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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Sep 10. 2020

빠져들고 마는 그림책 세계

그림책을 좋아하는 엄마

요즘은 어른들도 그림책을 많이 찾고 좋아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났다. 어린이만 읽을 것 같은 동화는 어른들도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혹은 지친 일상에 한가닥 위로를 받기 위해 찾는다. 작은 서점에서는 이와 관련한 큐레이션과 독서모임을 열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20대 시절 성인들 중에는 그림책을 읽는 부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마도 청소년기를 지나면서부터는 그림이 있는 책보단 글이 많은 책을 읽는 게 일반적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른들은 잘 안 읽던 그림책이지만 나는 20대 중반쯤 친구가 소개해준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고 그에게 빠져 책에 미하엘 엔데라고 찍혀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사서 모으기 시작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이 비슷한 그림책들을 꽤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간혹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이 집엔 아이도 없는데 왜 동화책이 있어?'라고 물었다. (결혼을 하고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집엔 아이 그림책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내 그림책도 많다. 내 그림책이지만 아이와 함께 읽을 때도 있어 '이 책은 엄마가 아끼는 책이니까 소중하게 다뤄줘~'라고 꼭 부탁한다. 


한 동안은 내 그림책을 사지 않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내 그림책이 도착했다. 나도 읽을 겸 아이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큰 소리로 동화책을 읽었다. 오늘 내가 받은 책은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이 책은 너무 유명해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잊고 있다가 며칠 전 이런저런 핑계 김에 생필품과 함께 배달 받았다.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담겨만 있던 책을 주문한 데는 이런저런 이유가 작용했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를 보는데 줄리아 로버츠가 극 중에서 아이들과 그림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살짝 스쳐 지나갔다. 영화 내용상 중점적으로 보여줬던 그림책은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였지만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내가 평소 관심이 있었던 그림책이기 때문에 눈에 확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몇 번 아이와 서점에 가서 발견하면 아이에게 이 책은 어떻냐고 권했는데 '괴물'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모리스 샌닥의 책은 아아에게 선택받지 못했었다. 

이 그림책에는 가이드북이 들어 있다. 아마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읽어주기 위해서 구매했을 텐데 일단은 칼데콧 상을 받은 동화책이지만 막상 읽어보니 엄마는 망아지처럼 날뛰는 아이에게 "이 괴물 딱지 같은 녀석!"이라고 하고 아이는 거기에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고 해서 저녁을 먹기 전에 방에 갇혀 버리고 만다. 방에 갇혀버린 아이 맥스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거기서 우악스럽게 생긴 괴물들의 왕이 되어 실컷 놀다가 지루해질 때쯤 사랑하는 사람이 떠올라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괴물들을 떠나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큰 소리로 아이에게 읽어주면서도 뭔가 몽글몽글한 느낌이 드는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너무 화가 나 홀로 먼 항해를 떠나는 맥스는 즐겁게 놀지만 거기에서 외로움이 스멀스멀 올라와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혼자 외롭게 방안에 있었을 아이가 생각나서인지 나도 읽어주다 울컥했다.


코로나가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면서 오랜 시간 아이와 집에서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나 나름대로 일을 하면서 살림과 아이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아직 제 스스로 자제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통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규칙을 세워 두고 싶지만 점점 코로나가 장기화가 되어가니 몸이 지치고 마음이 지친다. 아이는 알고 있다. 엄마가 험악하게 굴어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에게 혼나고 꾸중을 들으면 아이도 자기 나름의 스트레스가 생기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 아이를 혼내는 엄마 또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내지르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조금만 참았어도 되었을 텐데'하며 자존감은 쭉쭉 내려간다.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받은 상처를 모두 치유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 줘야 하고 아끼는 마음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아이가 언제까지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해'라고 믿을지 알 수가 없다. 나도 엄마 6년 차이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부모의 위치는 어렵고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이럴 때 그림책은 나에게 한 번씩 환기를 시켜주는 매개체가 되어 준다. 그림책을 읽는 시간은 나를 되돌아보는 '힐링'의 시간일 수도 있고 아이를 향한 내 태도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감상하면서 엄마와 시간을 보낸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렸고 현재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을 비교해 본다. 내 기억엔 우리 부모님도 일 하시느라 바쁘셔서 책을 읽어주시는 부모님은 아니셨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아이들과 서점에 갔을 때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읽어 주었던 책을 보며 추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사실 그게 부러워서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망설이다 이 기회에 사게 된 것 같다. 나도 부모가 되어서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 줘야겠다고 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행동으로 실천되기까지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하루를 종일 아이와 부대끼며 챙기다 보면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체력이 방전되고 지쳐서 얼른 자고만 싶다. 그림책을 이렇게나 좋아하면서 아이에게는 읽어주지 않는 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오늘 저녁에는 자기 전에 꼭 한 권이라도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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