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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un 13. 2016

[포토에세이] 사 분의 일, 하루 #1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사 분의 일, 하루 #1>



06:00

아이폰 알람, 공 튀기는 소리


06:30

스트레칭, 세탁기 동작 버튼 누르기, 감자 껍질 벗기기


07:00

얘들아! 어서 일어나라. 계란프라이 여섯 개, 감자 열 개, 아니, 세 개 추가하여 삶기, 북어국 끓이기


07:30

식사하는 동안, 쌍둥이 교복 2벌 다림질. 얘들아! 버스 놓칠라, 서둘러라. 마당에 나와 보니 어르신들이 팔각정에 앉아 계신다. 빨강 조끼를 입고 비료 푸대와 빗자루 들고, 머리에는 수건을 쓰셨다. 일할 준비!


07:45

병아리 같은 노랑색 학교 버스가 내려온다. 차 안의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저 녀석은 왜 무표정일까.


07:50
쓰레기 내놓기, 우리 마을은 월요일과 금요일에 쓰레기 수거 차가 온다. 이제 막 붉은 꽃대를 올리기 시작한 제라늄과 꽃기린이 마냥 싱글벙글이다. 귀엽다. 시원하게 물을 뿌려 샤워시킨 후 몇 잡초를 뽑는다. 화장실과 현관 물 청소를 마치다.


07:58

첫 전화. 소장님 계세요? 오늘 인삼밭 일을 하려고 놉을 얻어놨는디, 미안하지만 저녁 때 좀 진료소에 가면 안 될까요? 8시 쯤 될 것 같은디.... 빨래를 널다.


@적상면 포내리, 2016



08:21

문 여는 소리, 소장님 계세요? 오래간만입니다. 요즘에도 산에 가세요? 그런데 얼굴은 별로 안 타셨네? 안 타긴요, 맨날 산 속에서 살고 있구만요! 무슨 일로 바쁘세요? 아주 야만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야만적인 일이라니. 상상해보십시오. 멧돼지 잡으러 다녀요? 오호! 소장님 잘 아시네! 멧돼지를 어떻게 잡아요? 올무로? 허허허! 아주 과학적인 방법이 있지요. 오래된 그러나 현명한 전통의 방법이 축적된 사냥 기술. 무슨 기술인데요? 알려줄 수 없지요, 업무상 비법이라.

눈은 왜 그래요? 산에 다니다가 나무에 긁혔나요? 소장님, 하나 물어볼까요? 네. 염생이가 울 때 어떻게 울어요? 염생이 몰라요? 염소요 염소. 알죠! 염소는 음메~~ 그렇게 우는 거 아닌가? 염생이가 그렇게 운다고요? 우리 아랫집에 염생이 두 마리가 있는데 얼마전에 새끼를 낳았어요. 요즘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디, 뒤에서는 소새끼 울지, 앞에서는 염생이 새끼 울지,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잔다니까요? 음메~가 아니라 음빼~ 빼~도대체 뭘 빼라는 말인지, 나 참 기가 막혀서!

하하하하~ 귀엽다. 그 새끼 나도 한 번 보고 싶다. 미치겠구만. 우리집에 와서 하룻밤만 주무시고 가보셔. 내 눈이 왜 이렇게 벌겋게 되는지 금방 아실 겁니다. 내 평소 먹던 위장약 좀 주시오. (약을 조제하여 드리자) 이몸은 바빠서. 얼마죠? 900원요! 잔돈은 살림에 보태시오. 그럼 이만!


08:41

소장님, 안녕하세요? 웃치목입니다. 우리 형님 물약 좀 타러갈려는데... 네네! 안녕하세요? 오세요! 참! 블루베리는 언제 따요? 오늘부터 작업 들어갔습니다. 바빠 죽겠어요. 형님 일 도와주려고 만사를 제쳐 놓고 왔잖아요. 내가 이때만 되면 아주 죽겄당께. 그러게요! 그래도 형님은 든든한 동생이 계시니 얼마나 좋아요? 암튼 이따 가서 봅시다. 그러세요. 고맙습니다.


