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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Jun 15. 2021

개와 고양이의 치열한 자리 쟁탈전

[작은 친구들 4호] 박은지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좋은 점은 자고 일어났을 때 창밖으로 쨍하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아침에만 잠깐 해가 들어오고 종일 그늘이 지는 동향이라, 아침에는 눈부시고 점심부터는 어두워 계속 전등을 켜놓아야 한다. 따뜻한 자리를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날이 풀리는 계절이 되면 아침에 잠깐 햇빛이 나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겨울에는 아무도 올라가지 않던 베란다 캣타워에 세 마리가 번갈아 가며 올라가 누워 있는데, 나는 아침에 일어나 그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고양이 세 마리는 우리 집을 그때그때 적당히 잘 나누어가며 사용하는데 한 장소에 모여 있지는 않는 편이라, 아침 캣타워에 올라가 있는 건 대체로 한 마리뿐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며 오늘은 누구지, 하고 캣타워를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가끔 날씨가 정말 화창할 때는 오늘 기온을 알려주듯이 두 마리가 올라가 있을 때도 있다. ‘흥, 저 녀석이랑 한 캣타워를 쓰기는 싫어’보다 ‘오늘은 햇볕 쐬기 딱 좋은 날이야!’의 마음이 이기는 그런 날이다. 그럴 땐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 탐스러운 과일나무를 보는 것처럼 괜히 마음이 풍족해진다.



고양이가 있는 집이라면 대개 그렇듯 우리 집도 곳곳에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나 스크래처가 놓여 있는데, 고양이라고 해도 각기 취향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 재미있다. 예전에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자리에 방석이나 물그릇을 놓아주세요’ 같은 지침을 보면 고양이가 좋아하는 자리를 어떻게 아는지 궁금했는데, 직접 키워보니 저절로 알게 됐다. 게다가 고양이들이 주로 머무는 자리를 보면 고양이의 성격도 묻어나는 듯하다. 매사에 느긋하고 게으른 달이는 몸이 폭 파묻히는 해먹에 올라가 있는 걸 좋아한다. 이미 충분히 게으른데도 고양이 번역기를 돌려 그릉그릉 소리를 해석해보면 ‘게으름 피우고 싶어요’, ‘같이 느긋하게 있어요’ 따위의 말만 한다.


아리는 주로 사람의 허리 높이 정도의 스크래처나 하우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사람 친화적이지만 겁이 많아서 언제든 주변을 지켜볼 수 있는 자리를 은연중에 차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공식 껌딱지이기도 해서 내가 거실에 있으면 아리도 거실에, 내가 안방에 있으면 아리도 이내 안방으로 나를 따라 들어온다. 유기되어 길고양이 생활을 오래 했던 아리가 지금은 나를 가장 안전한 보호막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 나는 아리가 스킨십을 해올 때마다 짠하고도 고마운 마음이 들곤 한다. 



그리고 제이로 말할 것 같으면 항상 새것을 좋아한다. 제이는 새로 산 물건에는 제일 먼저 달려와 냄새를 맡고 점검한 다음, 항상 제일 먼저 영역 표시를 해두는 대장 느낌이랄까. 몸집은 제일 작지만 우리 집에 온 첫째 고양이니까, 스스로 그 정도 권한은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난 그 덕분에 ‘비싸게 샀는데 고양이가 안 쓸까 봐 걱정’할 일이 줄었다. 


사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달리 산책을 필요로 하지 않고 늘 집에 머물러 있는 영역 동물이라, 그만큼 집안 환경은 고양이에게 맞춰주려고 신경을 쓰게 된다. 집에만 있다고 해서 고양이들이 딱히 답답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고양이의 습성상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곳이나 상자처럼 몸에 딱 맞는 공간에 들어가 쉴 수 있는 자리 등 환경적으로 풍부한 요소를 마련해주는 건 고양이의 삶의 질을 올려줄 수 있다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고양이들이 새롭게 치열하게 쟁탈하는 자리가 생겼다. 리트리버 여름이가 몸집이 커지면서 원래 하우스로 사용하던 켄넬이 작아져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줬다. 퀸사이즈 침대 옆에 놔도 존재감이 밀리지 않는 XL 사이즈의 커다란 방석인데, 30kg 체중의 여름이도 넉넉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른 것이다. 오랜만에 여름이만을 위해 고른 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이를 위해 샀다고 해서 여름이만의 것이 되는 건 아니었으니, 아무래도 우리 집 개의 최하위 서열을 간과한 것 같다. 



처음에는 여름이가 잘 쓰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낮에 들여다보면 고양이가 혼자 그 큰 방석을 다 차지하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고양이는 바뀌는데 여름이는 좀처럼 순번을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작 주인인 여름이만 바닥으로 밀려나는 신세인 것이다. 여름이가 같이 눕자고 슬쩍 구석에 몸을 들이밀면, 붙임성 있는 아리 정도는 모르는 척해주지만 까칠한 사냥꾼 제이는 금방 솜방망이부터 날린다. 여름이가 불쌍하면서도 고양이들의 적반하장이 왠지 귀엽고, 그러다가도 끝내 방석을 쟁탈하지 못할 게 뻔해서 여름이가 누울 자리가 생기도록 고양이를 슬쩍 옆으로 치워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결국 개와 고양이의 최종 종착지는 우리 부부가 누워 있는 침대다. 실은 개나 고양이나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어디가 됐든 집사의 곁인 것 같다. 

 나는 우리 집이 동물들에게도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반려동물은 결국 나의 선택이자 책임에 모든 걸 맡기고 있는 존재이기에, 대단한 걸 해줄 수는 없어도 최소한 집이 나에게만큼 편안하고 안정적인 공간이길 바라게 된다. 아무리 좋은 데를 놀러 갔다 와도 결국 ‘아, 역시 집이 최고다’를 외치게 되는 곳. 비싸고 넓은 집은 아니더라도 이 공간에 깃들어 살아가는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가장 좋은 곳. 그 안에서 개도 고양이도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고 좋아하는 자리를 찜하는 과정을 보면 이곳이 동물들에게도 소중한 보금자리라는 실감이 나고, 나는 질리지도 않게 매번 행복해진다.



글쓴이. 박은지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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