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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우울하진 않은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by 이동영 글쓰기

난 눈물연기를 하라고 하면(-아무도 요청한 사람은 없지만-) 5초 안에 뜬금없이 눈물 흘릴 수 있는 이상한 재주가 있다.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갱년기가 올 나이도 아직 아닌데 늘 울음을 머금은 채 산다. 나 같은 예민한 사람이 또 있다면 부디 안녕을 빈다.

이 정도로 살면서 상담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자랑은 아니다. 어쩌면 마음의 병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까진 사는 데 별 불편함이 없지만, 우울을 품고 사는 게 일상의 평화를 해치고 안정을 방해한다면 상담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이 특유의 예민함은 글을 쓸 때나 강의안을 만들고 질문을 받을 때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가 신체화된 건 30대 중반 직후부터였다. 여태껏 그럭저럭 살만 했는데 어지럼증이 얼마 전부터 심해진 탓에 이석증 검사를 받아 보았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이상이 없다 하길래 대학병원 신경과에 갔다. 항우울제를 어지럼증 약과 함께 처방해 주셨다.

약발 덕인지 전혀 우울하진 않는데 언제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차라리 시원하게 눈물을 흘리면 좀 나아지려나. 그런데 눈물이 날 만한 일이 없다. 계속 없으면 좋겠다. 로또 1등에 당첨된다든지 방송 고정출연 제안을 받는다든지 하는 소식에 기쁨의 눈물 정도는 기꺼이 흘릴 의향이 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딱히 없다는 건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는 소리니 꽤나 운 좋게 잘 살고 있는 것이란 방증이다.

항우울제를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난 우울한 사람인가.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인가. 별로 느끼진 못하지만 이미 우울에 찌든 사람인 걸까. 그냥 항우울제가 가진 효능이 어지럼증의 무엇과 맞닿아 있는 의학적 근거가 있어서 처방해 주신 거겠지. 스트레스성-신경성-으로 어지럼증을 느끼고 자주 체를 하며 편두통에 힘들어하는 만성환자로서 그때그때 넘기기를 반복하니 몸이 극한의 메시지를 보낸 거겠지. 드디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해 내 뇌를 촬영해 보겠다며 검사 예약을 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발견되면 어쩌지? 하는 나와 다르게 의사 선생님은 담담했다. 검사까진 안 받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자주 편두통이 발생하는 걸로 신경 쓰이실 테니 뇌 촬영을 한번 해 보는 것도 좋겠다며.

내가 우려하는 건 다름이 아니다. 천재의 뇌로 판명되어 연구대상이 되면 어쩌나. 별의별 상상을 다 하다가 또 세안을 마치고 거울 앞에서 눈물 대신 미소를 씩 지어 보이며 하루 마무리를 한다. 눈물은 사라지는 것일까. 축적되는 것일까. 드러나지 않은 채 휘발되는 것일까. 어딘가에 계속 고여 있는 것일까.

눈물샘이 잘 보이는 관상을 가진 나는 아무래도 샘의 골이 깊은 것만 같다. 늘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어서 울컥 차오를지도 모르고 그렇게 훌쩍거리다가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르겠다.


마들랜은 '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의 줄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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