08:44

네 보건진료소입니다. 아 난데요. 네? 아... 왜 괴목!! 아~ 네! 안녕하세요? 지금 중리 농협에 내려갈 일이 있는데, 상추 한 주먹 뜯어다 드리면 잡수실랑가요? 그럼요! 먹고말고요! 알았어요~ 내 얼른 밭에 나갔다가 내려갈께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를 계속 듣는다. 광고 중. 비즈메카, 어른들의 생각 뿐, 얼씨구, 영재학원은 또 웬말이요. 어메~ 나 영재 아녀! 조사도 하고 토론도 하니까. 교육 과정 재구성 해야니까 선생님들과 협력, 우리 아이들이 교육의 중심이 되기를 희망하는 경기도 교육청. 맛있는 밥상, 수요일 저녁을 다 함께, 아빠도 신나게 밥상에 모여 앉는 수요일, 온 가족 사랑하는 수요일. 수요일은 정시 퇴근 함께 해요, 가족밥상, 여성부. 날씨와 생활입니다. 어제보다 더운 날씨가 예상됩니다. 낮에는 30도 안팎. 일교차가 커지면서 한 낮에는 한여름 날씨, 대구는 28도 예상, 안개가 끼겠지만 차차 맑아지는 날씨. 강한 태양, 고온 다습한 여름 날씨. 강렬한 태양광선, 자외선 지수가 높습니다. 오전 11시에서 3시 사이 외출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외선 차단제 바르시고요, 모자와 선글라스. 자외선은 A와 B로 나뉘는데, 화상은 자외선 B. 아무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저희가 가장 좋은 기술, 확신, 약속된 미래, 회사 소개하는, 소리가 경험에 살다. 소리의 미래, CBS가 함께 합니다. 해외에서 한인기업 노하우, 글로벌 인재, 세계에서 우리 경제 영토를 넓히는 디딤들. 패기의 청년들. 소리가 멀어진다아아. 전화벨 소리.


08:52

네 보건진료소입니다. 소장님! 상추 있어요? 삼채는요? 아이고 우리 소장님 삼채를 모르능가베! 세 가지 맛이 난다고 삼채잖아요. 내 이따가 중리 내려가는 길에 들릴께요. 고맙습니다.


09:05

(대기실에 들어오는 두 사람)

너 시택이 아니냐? 너 영호지? 햐 정말 오래간만이네. 지난 번 동창회에 왜 안 왔냐? 그런 곳에 안 간다. 야 임마! 와서 친구들 얼굴도 보고 그래라. 뭐 볼 것이 있다고 보냐. 그냥 이렇게 나이 먹어가는 거 보는 거지, 별거 있냐? 나이 칠십이 다 되어서 무슨 동창회냐 동창회는. 야 좀 봐! 친구들 만나서 나 이렇게 늙어가고 있다. 내 얼굴 이렇다. 그렇게 만나는 것이 동창회지 뭐냐. 이번에는 중리에서 안 하고 치목에서 할까, 괴목에서 할까 했싸터라. 이번에는 내가 책임지고 니 한테 연락할 테니 꼭 와라. 알았지? (나는 듣고만 있다가....) 왜 오셨는지부터 말씀하셔야 약을 드립니다. 아 그렇지! 나는 아까 전화했던 형님 물 약 좀 주고, 밭에 드나들었더니 알레르기 때문에 사람 환장하것당게. 얼른 약 좀 지어 줘. 하루 세 번, 한 번에 **ml, 저녁 기침이 심한 경우에는 주무시기 전에 한 번 더 드시라고 하세요. 알레르기 피부는 주사 좀 맞으시죠. 바지 내리시고, 딱 꼭, 쑥! 문지르세요. 약봉투 내밀며, 900원이요. 손바닥에 건네준 동전을 세어보니 650원이다. 오빠! 150원 모자라란디요~! 야야~ 내 차 안에 있는 거 다 긁었더니 그것이 전부다. 안 잊아먹고 꼭 줄팅게 우선 받아둬. 다음에 오시거든 곱빼기로 주세요~! 그랴~ 수고하셔! 안녕히 가세요.


