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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Jul 05. 2024

조금씩 병들어가는 중

언제부터였을까. 네 말 수가 줄어든 게.

선명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목구비를 가진 가족들 속, 오빠는 유난히 똘망한 눈을 달고 태어났다. 눈동자는 어찌나 새카만지, 길고 풍성한 속눈썹까지 더해져 샘이 날 정도로 빛났다. 막 걸음마를 떼던 시절, 함께 있던 우리를 보며 오빠는 딸로, 나는 아들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단다. 당시 유치원 학예회에서는 가장 인물 좋은 어린이 남녀를 뽑아 사회를 맡기곤 했는데, 그런 자리에 익히 서있을 정도로 그는 참 예뻤다.


장난기 많은 제 아비를 쏙 빼닮아 짓궂은 면도 많았다. 일부러 면전에 방귀를 뀌고 도망간다든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에 달려갔더니 침대에 널브러진 채 제 방 불을 좀 꺼달라고 하는 등의 장난을 자주 쳤다. 잔뜩 약이 오른 내 목소리에 오히려 신난다는 듯 능글맞은 미소를 지을 때면 주먹으로 확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노래 부르기를 참 좋아했다. 여전히 기억나는 옛 노래들이 오빠의 흔적일 때가 종종 있을 만큼. 가끔은 엄마와 셋이서 동네 노래방에 가곤 했는데, 부르기도 곧잘 불러 꽤 놀랐던 기억이 있다. 가족들에게만 보여주긴 영 아쉬웠는지, 학교 축제에서도 한 곡 뽑았다. 무대 위에 올라서자마자 "안녕하십니까 록사마입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꽤 오랫동안 '록사마'라는 별명으로 불려졌다. 학창 시절, 종종 오빠와 같은 학원을 다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어, 니 록사마 동생아이가?'라며 말을 걸어온 적도 있다. 참나. 감히 겨울연가 '욘사마'에 본인 이름을 갖다 붙이다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리도 왁자지껄하던 그는 언젠가부터 말수가 줄었다. 속 시끄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묵직한 헤드셋을 낀 채 컴퓨터 화면만 바라봤다. 남들은 부모가 헤어지면 한쪽을 못 보고 살기도 한다는데, 우리 집은 이혼 후에도 지독하리만큼 싸우는 날이 잦았다. 아빠는 집에 제대로 된 돈을 가져다주는 법이 없었고, 엄마는 그런 그를 닦달하는 일을 포기할 줄 몰랐으며, 생활고에서 오는 어른들의 압박감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배설되었다. 어느 날은 술에 절여진 엄마가 전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데도 오빠는 가만히 키보드만 두드릴 뿐,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나와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것 마냥 헤드셋으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그를 보며 '저 새끼는 집구석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지금 게임을 할 수가 있지?'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얼마나 병들어가고 있는지를. 무언가로 귀를 틀어막고, 가상의 세계를 바삐 떠돌아다녀야만 제정신으로 잠들 수 있는 날이 있는지를.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이 좁은 집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발악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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