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낭만이 아니라 기술

by 신동일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우리가 소비하는 사랑에 관한 대중 콘텐츠는 대개 달달하고 낭만적인 서사로 구성되어 있어요. 연애를 다룬 스토리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랑의 시작(만남)이 있고 서로를 좋아하고 몰입하다가 갈등을 겪죠. 연애 감정이 최고치에 이를 때 헤어지기도 하지만 사랑을 고백하거나 결혼을 하면서 플롯은 종결이 됩니다.


1시간 반 길이의 로맨스 영화를 보면 남녀주인공만 화면에 자꾸만 등장해요. 둘은 사랑에만 열정을 다하다가 키스를 하고 절절한 눈빛으로 사랑한다고 자꾸 말합니다. 그러다가 눈물을 흘리고 아프게 헤어지면서 끝이 나기도 합니다.


당신의 사랑도 결국 이런 식일까요? 아닙니다. 이건 당신이 하게 될 사랑을 거의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어요.


예를 들면, 통속적인 연애사와 달리 알랭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과 일상을 그나마 다차원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단순한 플롯과 캐릭터로 만든 알랭드 보통의 연애소설을 나는 좋아합니다. 연애사와 인간관계를 다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을 심리분석서처럼 줄을 긋고 읽었던 기억이 나요.


네 번째 연애소설로 나온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몸서리치도록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권태로운 결혼 16년 차 남편이자 아빠인 주인공 라비가 등장하죠. 라비와 마찬가지로 아내 커스틴 역시 상처를 받고 성인이 된 것이니 둘의 결혼생활이 온전할 수만 없어요.


흔한 연애 스토리는 서로를 발견하는 장면, 이끌림, 감정의 변화, 신체적 결합에 집중합니다. 그에 반해 여기서는 서로 경청하고, 인내하고,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연애의 과정이 드러나요. 그래서 사랑의 속성을 낭만이나 열정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기술로 봅니다. 소설의 영어 제목 역시 이런 내용을 반영하듯이 ‘The Course of Love’입니다.


첫눈에 반한 이유는 사실 미디어의 재현일 뿐 별로 대단치 않을 수 있어요. 자신의 내면에 익숙하게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일 수 있습니다. 그걸로는 긴 세월 살아가며 사랑하는 둘만의 관계성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든, 유기견 봉사활동을 하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늘 다시 정의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관념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일상적인 실천으로부터 관념은 새롭게도 딴딴하게 의미화될 수 있어요.


운명적으로 만난 배우자와 늘 뜨겁게 사랑하고 심지어 소울메이트가 되었다는 연애사는 완전 뻥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에 관한 한 불완전하고 미숙한 주체입니다. 그럴 수 없어요.


분투하고 협상적인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과 그의 연인 알렉산드라 야신스카 카니아의 인터뷰 기사가 잘 다루고 있어요. 당당하고 오래 사랑할 마음이라면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해요.


당시 89세였던 바우만은 헤어지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을 포기하고 고립과 고독의 감정을 선택하는 세대에게 우리 모두 사랑의 객체이면서 주체이기에 사랑을 하면서 갈등과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랑으로 인해 함께 살아가는 지혜와 행복을 분명 느낄 수 있다고 위로합니다.


말다툼 수준에서 낙담하거나 갈등 몇 번 있다고 헤어질 것이 아니라면 가장 먼저 우리는 서로 사랑의 주체이면서도 사랑받는 대상이란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MBTI 유형이나 성격에 상관없이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은 온순하지만 않습니다. 당신의 눈으로 발견되는 것, 당신의 기억으로 편집되는 것으로 끝나지도 않아요. 그(녀)는 당신의 경험, 기억, 기대, 의지, 감정에 사로잡힌 방식과 전혀 다른 능동적 주체일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고작 장난감이나 인형으로 다뤄질 게 아니라면, 축복과 낭만의 서사로만 끝맺는 로맨스 영화는 무조건 뻥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뒤섞인 복잡한 구도에서 서로 계속 싸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주체의 삶을 살아야 하는 둘은 서로를 매일 쳐다보며 실망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게 실망하고 좌절하면서 결국 헤어질 것인지, 아니면 지혜롭게 서로에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음을 인정하고 계속 만날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걸 알랑 드 보통은 ‘기술’이라고 말한 것이고, 바우만은 ‘노동’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의 선택이 고통스럽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멋진 경험이죠. 바우만은 이렇게 말했어요.


