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란 Jun 02. 2023

바라바라 밥, 밥, 밥! 밥! 밥!

05 오늘 뭐 먹을지 모를 때 외쳐보는 말

먹을 것을 선물할 때면 왜인지 한 상자씩 선물하는 것이 좋았다. 군대 간 동생에게는 초코파이를 한 상자, 졸업논문을 쓰는 후배에게는 초콜릿을 한 상자, 고마운 분에게는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를 한 상자 선물하는 식이었다.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쌓여있는 것을 보고 1차로 기뻐하고, 꺼내 먹을 때마다 2차로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느 날, 먹을 것을 한 상자씩 선물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말을 듣고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게, 나는 대체 왜 간식은 한 상자는 선물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잊고 있던 치토스가 떠올랐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간식도 좋았지만, 그 시절 사 먹는 간식 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치토스'였다. 과자보다도 속에 들어있는 쿠폰 때문이었다. 쿠폰 긁는 재미에 우리는 늘 치토스를 먹고 싶어 했고 할머니는 한 사람이 한 봉지씩 먹을 수 있도록 매일 치토스를 세 개씩 사 놓으셨다. ‘한 봉지 더’ 쿠폰이 나오는 날에는 동생들과 우르르 슈퍼마켓에 달려가 쿠폰을 치토스와 교환하며 우리가 획득한 행운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한 봉지 더’의 행운은 자주 있지 않았지만, 치토스는 매일 우리 손에 있었다. 치토스 사랑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계속되어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피로와 허기를 치토스 한 봉지로 달래곤 했다.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나를 조용히 불러 다락에 올라가 보라고 하셨다. 짜잔! 치토스 한 상자가 다락의 노란 전구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좋아하는 치토스 많이 먹으라고 무려 한 상자를 사서 동생들 몰래 다락에 숨겨두신 것이다. 동생들이 잠에서 깨서 알게 되면 큰일이니까 기쁨의 비명은 속으로 지르며 앉은 자리에서 두 봉지를 먹었다.


손자가 좋아하는 과자라고 한 상자나 사 오신 할머니의 통 큰 마음과, 좋아하는 간식이 잔뜩 쌓여있던 든든함(?)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가 보다. 그때의 기쁨을 같은 방식으로 나누어 주려는 무의식이 작용하여 나는 한 상자씩 선물하는 사람이 되었었나 보다. 하지만 먹을 것을 차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그보다 훨씬 더 뒤에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오늘은 또 무슨 반찬을 하냐고 끼니때마다 반찬 고민하시는 것을 매일 보았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나름대로 걱정을 덜어 드리겠다고 우리는 아무거나 먹으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던 나의 말은 때에 맞춰 밥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의 텅 빈말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깨닫게 되었다.


정작 내가 밥을 지어서 먹이는 위치에 놓이게 되자 왜 사람은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하는지 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항상 먹고 싶어 했다. 점심 먹은 그릇을 내놓으면서 저녁에는 무엇을 먹느냐고 물어보거나, 벌써 배가 고프다며 바로 간식을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냥 심심하니까 무언가 먹고 싶다고도 했다. 먹는 기쁨이 가득한 아이들의 끝없는 ‘배고픔’에 부담감마저 느껴, 밥 먹고 한 시간 후부터 배고프다고 해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기도 했다.


바라바라 밥, 밥, 밥! 밥! 밥! 

하고 식탁을 두드리며 외칠 때 밥과 반찬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치우고 씻기고 놀아주다가 한숨 돌릴 만하면 찾아오는 밥 때에 숨이 가빴다. 영양도 생각해야 하고 매번 똑같은 것만 먹일 수도 없는데 항상 다른 메뉴를 생각해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참고하느라 인터넷을 들여다보면 솜씨 좋은 엄마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반찬 가짓수도 많은 데다 모양까지 예뻤다. 인터넷에 올려놓은 아이 밥상 사진은 내 눈에는 수라상으로 보여 아이들이 볼까 서둘러 인터넷 창을 닫기도 했다. 마음은 한없이 위축되고 한숨은 길었다. 그래서 할머니도 매일 매일 염려하셨던 것이구나. 매일 먹던 밥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충분히 감사하지 못한 날들이 후회로 밀려왔다.



대학에 입학 후 첫 학기, 학교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던 나는 입학 한 달 만에 연락도 없이 집으로 불쑥 내려갔다. 집에 혼자 계시던 할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연신 웃으셨다. 보희가 왔구나, 보희가. 하지만 나는 눈물을 터뜨렸다. ‘할머니이이이이…’ 내 삶의 힘겨움과 끝없는 우울함에 빠져있어 할머니의 외로움은 보이지 않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그날 손자가 왔다고 할머니가 뚝딱 해주신 음식은 카르보나라 스파게티였다. 스파게티를 먹으며 말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다른 말씀 없이, 종종 내려와서 밥 먹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대답 대신 고개만 주억거리며 스파게티를 다 비웠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도 우느라고 하지 못했다. 그 후로는 어떻게든 학교에 적응해 보려고 발버둥 치느라 집에 잘 내려가지도 않았다. 나를 길러준 것도 할머니의 밥이고 나를 응원한 것도 그날의 밥이었는데도 나는 종종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금의 나처럼, 할머니도 지치고 힘들고 귀찮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이겨내고 차려주신 밥이 사랑인 것을 나만 몰랐다.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면서 정작 내 입에 음식을 넣기에는 너무 지쳤을 때, 남이 해준 밥이 그리울 때, 육아 하면서 나 자신이 너무 작아지다 못해 사라지는 것 같을 때마다 나는 기억 속에서 한 상자의 치토스와 스파게티를 꺼내보며 울면서 웃었다.


밥을 짓는 일에는 사랑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 축복하는 마음이 담겨있기에, 매일 먹는 밥이 위태위태한 오늘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없는 바람 같지만 아이들도 언젠가 알아주면 좋겠다. 엄마도 밥 짓는 일이 힘들 때가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엄마가 밥 짓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는 것을, 누군가 너희에게 꾸준히 밥을 해준다면 그건 너희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마음이 담긴 밥을 먹고 자란 너희는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요리 솜씨 없는 엄마의 집밥일지언정 어느 날 다 자란 아이들이 불쑥 집으로 와서 밥을 달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아직 키가 1미터도 안 되는 막내가 다 자랄 때까지는 건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전 05화 울고 먹고만 반복하며 인생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