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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May 02. 2019

이름이 그대를
호갱으로 만들지니

- 건강을 '쇼핑'하시겠습니까?

 이름 있는 것으로 주세요    

 약국을 찾는 환자들의 요구 가운데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이름 있는’이란 말은 물론, '유명한' 혹은 '광고하는'을 뜻하는 수식어로 사용되었음을 잘 알면서도 이렇게 슬쩍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 것이다. 세상에 이름이 없는 약도 있나요, 라고.

 

 이름 있는

 이름난

 유명한

 이라 쓰고, '광고하는'으로 읽는다. 


 이들을 우리는 다 같은 뜻으로 쓰고 있지만 이름난 것만 좋은 게 아니며 유명하다고 다 저명한 것도 아니다. 반대로 이름 없는, 무명인, 알려지지 않은(unknown) 것은 때로, 영어처럼,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  

  

 ‘이름 있는’ 약의 이면에 추악함이 존재하는 경우를 우리는 최근에 겪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가 약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의 죽음을 초래한 제품을 두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 '유명한' 회사에서 만든 약을 우리는 신뢰할 수 있을까. 그 사태 이후 옥시사(社)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었는데 의약품은 두 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아프지마오약국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있는, 내가 옥시형제라 부르는 개비*콘과 스트*실이 바로 그것이다. 옥시레빗벤키저는 영국 레빗벤키저 사의 한국 현지법인으로, 살균제 외에 의약품과 식품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다.

     

 얘기가 살짝 딴 데로 샌 느낌이지만 아무튼, 똑같은 성분에 동일한 함량과 성상과 효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다른 이름을 가진,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 "이름 없는 약"이라 부르는 약은, 서.럽.다.

  

 봄이 오면 하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첫 잔치는 벚꽃이 주인공이지만 어디 벚꽃뿐이랴. 자두꽃과 배꽃도 뒤질세라 서둘러 피며 아그배나무와 야광나무도 몽글몽글 예쁜 꽃을 피운다. 비록 숲 한 가운데 하얀 꽃을 피운 나무가 꽃사과인지 아그배인지 그 이름을 구별해서 부를 줄 아는 눈이 내게 없다고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두고 가령 어젯밤 심술궂은 봄비에 이름 없는 꽃들이 다 지고 말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이름 없는 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단지 내가 모를 뿐이라는 것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이름을 가진 하나의 꽃이다.



 

 A라는 이름 난 약이 있다. 이 약의 특징은 고작,  TV광고를 통해 알려졌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즉 광고를 하지 않은  B란 약도 있다. 

 B가, A와 동일한 효능으로 허가를 받았다는 것은 국가(식약처)에서 두 약이 동일한 약임을 보증한다는 뜻이다. 약사가 자의적으로 같은 약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제조사가 다르고 이름도 다르지만 분명히 같은 약이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성분도 같고, 효능도 같다. 물론 더 좋은 약도 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가령 이런 것을 상상해보자. 우리가 아는 유명한 새우깡은 새우칩과 이름도 다를 뿐더러 엄연히 다른 과자이기도 하다. 가게에 가서 새우깡을 달라고 했는데 가게 주인(혹은 알바생)이 새우칩을 준다면 나는 새우깡만 먹는다며 사지 않고 돌아서는 게 자연스럽다. 새우칩은 새우깡이 아니니까.

 그러나 유명한 인사돌과, 모 회사 덴타퀵은 이름은 다르지만 분명히 같은 약이다. (무엇보다 약사는 구멍가게 주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격은 어떨까. 이름 없는 B에 비해, 이름 있는 A는 40퍼센트 정도 더 비싸다. 

 이처럼 ‘이름 있는’ 약의 쓸데없이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약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적어도 의약품에 관한 한은, 동일한 효과임에도 (광고를 찍은) 연예인이나 매체에 들인 홍보 비용까지를 다 떠안는 호갱이 된다. 환자가 제약사 대신 광고비까지 지불해주는 격인데, 이를 의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 매우 신기하다.

