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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은 습관

- 나를 만들어 온 이 모든 시간 만들기 -

by 두니

'습관이 없는 사람도 있다.'
'나다.'


70년대 후반,

여고를 졸업한 이후

강제로 주어진 과제를

받아 든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네 가지 주제 중

‘나만의 작은 습관’을 고른 건

그 단어에서 느끼는

익숙함 때문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막상 ‘나의 습관’을 찾아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습관이 없는 사람일까?’

그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끈적한 포스트잇처럼 들러붙어

며칠 동안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그 끈적임은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어깨를 타고 내려와

온몸을 질척이게 만들었다.


손끝과 발끝이 스쳐 지나간

모든 일상을

구석구석 되짚어 보아도,

여전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고

맞은 아침은 어김없이 찌뿌드드했다.

작은 글 하나에

마음이 이토록 흔들릴 줄은 몰랐다.


번화한 거리를 걸어도 보고,

음악을 틀고

목적지 없는 드라이브도 해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면 실마리를 찾고도 남았을 텐데,

이번에는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습관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게 바로 나다.”


이 억지스러운 결론에

안도감보다는 자책이 앞서는 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주제를 바꿔볼까'

‘오늘 있었던 일’로

그냥 넘겨볼까 하는 유혹도 들었다.


'그냥…. 대충, 대충…'


대충이라는 말이 주는

달콤한 무게에 기대고 싶었지만,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여전히 머릿속은 쉼 없이 속삭였다.
‘나만의 작은 습관…. 도대체 뭐지?’


‘ㅅ...스..습...ㄱ..고...관.....습관.....’


마감은 점점 다가오고,

나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예전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미 고친 지 오래고…'


정말 아무것도 없나?

‘없다, 없어, 정말 없다.’


이쯤 되니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괜히 신청했다는

후회와 원망이 가슴을 들쑤셨다.


‘이 나이에 뭘 하겠다고….’

‘나이’를 핑계로 포기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동의라도 얻겠다는 듯

‘습관이 없다’라는 말을 반복해 되뇌며,

그렇게 이 과제를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다

옆자리에서 말없이

자기 일에 열중하던 딸에게

혼잣말처럼 물었다.


“지나야, 엄마한테

무슨 습관이라는 게 있나?”


기대하지도 않고 툭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딸의 대답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단번에 돌아왔다.

당연하다는 듯이 너무 쉬웠다.


“엄마?

시간만 있으면 뭐 배운다고

여기저기 다니잖아. 지금도 그러고 있고.”


순간,

몇 개의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초등학교 6년, 3년, 3년, 4년, 5년….

배움의 시간을 쪼개고 합쳐보니,

어느덧 28년이 넘었다.


그래, 이거였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찾아내고,

익히는 것.

나에게 이건 단순한 취미도,

일시적인 흥미도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내 일상이 되어 버린 삶의 방식이었다.


배우지 않으면 허전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나.


그래서 늘 뭔가를 찾아다니며,

하루하루를 채워왔던 나.


배우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고,

결국, 나 자신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습관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만의 작은 습관’이라니.

'작은 습관?'


아니다. 이건 작을 수 없다.

이건 내 시간이고, 내 삶이고,

내 존재 그 전부다.


오늘도 나는 어딘가로 향한다.
새로움을 마주하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그리고 이제는 분명히 안다.


나의 하루를 채우고,

나를 움직이고,

나를 만들어 온 이 모든 시간 만들기.


그 자체가 바로

나만의 습관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습관은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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