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짱에서 달랏으로 향하는 버스표를 끊었다. 약간의 더움과 시원한 바다의 조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곳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환상과 아쉬움은 항상 가슴속 어딘가에 맴돌 것 이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남부에선 가장 시원한 도시인 달랏. 꽃의 도시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그곳.
산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약 5시간을 달렸다. 한눈에 봐도 유럽인들의 손길이 닿은 티가 나는 그 도시에 도착했다. 배낭여행의 진가는 항상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오기에, 이번에도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배낭을 풀러 가는 길에 공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짐을 대충 풀고 스쿠터를 빌려 조금은 시원한 이 도시를 한 바퀴 구경해보고자 하는 찰나, 그 소녀의 입에서 한국어가 흘러나왔고 그 친구를 포함하여 총 4명의 가족이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오늘 경험한 캐녀닝에 대해서 신나게, 동시에 너무나 무서웠고, 또 지금은 지쳐 있다는 하소연을 늘여놓기 시작했다.
세상에 여기에서만 할 수 있다는 희소성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마련이지 않을까. 달랏에서의 캐녀닝은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안전하면서 쉽지만 조금은 잔잔한 코스와 어려우면서 스릴 있지만 중도에 무서워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는 다른 코스. 도전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은 당연히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픽업 버스가 왔고,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자들이 한데 모여 깊은 산으로, 계곡으로 이동한다. 구불구불하고 덜컹거리는 산길을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어느 계곡 중턱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마치 훈련캠프에 온 것처럼 계곡을 내려가는 방법에 대하여 시범을 보이고, 연습을 해보고, 조심하라는 상투적인 안내를 받았다.
여느 산과 다를 것 없이 푸름이 가득했고 새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는 이 곳에서, 도전정신이 깃든 여행자들은 마치 훈련이 완료된 전사들 같았다. 우리가 첫 발을 내디딘 곳은 약 5m 정도의 절벽이었다.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며 동요하는 전사들. 잠시 후에 닥칠 시련과 인생의 교훈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정도는 쉽다고 나 역시도 자만했기에.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마 10 몇 m쯤 되었을 것이다. 물이 흐르는 폭포 한가운데를 내려가는 코스에 다다랐다. 솔직히 조금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 명 두 명 준비된 선수들이 내려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앞 서 연습한 대로만 내려가자는 생각으로 줄을 잡고 뒤로 돌아 내려갈 준비를 한다.
한 발 두 발 발을 내디디니, 폭포가 무겁게 나를 누르고 있음이 느껴진다. 스무 걸음쯤 내려갔나, 폭포 속 바위를 짚으려 내디딘 발이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내 몸은 수면과 수평을 이루고 또 동시에 내리는 폭포와 수직을 이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발을 다시 짚으면 될 줄 알았으나, 한 번 미끄러진 바위는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머리 위로는 세차게 물이 쏟아지고, 당황한 채로 얼마나 많은 물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뒤를 돌아 몇 걸음을 더 내려가야 하는지 확인하고 싶은데 폭포를 이겨낼 힘도 없고, 헬멧을 두드리는 자연의 물소리가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저 공중에서 대롱대롱, 허우적대며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풍덩.” 겨우 정신을 차려 한 발자국만 이동하는 순간 물 웅덩이에 빠졌다. 그랬다. 나는 최후의 한 발자국만 남겨놓은 채 죽음의 사투를 벌였던 것이다. 아마 지켜보는 사람들은 나에게 다 왔다고 손을 놓으면 된다고 소리쳐 주었을 텐데,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공포에 잠겨있었고, 구원의 목소리는 모두 폭포수에 잠겼었겠지.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디뎌서 갈 수도 있고, 또 손을 놓아도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하다하다 힘에 부쳐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땐, 가끔은 손을 놓아버리자. 누가 알겠는가, 지금 이 순간이 길 끝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