09:11

들어오세요. 혈압이랑 혈당 좀 재볼라고요. (피 한 방울 빼고, 자동혈압기 앞에 앉으신 후 잠시 휴식) 혈압은 134/85, 혈당은 175이네요.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어제 술을 좀 마셔서 어쩌나 싶었더니 괜찮고만요. 고맙습니다.


@적상면 포내리, 2016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엘가의 '변덕스러운 여자'가 뒤로 흐른다. 둥구나무 근처에서 들리는 저 새 소리, 이름이 무엇일까. 맑기도 하지. 둥지는 어디에 있을까. 반죽 고운 빵이 부풀어 오르듯 고른 성김으로 둥구나무 잎들이 솟았다 앉았다 바람을 품는다. 반짝이는 햇살 사이로 이파리 그림자가 투명하다. 앎이란 때로 무기력하다. Piano Concerto No.23 in A Major K488 : Adagio


09:17

새올행정시스템 접속. 복무관리-출장관리-출장신청관리-추가-기안전송-연계기안함에서 과장님의 결재를 기다리다.


09:22

흰 모자를 눌러 쓴 저 남자 씨, 운동 다녀오나 보다. 한 손에는 테니스 라켓, 한 손에는 공이 들려있다. 액자 크기만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저 남자. 팔을 펼치더니 이내 스윙 자세를 날린다. 윔블던에 가서 실제 세계 테니스 대회 한 번 구경하는 것이 꿈인 남자이다.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글 읽는 소리. 그냥 보통 사람처럼 보통이 되고 싶어요. 의뢰인을 처음 만나서 어떻게 변하길 바라는가 물으면 보통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낀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 사람들은 보통이 되면 보통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행복이란 보통에서는 갖기 어렵다. 행복은 보통에서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이 아니면 남에게 설명하기 어렵다. 알기 쉬운 사람이 되기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부모 자신이 보통이 되지 못해 여러 가지 힘들었다. 자식만큼은 힘들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떤 부모든 처음부터 보통을 갈구했을 리 없다.


상처받은 경험, 보통이 아닌 것은 이처럼 좋지 않구나. 왠지 모를 답답함. 보통을 동경하며 연기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식도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단어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일상의 대화에서는 무게감이 없는 단어, 그러나 시에서 만나는 단어 하나하나는 모두가 예사롭지 않다. 이 세상 안에 존재한다는 것, 그 어느 것 하나도 보통은 아닌 것이다(뿔을 가지고 살 권리 중에서).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포트에 전원을 넣는다. 핸드그립으로 원두를 간다. 필터를 얹고 커피가루를 넣은 뒤 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물이 폭폭 끓고 뚜껑을 열어 한소끔 열을 날린 후 커피 위에 눈물 같은 첫 방울이 떨어질 때, 진액으로 승한 물이 핏물처럼 엉기다가 초코 머핀 같은 거품이 일어나면 하루 중 마음이 달아올라. 오늘은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새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암시와 최면에 취한다. 설마! 그렇지 않다 한들, 순간적을나마 적신 마음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니, 그것으로 된 거야. 꾸밈없이. 보통이면 되지. 잘 제대로. 숨어 있는 단어들. 들여다보지 말자. 마음 속에 있는 보통과 입밖으로 내는 보통에는 분명 온도 차가 있다.


