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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Jul 03. 2024

내 오빠는 장손입니다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이라는 죄

1993년 2월 7일, 대구에서 한 집안의 첫아들이 태어났다. 뽀얀 피부에 쌍꺼풀 없이 긴 눈매, 통통하면서도 살짝 쳐진 입매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생김새였다. 아이는 유난히 울음이 적었다. 어찌나 순했는지, 그의 어미는 '아들이 이렇게 착한데, 딸은 얼마나 예쁠까?' 싶어 큰 고민 없이 둘째를 가졌단다. 안타깝게도 첫 아이와는 완벽하리만큼 다른 자식이 나왔지만.


그는 똑똑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영재라는 소리를 자주 들을 만큼. 아들의 가능성을 엿본 엄마는 위장전입까지 해가며 당시 손에 꼽는 학군지로 자식들을 전학시켰다.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상당하던 동네에서도 그는 뒤처지지 않았다. 한해에 서울대로 10명, 20명씩 보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덕에 어른들의 미움을 사는 일도 적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사춘기마저 고요하게 지나 보낸 외계 생명체였다. 엄마의 기대감이 사그라들 틈이 없었다.


고집 없이 똘똘한 그는 하필 집안의 첫 손자였다. 지독하게 보수적인 가정의 '장손'은 의미가 남다르다. 우연찮게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이라는 이유로 온 집안 어른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됐다. 내가 시험 성적이라도 잘 받아오는 날엔 "집 안에 공부로 성공한 자식은 한 명이면 족하다."며 모두가 장손만 바라보았고, 제사 날에 며느리와 손녀들은 절을 할 수 없었으며, 남자와 여자 밥상이 따로 차려질 정도였으니 얼마나 개 같은 문화였을지 짐작이나 될까. 당시 조부모님 댁에는 잘 쓰지 않는 창고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꽤 자주 그 방에 불려 갔다. 오직 장손에게만 부여되는 비밀 용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 주자로 태어난 나는 쓸데없이 눈치가 파삭했다. 가자미 같은 눈을 요리조리 굴리다, 기어이 창고방에 불려 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또 오빠야만 몰래 돈 주네"라며 툴툴거렸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 건지 가끔은 일부를 떼어 주거나, 단 둘이 있을 때 맛있는 배달 음식을 시켜주곤 했다. 받은 사람이 임자지. 나라면 절대 나누지 않았을 텐데, 멍청한 그는 저밖에 모르는 동생을 꽤 살뜰히 챙겼다.


우리는 성적이 떨어지면 매를 맞기도 했다. 둘 다 썩 괜찮은 석차였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열이 하늘을 찌르는 엄마의 욕심을 채우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녀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도박에 빠져 자꾸만 돈을 날려먹는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두 아이를 키워내야 했으니까. 그 불안감은 자식들을 옥죄는 것으로 해소됐다. 더 높은 성적을 받아야만, 더 좋은 대학을 가야만 아비 없는 자식이라 손가락질받지 않을 것 같았단다. 어느 날은 꼬꾸라진 석차에 아들 방안에 널브러진 책을 모조리 아파트 소각장에 버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동생년과는 달리, 그는 내가 혼날 때마다 한사코 막아주려 애쓰곤 했다.


내 오빠는 그랬다. 거지 같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원치 않는 관심을 온몸으로 감내하면서도, 제 동생만큼은 갑갑한 철창에 갇히지 않길 바랐던,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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