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진부한 깨달음

by 밑줄

아내의 식탁


'오빠. 저번에 새로 구한 우리 영업팀 cs 있잖아요. 이번에 그만둔대요? 저번 회사에서 다시 연락을 받고 거기로 돌아가겠다는 게 말이 돼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그것도 해외 출장에 교육까지 다 받고 이게 무슨 경우죠?'


'그래서 내가 HR에... 일 년 이내 퇴사할 경우 비용 책임을 요구하는 서류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는데, 문제없다고 했거든요. 참나. 이제는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지'


아내의 목소리가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쉼 없이 날아들었다. 서툴지만 온기가 담긴 식탁. 나는 그저 묵묵히 밥을 입에 넣었다. 따뜻한 집의 공기와 어울리지 않는 퇴근 전의 대화가, 끈질기게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내는 안다. 내가 이럴 때면 나만의 동굴로 침잠하고 있다는 것을.


'미안한데 말이야. 저번 팀 회의에서 말한 대로 네가 그 팀으로 가야 해.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가나요?'


저 담담한 대답은, 모든 걸 알고 뱉은 말일까? 의문이 무색하게도 막내는 전후 관계를 이미 꿰뚫고 있었다. '요즘 애들'은 주변에 관심 없다는 말, 그건 옛말이다. 오히려 젠지라는 그들은 자신과 관계된 것이라면, 규정의 행간까지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다.


저 담담함이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떠나는 안도감인지, 어디든 상관없다는 달관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 저 녀석은 어느 팀에 있든, 부당함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상황을 꿰뚫는 깊이와 대응의 날이 서 있었다.




사람은 복리(複利)로 쌓인다


조직의 부품. 우리는 그렇게 불린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제 속도를 내야 하고, 혹여 이상은 없는지 끊임없이 내구성을 증명해야 하는 존재.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


막내는. 그 녀석은 저기서 견딜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내가 가겠다고 했다. 그게 명분의 A 언어에 따른 결정이었는지, 이해의 논리인 B언어에 따른 결정이었는지는 당시에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내 가슴에서 나온 최선이었다. 그리고 이 결정은, 팀장의 격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나의 이 결정은 얼어붙어 있던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막내뿐만 아니라, 모두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A를 험담하던 그 후배조차 막내의 빈자리를 자신이 메우겠다며 나섰다. 내가 팀장에게 박살이 난 그날 오후, 팀원들은 스스로 업무를 분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으로 있던 우리 팀원들은 '선'으로 연결되고, 서로의 '면'이 되어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인생은 복리다. 매일이 쌓여 오늘을 만들고 내일을 불린다. 하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와는 다른 것이 쌓인다. 내가 수행한 일의 성과가 아니라, 나와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이 쌓인다. 이것이 진짜 밑천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일을 해결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막힐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등장했던 차선배, 옆 팀의 사정을 알려준 후배 'A', 그리고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이 문제를 풀어준 것일지 모른다.


마흔. 이 나이는 나보다 동료가 더 중요해지는 기점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 보다 할 수 없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30대가 흩어진 '점'을 찍는 시기였다면, 40대는 그 점들을 이어 거대한 '선'과 '면'을 그릴 때다. 기술이 아닌 '관계'를, 지식이 아닌 '흐름'을 읽어야 할 나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행동은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 선과 면을 이룬 셈이다. 나의 '희생'이라는 은 팀장의 '격노'라는 또 다른 점을 불렀지만, 동시에 동료들의 '협력'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점을 이끌어냈다. 예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이 주도적인 '희생'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나에게 거대한 '이자'로 돌아온 것이다.


동료의 료는 한자로 僚 '사람 인(亻)'과 '횃불 료(尞)'가 합쳐진 글자로, '횃불처럼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팀원들은 '점'에서 '선'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면'을 밝혀주는 동료가 되었다.


동료들의 '신뢰'라는 이자. 앞으로 내가 할 일들을 지탱해 줄 든든한 원금. 나는 여기에서 더 많이 불려 나갈 것이다.




내 삶의 중심


그때, 아내의 질문이 다시 나를 현실로 건져 올렸다.


'안 좋은 일 있는 건 아니죠?'


나보다 3살 연하인 아내는 나에게 아직도 존칭을 한다. 편한 반말 끝에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고 상처가 덧나는 게 싫었다. 연애 시절,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이 말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존댓말을 쓴다.


'어~~ 안 좋은 일 없어요. 회사 후배 일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아내는 다시 장모님과 처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온 가족의 하루를 실시간 CCTV처럼 꿰고 있는 아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결혼 초기, 내가 생각에 빠져 대답이 없으면 아내는 곧잘 서운함을 비쳤다. 그때 아내에게 말했었다. '내가 설사 대답을 하지 않아도, 난 당신이 그렇게 계속 이야기해 주는 게 참 좋아요.' 그때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아내가 고맙기만 할 따름이다.


문득 아내가 푸념했던 '한 달 만에 그만둔 직원'이 생각났다. 그 직원이 놓친 것은 어쩌면 당장의 조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가장 큰 복리 이자였을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아내의 목소리는 식탁에 따뜻한 김을 피워 올렸다. 그 온기가 얼어붙어 있던 나를 녹였다. 즐겁고, 만족스럽다. '행복'이라는 감각이 다시 충만해진다. 살기를 잘했다.


오늘은 나도 아내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야겠다. 긴 저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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