09:37

네 보건진료소입니다. 아가야! 나다. 잘 지내지? 어제 느 시누 미영이랑 사우랑 왔다갔다. 머스마가 여자친구 생겼다고 인사하러 왔다갔어. 다마네기 캤다고 양파자루에 겁나게 담아왔더라. 쑥개떡이랑 많이 가져왔어. 느 집에 양파 있냐? 정미 애비 대전 오면 전화하라고 해라. 장아찌 만들었는디요, 또 누구 퍼주지 말고 애껴 먹어. 짐치냉장에 넣어두면 오래 되아도 암시랑 안 해. 애들은 학교 갔냐? 쌍둥이들한테 너무 공부공부 하지 마라. 몸 성한 것이 최고여. 야 좀 봐. 즈들이 깨성하면 알아서 다 한다. 다 즈그 팔자는 타고 낭게. 너도 항상 몸 조심하고, 정미 애비 대전 올라오면 두 시간에 전에 미리 전화하라고 꼭 말해라잉. 그러면 내가 챙겨놨다가 내려 보내마. 요새 뭐냐, 테리비 봉게로 열 올르는 거, 그거 유행이라고 하더라. 음식 찜찜한 거 먹지 말고, 차 조심하고 알았냐? 들어가라.


09:42

파랑색 봉투 원두를 바라본다. 콜롬비아하면 커피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한 향과 쓴 맛, 때로는 부드러운 맛, 물을 얼마나 붓느냐에 따라, 결코 주관적인 것이라서. 마실 때마다 맛과 향이 달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입천장과 혀, 잇몸 사이에 퍼진 그것들을 최대한 굴렁이며 음미한다. 살다보면 쓴 일도 있을 것이나, 우아하게 삼켜버리면 그만. 잊자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마주하자는 것.


09:52

새올행정시스템 ‘온-나라’ 접속. 오후 출장을 위하여 관내출장신청서 기안 결재를 올린다. 결재진행문서함을 수시로 확인한다.



10:00

‘보건진료소 통합정보시스템’에 접속. 일정과 스케쥴을 확인한다. 진료기록부를 입력한다. 약품관리-물품입출고관리-의약품을 입고/검수 메뉴에 들어간다. 약품의 명칭, 수량, 단가를 일일이 확인하며 입력하고 재 확인한다.


코푸시럽에스, 코데날정, 이부펜정, 오로디핀정, 다이제스토정, 파티겔현탁액, 뮤코론캅셀, 시메티딘정, 세레스톤지연고, 암브록솔정, 아세트아미노펜정, 필로젠정, 아트락트정, 푸라콩정, 다이크로짓정, 페니라민주사, 아테나정, 브롬헥신염산염정, 마로비벤에이주사, 이엔타스정, 포비돈소독액 등. 값싼 약품들, 나에게는 보약보다 귀하다. 어르신들에게도.


10:30

‘본인부담금 징수결정서’를 출력한다. 39,600원이다. 출력 명령을 엔터하고 프린터를 바라본다. 붉은 빛이 반짝인다. 토너 교체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물품구입품의 요구를 위한 문서를 작성해야겠구나. 라디오에서는 ‘생상: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op.28’이 흐른다. 오늘 같은 날씨, 적당한 바람, 아, 탁월한 선곡이다. 청취자 사연이 간간이 들린다. 주말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해서 긴장되고 부담되었어요. 그런데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칭찬도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긴장되고 부담되었다는 것이 시부모님께 죄송하더라구요. 고맙습니다. 여고생 딸이 바느질 숙제를 하길래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30년 전 여고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10:45

구름뜰 김두옥 할아버지가 걸어 오신다. 일 년, 열두 달, 바지저고리 차림이 한결같다. 나는 안다. 분명, 얼굴을 손가락으로 만질 것이다. 피부가 가려우니 연고를 달라고 하실 것이다. 피부과에도 가봤지만 별 다른 약이 없다고 하더만.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지 뭐. 낼 모레면 갈 사람이, 살아도 너무 많이 살지 않았는가. 오늘 따라 동네가 왜 이리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가요? 글쎄요, 다들 논밭에 가셨나봐요. 옛날에는 포내리 올라오면 막걸리 댓 잔 걸치고 가는 건 문제가 아니었는디. 대포집이 세 개나 있었어도 사람들이 집집이 그득했지. 학생들만 해도 800명이 넘었었응게. 시방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원.

