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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architects Dec 15. 2020

반려동물 대신 반려식물

돌곶이집 ep. 13

아버지의 식물 사랑



아버지는 마당에 있던 작은 화단에

앵두나무, 무화과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등나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백일홍도 심으셨다.

지금 얘기하면 아무도 믿지 않지만,

바나나 나무도 심으셨었다.


매미가 울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옥상까지 뻗은 등나무 그늘에서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식혔고,

눈 내리는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고,

대추나무에 솜뭉치를 붙이며, 크리스마스를 준비했다.



6년 전,

아버지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시면서

많은 식물들을 시골에 계신 할머니 집으로 옮기셨고,

퇴임을 하신 이후에는 소일거리로

시골에 있는 할머니 밭에

고구마, 자두, 고추, 상추 등을 재배하시면서

계절마다 맛있는 식재료를 서울로 보내주신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집에 가는 날에는

밭에서 바로 수확한 상추, 배추, 호박잎 찜에

직접 담은 된장을 얹어 쌈을 싸 먹기도 하고,

가지전, 고추전, 호박전, 깻잎전을 해서

잔치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가을밤에는 아궁이에 군고구마와 군밤을 굽고,

곶감을 만들기도 했다.


풍요롭고 따뜻한 느낌



나중에 우리도 나이가 들면 할머니나 아버지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와 같이 살던 살찐이(고양이)와 삽사리(강아지)도,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던 메리(강아지)도,

무언가를 돌보고 키운다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일상을 사는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반려식물을 키우기로 했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데려와

15년을 함께 한 반려동물 ‘메리’와의

많은 추억이 있긴 하지만,

독립을 하고 직장에 메여있는 생활을 하는 지금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다는 점,

집에서 홀로 외롭게 우리를 기다릴

애처로운 상황이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우리는

양재 꽃시장과 헌인 화훼단지로 반려식물을 찾으러 갔다.

화려한 꽃보다는 소박한 풀과 잔디를 좋아하는 우리는

2평 마당에 있는 작은 화단에 월동을 할 수 있는,

사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작은 집에 어울리는,

그렇게 크지 않은 나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당이나 도로의 조경수로도 많이 쓰이는 흔하디 흔한,

하지만 그래서 더욱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남천은

우리 집 상징나무가 되었다.


봄에는 귀여운 새순이,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잎과 하얀 꽃이,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겨울에는 새빨간 열매를 맺는 남천은

여름도 겨울도 잘 견뎌내는 힘이 있다.


그 외에도

새 잎이 나올 때마다

가슴 졸이게 되는(바람에 꺾여 잘라내는 일이 많았다.)

부채모양의 잎을 가진 여인초,

예민하고 까다로운 오죽이,

혼자서도 잘 크는 관음죽,

촉촉한 공간을 좋아하는 버드 네스트와 실버 레이디,

고양이 발을 가진 후마타 고사리,

더벅머리 같이 생긴 립살리스 폴스테일,

시원한 이파리가 매력적인 아레카 야자와 테이블 야자,

덩굴식물인 오엽이,

까망이(길냥이)가 자기 집 담요 인양 깔고 자는 털수염풀,

수크렁, 은사초, 아스파라거스, 파키라,

필리아 페페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10년 후에는,

자연 속에 살고 싶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TIP

반려식물이 정해졌다면 양재 꽃시장보다 화훼단지에 가시면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식물을 만나실  있습니다.

처음부터 큰 식물을 데려오는 것보다는, 해가 지남에 따라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http://instagram.com/dolgoj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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