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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란 May 19. 2023

저도 이제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어요, 할머니

06

잘 먹는 입덧을 '먹덧'이라고 한다는데 난 네 번의 입덧 모두 ‘못 먹덧'이었다. 세상 모든 것에서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나마 먹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드는 것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김치볶음밥뿐이었다. 종종 썰어 넣은 김치 말고는 다른 특별한 재료도 없는 평범한 김치볶음밥이었는데 맛있다는 볶음밥 집을 다 돌아다녀 봐도 그 맛을 찾아낼 수 없었다.


나는 그 김치볶음밥의 레시피를 모른다. 레시피를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만드는 손이 다르니 그 맛 그대로 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손에 할머니의 손맛이 깃들 정도로 할머니와 함께 요리를 해보지도 못했구나. 모든 순간이 후회로 다가온다. 그 김치볶음밥이 하필 입덧할 때 먹고 싶다니!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니 들숨에 슬프고,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니 날숨에 서러웠다. 너무 우울해하면 아기도 같이 우울할까 싶어 웅크리고 누워 마음을 가다듬으며 지냈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물 위에 누운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잊고 있던 어렴풋한 기억들이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머릿속에 자꾸 ‘아카시아’와 ‘비’라는 단어가 맴돌아 검색하기를 여러 날, 노래 하나를 찾아냈다. <아카시아에 보슬비 내리는 밤>이라는 노래다.


나는 밤에 잠을 안 자고 많이 우는 아기였다고 한다. 안고 달래도 소용이 없는 나를 재우기 위해 엄마와 할머니가 번갈아 가며 나를 업고 밤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셨다고 한다. 돌 즈음에는 아버지가 녹음기를 구입하여 내 울음소리를 테이프에 녹음하기에 이르렀다. (커서 들려주려고 하셨던 모양인데 그 테이프는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다) 틀자마자 아기 울음소리로 시작하는 테이프에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아기 달래는 소리, 밥그릇에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할머니의 노랫소리도 녹음 되어 있다. 할머니가 가만히 불러 녹음된 노래가 바로 <아카시아에 보슬비 내리는 밤>이라는 노래다. 1963년도에 나온 <아카시아 꽃비가 그칠 때>라는 일본 노래를 재일교포 가수인 이순애가 번안하여 부른 노래다.


아카시아에 보슬비 나리는 밤 애달퍼라 이 심정 몰라주나요

추억속의 펜단트 하얀진주 살결에 포근히 구슬퍼라 

- 이순애 <아카시아에 보슬비 내리는 밤> 중에서


밤낮이 바뀐 것도 모자라 자꾸 우는 나를 재우면서 부른 노래이니 자장가보다는 노동요에 가까웠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아기 자장가라고 하기에는 가사도 멜로디도 다소 우울한 이 노래를 부르셨던 걸까. 어서 마무리하고 싶었을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할머니는 어떤 것을 떠올렸을까. 할머니의 어린 시절일까. 일본에 두고 온 할머니의 동생들일까. 할머니도 어서 아기를 재우고, 밤의 고요 속에서 그리운 것들을 떠올려 보고 또 만나고 싶으셨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두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라고 밝히지 않고 사셨지만, 어쩌다 드러나면 눈총을 받거나 차별을 받기도 했었단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해방 후 한국으로 나와 결혼하셨다. 한국어도 잘하셨으나 모어가 일본어라 할머니가 일본 노래를 읊조리시거나 일본어로 시를 쓰시는 것을 어릴 때 종종 본 기억이 난다.



할머니의 자장가를 찾아낸 후 나는 입덧을 반드시 이겨내리라(?) 결심했다. 할머니표 김치볶음밥은 이승에서 구할 수 없으니 그만 생각하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언어를 배우면 할머니의 정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할머니에게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으리라. 그러면 김치볶음밥을 못 먹는 슬픔이 덜해질지도 모른다. 개연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즉흥적인 생각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할머니표 김치볶음밥에 대한 열망은 일본어 공부로 옮겨 붙었다. 학원에 등록해서 지하철로 왔다 갔다 하는 재미, 다시 학생이 되어 숙제하는 재미를 오랜만에 느끼며 공부했다. 기회가 오직 오늘뿐인 사람처럼 나는 성실했다. 같은 한자권의 언어인 데다 어순도 우리말과 같아 시작은 어렵지 않았으나 갈수록 어려워지는 한자에 좌절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바로 옆 나라인데도 언어적, 문화적인 특성이 다른 것도 흥미로웠고, 일본어 특유의 간질간질한 표현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일본어와 한국어의 표현과 뉘앙스가 어떻게 다른지 할머니가 설명해 주시던 모습이 기억나기도 했다.


'할머니 내가 이제야 일본어 공부 시작했네요. 살아 계실 때는 수능 공부한다고 일본어 배울 생각도 못 했습니다. 거기서 나 공부하는 거 한 번 보세요. 한자도 새첩게(예쁘다의 경상방언) 잘 쓰지요?'


살아 계셨다면 잘한다고 용하다고 해주셨겠지. 그때 배웠다면 함께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언어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가족을 다 일본에 두고 와서 외로웠던 할머니의 삶에 봄이 조금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죽은 후에 읽혀지고 싶지 않다고, 생전에 다 폐기한 할머니의 시들을 그때 읽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중에 몇 개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는 나에게 다시 와주지 않았다.


공부를 시작하고 몇 개월 후에 학원에서 일본어 작문 대회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다고 썼다. 그래서 나는 머나먼 나라에 가서 학교와 도서관을 세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도 썼다. 그걸로 1등 상을 받았다. 출산 준비로 학원을 그만둬야 했으므로 작문 대회가 내 공부의 마지막 열매였다.



나중에 너 닮은 아이 하나 낳아보라고 한 말은 기어이 씨가 되었다. 하나도 아니고 넷이 잠을 잘 자지 않았다.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말과 노래를 타고 와서 나의 아이들에게 내려앉았다. 나도 그럴 때마다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스튜디오지브리 애니메이션인 <천공의 섬 라퓨타>의 <너를 태우고>라는 노래를 특히 좋아했다. 가사에 ‘지구’가 나오는 이 노래가 좋았다. 아이들이 잠들어야 비로소 세상이 고요해지고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이 새근새근 잠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地球はまわる君をのせて 지구는 돈다, 너를 태우고

いつかきっと出会うぼくらをのせて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날 우리들을 태우고

- 영화 <천공의 섬 라퓨타> 의 OST <너를 태우고> 중에서


첫째 혜린이가 돌 즈음에, 고향 마을에 내려가서 할머니 성묘를 하러 갔다. 나는 일본어 작문 시험 1등 한 것을 산소에 가지고 가서 읽어드렸다.


할머니! 살아있는 우리들은 만나면 이미 별이 된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할머니들의 별은 어디에 모여 있나요?

거기서도 내가 밥은 먹었는지 걱정하시나요? 

나는 이제 다 커서 아이의 밥을 먹이고 있어요.



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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