“러시아 속담이 있어요. '늑대가 두렵다면 결코 숲에 가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사랑의 복잡성을 두렵다 여긴다면, 결코 사랑에 빠질 일은 없는거죠. 당신이 사랑을 한다면, 그럼 늑대 소굴까지 가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 소굴에는 아름다운 숲이 펼쳐져 있답니다. 이는 당신의 선택이예요... 갈등이 많아도 상대방이 없는 그런 재난보다는 낫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 좋든 싫든 그와 함께 할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 수많은 항복, 수없는 타협, 그리고 꽤 많은 요구를 내려놓아야만 하죠. 인생은 편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이데올로기, 현대의 슬로건은 '세상은 매우 불편하고 사람 살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우리는 이를 편안하고 편리하게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는 신화예요. 설화, 거짓 술책, 관념주의자들의 재잘거림이죠.”


내가 하는 일을 여기 사랑 얘기에서 살짝 끼워넣고 싶네요.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고 사용하며 그로부터 다른 누군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도 이처럼 세상의 질서 속에서 분투하는 평생의 실천이어야 합니다. 나는 그래서 언어를 가르치는 대학 수업에서 사랑 얘기를 종종 메타포로 사용합니다.


국내외 언어/영어/한국어에 관한 공공담론을 살펴보면 언어에 관한 내면, 관념, 보편의 속성만 강조되고 있어요. 언어적 결핍은 일종의 정신적 문제이며 이걸 해결하면 사회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언어결정주의 세계관이 숨어 있죠. 좀 더 추적해보면 언어에 관한 낭만, 정신적 계몽, 구조주의적 질서가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언어에 관한 실천적이고 변증법적이면서 사회정치적인 속성은 늘 폄하되어 있어요.


사랑이든, 민족이든, 개인의 정체성이든, 언어의 속성이든, 모두 근대 유럽의 낭만주의적 발상으로부터 관념화된 것입니다. 현대사회가 시작되면서 (초)국가 단위에서 자본화되고 미디어로부터 소비되면서 지배적인 담론/상식으로 구축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18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사상을 이끈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의 언어-장소-공동체의 삼위일체론을 보면 당시 국가가 형성되는 시대적 풍조에서 특정한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특정 민족성의 특정 개인)의 특별함에 지나치게 이상화된 가치가 부여된 것을 알 수 있어요.


문제는 늘 실천과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관념이 지배적인 담론으로 신비화되고 절대화되는 것이죠. 관념으로 정당화되는 폭력도 등장합니다. 백인다움이 그랬고, 남성성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표준어를 포함한 단일언어주의 발상도 그랬죠. ‘사회적 선’이란 것이 담론적으로 협상되고 재구성된 관념이었다고 논의조차 허락하지 않는 반지성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비롭게 가려진 순수와 보편의 모든 관념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문화콘텐츠에 등장하는 사랑의 감정, 연애의 서사 역시 미숙한 인격을 가진 자들이 함께 살아가며 관계적으로 무언가를 실천하는 리츄얼로 묘사됩니다. 그걸 나름의 의미화 과정이고 협상적 기술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사랑의 감정이 재현될 때, 그게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사랑만이 제일 귀하다며, 마치 신비로운 관념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수사가 등장할 때가 있어요.


그러한 관념에 대해 우리는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의 관념적 실체로만 볼 수 없고 기술이고 노동이라고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통속적인 연애사가 신화적 믿음 수준으로 소비되고 있잖아요. TV나 인터넷 매체에서 달달한 연애 콘텐츠가 넘쳐요. 그렇게 눈에 보이는 이상화된 관념으로만 당신이 사랑한다면 너무 크게 상처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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