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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Apr 15. 2021

개와 고양이 싸움이 부부 싸움으로 번진 이유

[작은 친구들 2호] 박은지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매월 15일에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개와 고양이 싸움이 부부 싸움으로 번진 이유



나는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는 말만큼이나 ‘부부는 하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부는 개인과 개인의 아주 밀접한 결합일지언정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0여 년간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약간의 취향과 성격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사랑으로 인정할 수 있을 뿐, 두 개별적인 존재가 결혼을 통해 하나로 취합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두 사람이 한 집에 스며들기도 바쁜데 그 와중에 새로운 안건이 투입되면 문제는 종종 심각해진다. 많은 신혼부부가 초반에 갈등을 겪는 이유 중 하나도 두 사람의 관계에 각자의 가족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양가 부모님 두 분씩을 더해 총 여섯 명의 그룹을 조율하고 이끌어간다는 것은 평생 리더십을 지니고 살아온 사람이라 해도 결코 쉬울 수 없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면서 각자의 부모님을 우리 가정에 지나치게 편입시키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지만, 다음 위기는 우리가 새 생명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찾아왔다.


평생 고양이를 좋아해 본 적 없는 남편은 나와 결혼한 후 고양이를 입양하는 데에 동의했지만, 고양이와의 삶에 적응하는 것은 그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고양이에게 ‘앉아’나 ‘손’ 같은 몇 가지 훈련을 시도해 보다가 모두 실패했고, 고양이가 침대 위에 올라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고양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고양이의 병원비가 상상 이상이라는 데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도 세 마리 고양이와 함께 4년쯤 살다 보니 고양이가 밥 먹는 소리나 걷는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아맞출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남편과 고양이가 서로에게 적응하고 모두가 어엿한 한 가족이 되었을 때쯤, 우리는 대형견 여름이를 입양했다. 대형견을 키우는 건 남편이 오랫동안 원하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에 대한 남편의 태도가 못내 못 미더워 입양 전에 몇 번이나 그에게 다짐을 받았다. 매일 산책을 시켜야 하고, 대형견의 병원비는 고양이의 몇 배가 넘으며, 집에서만 머무는 고양이와 달리 외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개에게는 충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남편은 반려동물에 대해 완전히 초보자였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과연 개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의구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개를 입양하는 것과 잘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개를 ‘생존’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람과 개가 어떻게 함께 행복할 수 있을지를 알기 위해서는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뜻밖에도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남편은 여름이를 입양한 그날부터 일단 강형욱 훈련사가 나오는 모든 유튜브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눈곱을 떼주고, 귀 청소를 하고, 빗질을 하고, 좋은 사료를 검색하고 영양제를 종류별로 사다 먹였다. 출근 전에 산책을 시켰고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퇴근 후에 여름이를 차에 태우고 반려견 놀이터에 데려갔다. 고양이의 몸이 조금 안 좋다 싶으면 병원을 가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던 내게 너무 유난스러운 게 아니냐고 묻던 남편은 이제 겨우 한 살 남짓인 여름이의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며 난리였다. 고양이는 통 속을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던 그의 편중된 지극정성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남편과 나의 성향이나 취향이 극과 극으로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개와 고양이를 대하는 각자의 방식은 거의 극단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나는 조용하고 때로는 거리를 두는 고양이와 조용히 한 공간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남편은 무조건적인 애정을 거름망 없이 쏟아내는 개의 사랑에 적극적인 교감과 리액션으로 보답했다. 평소 장난삼아 남편과 ‘우린 개와 고양이 같아’라고 했던 게 그야말로 개와 고양이 사이에서 리얼리티로 펼쳐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것은 문제가 없지만,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우리가 모두 한 공간에서 머무는 존재들이라는 점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를 잘 키우면서도 고양이의 삶의 질을 함께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즉 고양이와의 평화로운 합사였다. 남편이 여름이의 건강과 훈련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여름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들은 여름이가 격렬하게 움직이면 잽싸게 침대 밑이나 책장 위로 숨어버렸고, 특히나 예민한 제이는 여름이를 향해 하악질까지 하느라 바빴다. 여름이는 남편의 이해에 힘입어 악의 없이 종일 고양이를 쫓아다녔고, 집안의 평화를 수호하고 싶은 나의 스트레스도 쌓여갔다.



육아를 할 때도 부모의 생각이 다르면 그걸 맞춰나가느라 초반엔 자주 싸우게 된다던데, 집에 새로운 종(種)의 생명체를 들여놓는 것도 그와 다를 바 없었다. 개와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의 차이가 부부싸움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리 집은 순식간에 개 파와 고양이 파로 나뉘었다. 남편은 내가 여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차별한다고 하고, 나는 여름이는 당장 고양이를 대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누구도 양보하기 어려운 싸움과 고민 끝에 우리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한 달 동안 여름이를 훈련소에서 교육시키기로 했다. 생각지 못한 비용에 일주일에 한 번씩 왕복 네 시간을 들여 보호자 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고양이와의 합사뿐 아니라 대형견인 여름이가 사람과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들도 배울 수 있었다. 훈련소를 마치고도 꾸준히 연습한 결과 여름이는 여전히 고양이를 쫓지만 달리지 않고 느릿느릿 다가가게 되었고, 고양이는 그런 여름이를 무시하거나 한 대 때려서 쫓아내는 다소 과격한 해결법을 익혔다. 어쨌거나 초반의 좌충우돌 끝에 세 종(種)의 한집살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 역시 부부가 해내야 하는 공동 프로젝트 중의 하나다. 훈련에는 가족 모두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동물의 병원비로는 얼마를 쓸 수 있는지, 집안 환경에 대한 예민도는 얼마나 다른지, 동물과 함께하는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대화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다고 믿은 시점에서도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고양이를 잘 키웠으니 개도 얼마든지 가능할 거라는 기대는 지나친 낙관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어설픈 인간들과 달리 동물들이 훌륭히 적응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될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이들이 가족이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결국 부부의 공통된 노력과 성장이었던 셈이다. 물론 그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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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은지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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