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퇴 사유는 '날씨 좋음'

성산 - 연신내

by 더쓰


회사에서 연가나 조퇴, 반차를 사용할때 사유를 적는 공란이 있다. 사실 사용하는 날짜와 시간이 중요하지 사유는 형식적으로 있는 공간이라 공란으로 제출해도 상급자들이 확인을 잘 안하는(거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사유를 굳이 이야기하기 싫다.'라는 의미인 '개인 사유'라는 네글자를 매번 복붙해서 사유란에 적는 편이다.


지난주 금요일 1시간 일찍 퇴근하는 조퇴 결재를 올렸다. 날짜와 시간을 체크한 뒤 결재자의 이름을 체크하고 결재를 올렸는데 조퇴 사유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바로 "결재 완료'. 이렇게 되는거면 다음부터는 진짜 한번 사유란에 실재 마음 속에 있는 이유들을 한번 적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기 싫음', '5시 반 영화 관람', '졸림' 등등. 이러한 것들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데 이런 기준으로 지난 금요일 조퇴사유를 생각해보면 아마 '날씨 좋음'이 되었을 것이다.



뜬금 개인적으로 날씨하면 생각나는 노래들을 한번 올려본다.


뿌연 날 어울리는 스텔라장의 '일산화탄소'

https://www.youtube.com/watch?v=dNW6i4ZdXNQ

맑은 날 어울리는 페퍼톤스의 'Balance'

https://www.youtube.com/watch?v=ZoypSqpNIbg


한 번 들어보세요~!!



청명한 불광천의 모습들


미세먼지가 본격적으로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몇년전부터 맑은 날의 소중함을 맑은 날씨가 올 때마다 느끼고 있다. 그래서 맑은 날이 되면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운 느낌이 들어 그런 날은 그냥 퇴근할때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려 집까지 일부로 걸어가곤 한다.


요즈음 시베리아 고기압 형님의 영향으로 서울과 수도권 지역은 장마기간에도 불구하고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고기압으로 미세먼지가 싹 씻겨가 최근에(7월 2주 무렵) 특히 날씨가 덥지않고 선선하니 좋았다. 그래서 이 날도 단순하게 이런 맑은 날을 즐기고픈 마음에 1시간 조퇴를 썼던 것이다.


20200710_183705.jpg 불광천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퇴근 시간 1시간 전인 5시에 사무실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불광천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불광천 근처에 있는 월드컵경기장 역에서 내려 응암역을 지나 집이 있는 연신내까지 걸어가보는걸로 대략 이 날의 코스를 정했다.


평소에 불광천에 자전거를 타고는 많이 지나가는 편인데 이 날은 걸어서 불광천을 찾아갔다. 불광천에 가보니 날씨가 좋은 날답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걷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등이 나와 천주변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정말로 숨 막히는 도심에서 이런 하천과 공원, 숲 등의 존재는 도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걸은지 1시간 정도가 되었을까? 햇빛이 비스듬하게 뉘엿뉘엿 하천 주변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불광천을 북쪽을 향해 걷다보면 하천 뒤 배경으로 백련산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쪽에 아주 강렬하게 햇빛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상세히 말하자면 백련산 앞쪽에 있는 아파트 쪽..) 시간이 갈수록 배가 고파져 점점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어져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는데 점점 햇빛과 함께 어둑어둑해지는 배경이 뭔가 성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상쾌한 기분을 선사했다.


20200710_184430.jpg 불광천 위의 풍경들. 왜 불광천 밖을 주로 걸었는지는 다음편에서 공개.


가다가 목이 말라 시원한게 급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 브랜드는 공차다. TMI지만 공차의 블랙밀크티 "당도 30에 얼음없음 펄추가"는 언제 마셔도 맛있는 인생 음료 중에 하나다.


하지만 공차 이전 내 최애 프랜차이즈 음료수 가게는 쥬시였다. 몇년 전 그 정량을 속여 판다는 뉴스와 함께 점점 점포가 줄어들어 현재는 점포수가 서울 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숫자가 되었는데 예전에는 딸바를 마시기 위해 일부러 쥬시를 찾아갔을 갔을 정도로 애용했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이 날도 음료수로 공차를 마실까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가는길에 쥬시가게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고민 끝에 쥬시로 바로 들어갔다. 날이 더운 영향이 있었겠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한 10분 정도 기다린 끝에 딸바를 받아 마셨고 많이 걷다가 마셔서 그런건지, 오랜만에 마시는거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꿀맛이었다. 동네에 쥬시 가게가 더 있으면 더 자주 사먹을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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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도 합리적이었고 오랜만에 먹은 쥬시 딸바는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음료 하나 마시고 에너지 충전!! 그래서 새절역을 지나 응암을 거쳐 연신내까지 쭉 걸어가기로 했다. 뒤늦게 확인하니 이 시점부터 슬슬 배가 고파서 그런건지 여기부터는 찍은 사진이 별로 없었다. 배가 고프면 여러 모든 의욕이 사라지게 되는 법. 그래서 연신내에 도착해 핫도그를 배를 달래고 내친김에 거리가 조금 남은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이 날 선선하기도 하고 하늘 풍경이 예술이라 하늘만 봐도 힐링이 되어 피곤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뿌연 하늘이 계속 덮고 나서야 푸른 하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되고 나서야 마스크 안쓰고 돌아다니던 예전의 평범했던 일상들이 소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푸른 하늘이 떠오르는 날씨만 되면 더 사진을 찍게 되고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지 모르겠다.


조만간 결재 사유에 '날씨 좋음'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생길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코로나 19라는 사유 카테고리가 새로 생기긴 했다.) 만약에 생기게 되면 그 때 '날씨 좋음'을 자주 쓰게 될테니 그때까진 날씨가 좋아 조퇴를 해도 그냥 '개인 사유'로 결재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20200710_195825.jpg 하늘의 구름이 정말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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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7월 10일

걸은 시간: 2시간 30분

날씨 : 흐림과 맑음 사이

걷기 루트 : 성산동 - 증산역 - 새절역 - 응암역 - 구산역 - 연신내 - 집




[다음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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