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가 되고, 사랑이 되고, 소망이 되길 -
“엄마, 나 내 이름이 싫어. 이름 바꿔 줘.”
갑작스러운 아이의 투정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친구들이 놀려서,’였습니다.
“우섭아!”
“왜?”
“나, 너 안 불렀어.
그냥 ‘웃어봐’라고 한 거야.”
유치한 말장난에 마음을 다친 아이는
매일 같이 반복되는 조롱 속에서
자신의 존재마저 부끄러워졌던 걸까요.
그 말들이 아이의 마음에 박힌
비수처럼 느껴졌을지도 몰랐습니다.
“‘우섭’이라는 이름, 정말 멋진 이름이야.
‘울어봐’도 아니고, ‘웃어봐’라니.
기분 좋아지지 않니?”
궁색하기 짝이 없는 위로를 늘어놓으며
나는 아이의 눈빛이 풀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이름의 뜻을,
그 이름에 담긴 기도와 소망,
사랑과 축복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
같은 이름을 가진 유명인을 보여주며
아이의 마음을 달래는 데,
적잖은 시간을 썼습니다.
그날, 나는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름’은
부르는 소리인 동시에
들리는 마음이라는 것을.
.........
사사기 9장에는
기드온의 첩
‘여룹바알’에게서 태어난
‘아비멜렉’이 등장합니다.
그 이름의 뜻,
“내 아버지는 왕이다.”
기드온이 이 이름을 지을 때,
훗날 그 이름이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이어질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겠지요.
아비멜렉은
그 이름대로 자라났습니다.
자신이 왕의 아들이며,
마땅히 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믿음은
어머니 쪽 외가의 세력을 등에 업고
실제로 왕이 되는 자리까지 이끌었지만,
그 길 위에서 그는
배다른 형제 70명을
한 자리에서 학살하는
참혹한 선택을 합니다.
왕이라는 이름,
그 이름 안에 심긴 욕망은
핏줄보다 진한 형제애조차
버리게 했습니다.
내게도 두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를 처음 품었을 때,
아니, 그보다도 더 이른 순간,
마음을 준비하던 그때부터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이 '이름'이고
그 이름이 ‘우섭’과 ‘지나’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름.
주는 건 나지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 아이만의 것이 될 이름이었죠.
그 이름이 아이의 정체성이 되고,
기도가 되고, 사랑이 되고,
때로는 운명이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사기 9장,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말씀은
이름을 지을 땐,
잠시의 자부심이 아니라
그 아이의 삶 전체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품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두 아이의 삶이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실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부모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