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잉 Oct 07. 2024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어릴 때부터 꽤 오랫동안 이승만과 전두환은 정신나간 독재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박정희도 독재자라는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양면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조금 더 나은 평가를 내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는데, 사실상 익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곳에서 그 생각을 말하는 것도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왜냐하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악마화하고 그 사람을 옹호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서 싸이코패스, 매국노, 인권의식이 결여된 인간 등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측면에서 이런 세태가 좋지 않다고 본다. 우선 첫 번째로 전직 대통령들은 한국사를 알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을 욕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이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온통 비난과 과오로만 채워넣는다는 것은 역사 공부를 기분 더러운 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줄여서 이박전)은 과오에 대한 책임이 있는 만큼 공에 대한 기여도 있다. 이 점이 공정하게 조명되지 않는 것은 결국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가지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박전의 공을 한 번 조명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이승만은 국제관계에 대해 당대에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청소년기부터 서양 선교사가 세운 배화학당에서 교육을 받아 감옥생활 7년간 영어 신문과 서양 책들을 탐독하며 국제 정세에 대해 이해하고 그 안에서 조선이 가져야할 처세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고 대한민국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임시정부 때부터 미국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광복 후에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데에도 이승만의 기여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과의 유대관계는 뿌리 깊은 것이어서 만약 미국과의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북한처럼 자연스럽게 중국에 의존하려는 사람들이 더 득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토지개혁도 이승만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가 재건됐으면 토지개혁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를 보면 정치인이 곧 지주인 경우가 많아 토지 개혁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결국 자기 재산을 가지는 중산층이 태동할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경제 성장의 동력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다. 토지 개혁을 제대로 단행한 것은 분명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승만이 직접 쓴 <독립정신> 등의 책이나 글을 읽어보면 이승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위인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만을 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국가적인 일을 진지하게 생각했고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디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이박전을 악마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론 헌법과 인권을 무시한채로 현대사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이박전이 비난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이제는 공과과를 균형있게 조명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과오가 집중 조명된 것을 고려했을 때 이제는 의도적으로 좀 더 공을 조명해도 된다고 본다. 




이전 04화 역사에는 미친 사람만 기록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