풍경을 바꿔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TIP

주택가 담장을 허물고 주차장을 만드는 ‘그린파킹 사업’에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한 실시간 주차공유 서비스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서울시 주체로 참여자 모집을 통해 설치비를 지원하고, 빈 주차장을 공유하면 부가수입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http://instagram.com/dolgoj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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