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6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조금씩 병들어가는 중

쇼를 망친 돌고래 ep.2

by 민정 Jul 05. 2024

선명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목구비를 가진 가족들 속, 오빠는 유난히 똘망한 눈을 달고 태어났다. 눈동자는 어찌나 새카만지, 길고 풍성한 속눈썹까지 더해져 샘이 날 정도로 빛났다. 막 걸음마를 떼던 시절, 함께 있던 우리를 보며 오빠는 딸로, 나는 아들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단다. 당시 유치원 학예회에서는 가장 인물 좋은 어린이 남녀를 뽑아 사회를 맡겼는데, 그런 자리에 익히 서있을 정도로 그는 참 예뻤다.


장난기 많은 제 아비를 쏙 빼닮아 짓궂은 면도 많았다. 일부러 가족들 면전에 방귀를 뀌고 도망간다든지, “김민정!!! 빨리 와봐!! 빨리!!!” 다급히 소리를 질러 달려가 보면, 침대에 널브러진 채 제 방 불을 좀 꺼달라고 하는 식의 장난을 자주 쳤다. 잔뜩 약이 오른 내 모습에 되려 신난다는 듯 능글맞은 미소를 지을 때면 여간 얄미운 게 아니었다. 노래 부르기를 참 좋아했다. 무의식중에 흥얼거리는 옛 노래들이 오빠의 흔적일 때가 잦을 만큼. 가끔은 엄마와 셋이서 동네 노래방에 가곤 했는데, 꽤 어려운 노래를 곧잘 불러 놀랐던 기억이 있다. 가족들에게만 보여주긴 영 아쉬웠는지, 학교 축제에서도 한 곡 뽑았다. 무대 위에 올라서자마자 "안녕하십니까. 록사마입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학창 시절 내내 '록사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한번은 오빠와 같은 학원을 다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 니 록사마 동생 아이가?”라며 내게 말을 걸어온 적도 있다. 참나. 감히 겨울연가 '욘사마'에 본인 이름을 갖다 붙이다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게. 속 시끄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묵직한 헤드셋을 낀 채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는 날이 늘었다. 남들은 부모가 헤어지면 한쪽을 못 보고 살기도 한다는데, 우리 집은 이혼 후에도 지독하리만큼 싸우는 날이 잦았다. 아빠는 집에 제대로 된 돈을 가져다주는 법이 없었고, 엄마는 그런 상대를 닦달하는 일을 포기할 줄 몰랐으며, 생활고에서 오는 어른들의 압박감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배설됐다. 어느 날은 술에 절여진 엄마가 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치며 신세한탄을 늘어놓는데도 오빠는 키보드만 두드릴 뿐, 이렇다 할 동요가 없었다. 나와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그를 보며 '저 새끼는 집구석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게임을 할 수가 있지?'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오빠가 얼마나 병들어가고 있는지를. 무언가로 귀를 틀어막고, 가상의 세계를 바삐 떠돌아다녀야만 제정신으로 잠들 수 있는 날이 있는지를.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이 좁은 집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발악하고 있는지를.



이전 01화 내 오빠는 장손입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