상중리 정 씨도 요새는 밖에 잘 안나오는가벼. 통 안 보여. 오늘 아침에 청소 당번이라 일하고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 살아 있구만. 거기나 만나보고 가야것네. 약은 내 아껴 바르리다. 버스시간도 아직 멀었고 찬찬히 걸어갈라네. 아버님 걸음이 워낙 빠르시잖아요. 그래도 한 시간은 더 걸리죠? 걷다가 아는 양반 만나면 간섭 좀 하고, 그리저리 걸으면 한 시간은 걸리지. 버섯은 다 따셨어요? 올해 버섯 농사가 션찮아. 작년만 못 해. 어지간히 다 땄어요. 애쓰셨습니다. 그럼 수고하시오. 고맙습니다.


@적상면 포내리, 2016



11:00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특별 무대가 있었구나. 가왕의 인사, 아쉬워. 국카스텐으로 돌아온 하현우. 작별한다. 판듀 바이브-윤민수 편에는 어느 싱어가 듀엣이 되었을까. 이메일도 살펴보자.


11:13

어제 들깨밭을 맸어요. 징그럽게 비도 안 오네요. 강냉이도 배배 돌아가고 고추도 시들비들 합니다. 다 타들어가요. 어서 비가 와야 하는데. 고추밭에 약을 세 통이나 짊어지고 했더니 전신이 안 아픈 곳이 없어서 오늘은 쉬고 있고만요. 아무리 참을래도 도무지 안 돼서 왔습니다. 약 좀 주세요. 어머니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하루 종일 마늘 캤습니다. 퍼질러 앉아 일했더니 작년에 수술한 무릎이 어찌나 아픈지 약 좀 주세요. 아버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어제 논에 농약을 좀 쳤더니 양쪽 팔뚝이 가려워서 주사 좀 맞을라고 왔습니다.


11:40

네! 보건진료소입니다. 소장님~ 점심 먹으러 가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읍내로 어죽 먹으러 갈까요? 아니면 짜장을 먹을까요? 아... 옷 갈아입고 나갈테니 얼른 준비하세요.


11:48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뭘 또 하라는 건지. 전화가 자꾸 와싸서 성가시러 죽겄네요. 아침 7시부터 시작잉게 면사무소 앞으로 오라는디. 그 시간에 거기 가는 버스가 있나, 차가 있나. 인자 다 끝났것네요. 소장님이 아시면 가르쳐주세요. 글쎄요. 연락받은 건 없었지만 전화해서 알아볼게요.


11:50

읍내 병원에 가서 혈압을 쟀더니 겁나기 높다네요. 소장님이 주는 약을 바꿔야 할랑개벼. 혈압 좀 재 보시죠. 126/84, 이 정도면 괜찮은데요. 며칠 후에 다시 재보죠. 혹여 높게 나오면 혈압약 처방을 바꾸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다시 확인해 드릴게요.


11:54

창문을 열어놓고 잤더니, 머리가 아프고 콧물이 자꾸 나와서요. 약 좀 지어주세요. 재채기에 기침에, 개도 안 걸린다는 오뉴월 감기에 걸렸으니, 개만도 못한 사람이죠. 사람이 얼마나 션찮으면 이러것는가요? 아버님, 그럴 수도 있죠. 우리는 개가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하하하~ 그렇지, 개는 아니지!


12:14

중화요리 전문접이라는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산성각 도착,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들, 짜장면 두 그릇을 시켜놓고 순임씨와 마주 했다.


13:10

사무실 도착, 하루 중 1/4 조각이 채워졌다.

오후에는 마을 출장이다.


소파에 딱 3분만 누울 수 있으면.

딱 3분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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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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