 설마 명품처럼 이미지를 사겠다는 말은 아닐 테지?  의약품은 명품이 없다. 같은 약이냐 다른 약이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여기서 팁 하나.

성분명을 기억하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성분이 두 가지든 세 가지든, 모든 의약품에는 [유효성분]과 [함량]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누락하거나 허가사항을 빠뜨리면  약사법으로 처벌 받게 되므로 아주 정확하게, 또 자세히 기재돼 있다. 그러므로 성분명을 알고 있다면 이 약과 저 약이 같은 약인지 구별할 수 있고, 가격 비교를 통해 터무니없이 비싼 약을 걸러낼 수 있다.

 어떤 제약사는 자사 제품을 오로지 광고를 통해서만 '소비자'와 만나는 전략을 택한다. 아픈 사람을 소비자로 생각하고 약의 전문가인 약사와 약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다. (아 물론 광고 말미에, “약국에서  구입하세요”라고는 한다. 당연한 소리를 선심 쓰듯 하는 것이다. 의약품이니 당연히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이런 회사가 제 돈 들여 찍은 TV 광고를 신뢰성의 척도쯤으로 여기는 그 순간 환자가 아니라 소비자, 더 나아가 '호갱님'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나는 말하곤 한다.


 광고는 광고일 뿐 뉴스나 신문기사가 아니다. 광고란 그저 판매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대중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알림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광고하는 제품이 광고하지 않는 제품에 비해 더 신뢰할 만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TV방송사를 비롯한 각종 매체의 '돈줄'인 광고에만 꽂히는 소비자는 화려한 벌레잡이제비꽃을 향해 날아드는 나비와 같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의식하든 안 하든 우리는 광고를 통해 제품의 정보를 얻고 또 구매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발. 약은 다르다. 약은 공산품이나 식품이나 꽃이 아니다. 당신 설마 건강을, '쇼핑'하려고요?


 대중광고를 통해 그 효능군을 국민에게 처음 알리기 시작한 회사라면 나의 이런 시각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토록 비싼 광고비를 쏟아 부어가며 약이 아니라 상품으로 팔겠다고 결정한 것은 그들이므로 착한 가격의 다른 약에 자리를 내어주어도 남을 탓하면 안 된다.       


 광고에 대해 가장 신랄한 비판의 소리를 낸 사람은 아마도 프랑스 작가 프레데릭 베그베데가 아닐까 한다.     

 "광고는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 인간관계를 해치고 1930년대 나치가 승리를 거두게 했고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문명과 환경을 파괴하고 제3세계 국가의 경제 파탄에도 책임이 있으며 마약 사용과 정체성의 상실, 부패, 유럽 대도시의 자살률 증가 등과도 상관이 있다."   
 

 비싼 광고비까지 다 떠안겠다는 굳은 각오로, 약국에 와서 쇼핑하듯 이렇게 말한 경험은 혹시 없으신지요. 

   "요새 OOO이 선전하는 거, 그거 주세요."

  

사족.

아주 재미있는 다른 전문가의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유현재교수의 글입니다.

"의사가 처방한 전문약품을 정확하게 조제해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도 약사의 역할이지만, 소비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는 다수의 일반 의약품을 축적한 지식과 노하우에 의해 우리에게 추천하는 것도 약사들의 전문분야임에 틀림 없다. 연예인 모델이 전하는 정보에 무조건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의약품 가운데 과연 어떤 제품이 나의 상황과 맞는지, 혹시 우리가 미처 간과하는 사항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가르쳐줄 수 있는 전문가들에게 좀 더 의지해도 될 것 같다는 의미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3220835385840



 우리는 모두 의미를 가진 '무엇'이다. 아프지마오약국에 오는 그대가 비록 아무개, 행인1, 누구 엄마, 무명시인, 일용직, 알바생, 취준생일지라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는 한 송이 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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