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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Jul 09. 2024

비극의 시작

제발 내 좀 집으로 데려가줘

이혼 후 아이들을 홀로 감당하게 된 엄마의 술주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꼬여가는 혓바닥만큼 자식들의 장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날 선 눈동자로 성적표를 더듬거리다, 성에 차지 않는 숫자를 마주하면 폭언을 일삼았다. 어떤 날은 술에 취해 내 중학교 담임 선생님께 전화해 '이래 가지고 민정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나 있겠냐'며 따져 물었고, 어떤 날은 성적표를 갈기갈기 찢으며 다니던 학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했으며, 또 어떤 날은 책상에 쌓인 우리의 문제집을 아파트 소각장에 버리기도 했다. 정말 공부를 못 했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오빠와 나는 꽤 괜찮은 성적을 받고 있었다. '이럴 거면 다 때려치우라'는 그녀의 말에 '진짜 때려치운다는 게 뭔지 보여주겠다'며 완전히 연필을 내려놓기까지는.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시켜주겠다던 엄마는 학업과 관련 없는 모든 활동들을 제한시켰다. 빡빡한 통금 시간을 정해놓고, 지켜지지 않을 때마다 회초리를 들었다. 당시에는 교내 체벌이 허용됐는데, 같은 반 학우들이 선생님께 맞을까 초조해할 때 나는 '그냥 좀 아프고 말지 뭐'라고 생각할 만큼 맞는 상황에 익숙했다. 말을 듣지 않을 땐 휴대폰을 압수하거나 정지시키는 방법으로 우리의 자유를 억압시켰다. 어쩌다 한 번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니,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지붕 아래, 우리 집 희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빠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뜬히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학교와 조금씩 멀어지더니 기어이 수능까지 망치고 말았다. 갈만한 대학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영 탐탁지 않았다. 사실 이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점수였던 건지, 스스로가 만족할 수 없었던 결과인 건지. 결국 그는 재수를 결심했다.


나중에서야 들었지만 오빠는 재수를 하겠다고 선언한 지 한 달 만에 그 말을 뱉은 걸 후회했단다. 여느 평범한 남매가 그렇듯, 나는 그 이유를 캐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끔은 우리가 그때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상상해 보곤 한다. 그렇게 재수를 시작한 오빠는 우리가 살던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학원들 중 한 군데에 다니게 되었다. 장손의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는 오래전 남이 되어버린 며느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제 집이 학원과 거리가 가까우니, 편히 공부하기 위해 오빠를 그곳에서 지내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아침부터 밤까지 내리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흔쾌히 동의했다. 며칠 후 그의 짐은 모조리 할아버지 집으로 옮겨졌다.


공부하는 아들의 뒷바라지가 덜어지며, 엄마 역시 전보다 편한 일상을 보냈을 거다. 그렇게 하루, 이틀, 몇 달이 흘렀을까.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부쩍 말수가 줄어든 후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법이 없던 아들의 통곡 섞인 전화.


"엄마.. 제발 내 좀 집으로 다시 데려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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