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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단 Oct 04. 2023

쓰러진 날

쿵쿵쿵!

쇠문을 두드리는 무거운 소리에 나는 겁을 먹었다. 누구길래 벨도 안 누르고 문을 저렇게 세게 두드리는지. 살짝 문을 열어보니 아빠를 들쳐 맨 익숙한 아저씨들이 보였다. 아빠 친구 세네 명이 아빠를 업고 집까지 온 것이었다.


아빤 술을 좋아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술을 마셨으며, 만취는 기본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는 딸이 술친구를 해줄 나이가 됐다며 매우 좋아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아빠와 술을 마시며 데이트하는 시간을 가졌고 부녀사이가 친구사이 같다며 자랑까지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 살면서 아빠가 취한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봤겠는가. 오늘도 그저 술에 취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좀 많이 많이 취한 날.


아빠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다 쓰러졌다'라고 했다. 그리곤 안방에 들어와 아빠를 침대에 눕히고는 도망치듯 집을 떠나갔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기에,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왜 이렇게 많이 먹었어! 왜 몸도 못 가눠! 잔소리를 하는데, 아무 반응이 없는 거다. 흔들어도, 옆에서 크게 소리쳐도 쿨럭거리며 누워있는 아빠를 보고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런데 기분이 쎄- 한 거지. 아, 이거 뭔가 다른데?


아빠가 침대에 누운 채 토를 하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을 주지 못하고 누워있는 얼굴 그대로 토를 했다. 곧이어 코와 눈을 지나 온 얼굴이 모두 토사물로 덮였다. 아빠가 취한 모습을 수도 없이 봤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살면서 봤던 그 어떤 것보다 공포스러웠다. 조용한 공기가 무겁게 변함을 느끼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나, 어떻게 해야 해?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몇 년처럼 느껴졌다. 


'혹시 코 막혀서 숨 못 쉬면 어떡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토사물이 범벅된 아빠 얼굴을 닦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가 집에 오자마자 달려나가 아빠가 술을 많이 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아빠를 보고는 "그냥 술 많이 먹어서 그래."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빠를 본 엄마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고, 당장 119에 전화하라고 했다.  119는 내 일상과는 관련이 없는 숫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이상해서요.."


삐용삐용 소리에 이웃들은 모두 창문에 얼굴을 내밀고 구급차를 타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마치 구경거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구급차에 탑승했다. 이상한 공기와 불편한 좌석이 나를 압도했다.




몇 달 전 아침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아빠가 일어나서는 글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눈이 안 보여? 하니, 그게 아니라 보이는데 못 읽겠어.라고 했다. 하지만 그 후 아빠는 원래대로 생활을 했고, 다시 글이 읽히니 병원도 가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딸인 나에게는 자세한 이야기를 말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몇 달 전 기억을 꺼내보고는, 꾹 감았던 눈을 떴다. 아빠는 검사를 하러 배드 채로 옮겨 다니고 있었고, 큰 병원 안에서 보호자가 기다릴 수 있는 곳은 하얀 복도의 간이의자가 전부였다.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옆에 있는 엄마도 나와 같은 표정이었겠지. 누구보다도 앞으로의 나날이 걱정되고 무서웠을 것이다.


곧이어 언니가 병원에 도착했고, MRI와 CT설명을 들으러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뇌출혈이라고 했다.

아, 수업시간에 배웠던 그 뇌출혈? 왼쪽에서 터지면 오른쪽 몸이 불편하고 오른쪽에서 터지면 왼쪽 몸이 불편한 그 뇌출혈? 그게 아빠한테 온 거야?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부정이라도 하듯 머리가 고장났다. 정신없는 와중에 의사가 하는 말이 골든타임 끝 부분이었단다. 아슬아슬했다고, 지금 병원에 와서 다행이라고.


드라마 대사에나 나올 법한 말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엄마한테 전화할 시간에 119에 전화했다면. 나는 아빠 돌아가시기 일보직전인데 울면서 수건으로 아빠 얼굴이나 닦고 있었던 건가. 아빠 친구들은 사람이 쓰러졌는데 바로 병원 안 데려가고 왜 우리 집에 온 건지. 책임지기 싫었던 거야?


스스로에게 총을 몇 발 쏘고,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애꿎은 사람들에게까지 뾰족한 총구를 겨눴다.



아니지, 만약 내가 집에 없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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