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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architects Dec 29. 2020

지극히 사적인, 투명한 욕실

돌곶이집 ep. 17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일



우리는 잠들기 전, 서로 같은 비누향을 묻히고 

개운하게 하루의 피로를 씻고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목욕은 지극히 사적인 행위이지만 

취향에 따라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집에 들어오자마자, 혹은 잠들기 전과 같이, 

자신에게 맞는 시간대가 있고, 

이를 닦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는 

자신만의 순서가 있다. 


매일의 하루를 시작하거나 정리하는 일, 

목욕에도 자신만의 철학과 생각,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1960년대 이르러 한국에 공동주택이 생기면서 

목욕문화가 점차 샤워 문화로 바뀌게 되었지만,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욕조나 샤워부스를 갖춘 욕실이 딸린 집은 흔치 않았다. 


목욕탕 거울을 뒤덮은 뿌연 수증기와 

뜨거운 물로 채워진 욕조, 

동네마다 굴뚝 달린 대중목욕탕이 성업했고,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간단히 씻다가

일요일 아침이면, 탕에서 몸을 불린 뒤 묵은 때를 밀었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진득하게 눌러앉아 

때를 밀고 야쿠르트를 마시던 목욕탕보다는 

집에서 후다닥 하는 샤워가 더 편해졌다.


욕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북쪽의 한 켠, 

작은 창 하나로 환기를 시켜야 하는 

어두컴컴하고 은밀한 공간이었다. 


우리나라는 목욕문화가 발달해 

습식 화장실이 보편화되어있지만, 

환기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습기로 인해 문틀은 금세 상하고, 

타일 사이사이 줄눈은 곰팡이로 오염되어, 

락스를 뿌려 힘들게 청소해야 하는 고충도 있었다. 


요즘은 큰 사이즈 타일이 보편화되어 

청소의 번거로움이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작은 환기창이나, 

배기장치에 의존해야 하는 욕실은 

습하고 갑갑한 공간이 되기 쉽다.


돌곶이집 욕실은 중정을 향해 

큰 창으로 벽이 구성되어 있고, 

블라인드와 커튼을 통해 시야를 차단한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지만 

사용하는 시간이 길진 않다는 욕실의 특성은 

필요한 순간에만 외부로부터의 시야를 

선택적으로 차단하면, 

더 이상 은밀한 공간이 아니라 

외부와 연결된 개방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욕실 한 면이 창으로 계획되어 있으니, 

항상 은은하게  밝은 빛이 들어오고, 

창 밖의 식물들도 바라볼 수 있다. 

또, 넓지 않은 공간을 최대한 넓고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면대를 욕실과 분리하고 

공간을 구분하는 칸막이 벽을 최소화했다. 

바닥에  온수 코일을 설치해서 습기 제어가 쉽고, 

겨울에도 편안하게 맨발로 바닥을 밟을 수 있다. 


방으로 쓰는 곳과의 경계가 없이 

커튼을 열고 닫음으로 공간이 구분되는 

돌곶이집 욕실은 

작은 중정의 반려식물을 바라보며 

워를 할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TIP    

신라시대, 목욕재계(제사를 지내거나 신성한 의식을 행할 때 목욕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하는 것)를 계율로 삼는 불교가 전해지면서 목욕이 습관화되었고,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죄수에게 목욕벌을 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1993년 세계에서 목욕을 가장 즐기는 나라인 일본에 한국형 사우나와 때밀이 문화가 진출했고 현재도 ‘이태리타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http://instagram.com/dolgoj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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