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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Oct 24. 2024

세 번째 편지 - 2023년 11월 15일

OO 안녕? 지난 한 주도 잘 지냈어?


 지난주 내 편지는 너무 길었던 것 같아. 매주 편지를 받아 보는 OO 입장을 생각할 때 분량을 적절하게 맞춰야 하는데,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쓰고 나면 너무 긴 글이 되어 있더라. 아직 글쓰기 실력이 부족해서 불필요한 부분도 많은 것 같고. 앞으로는 되도록 2,500자 내외로 분량을 맞춰보려 해.


 지난 편지에 꿈, 열정, 도전 이야기를 써서 그랬을까? 지난 며칠 동안 이전 직장 일과 사람들에 대한 꿈을 두 번이나 꿨어. 한 번은 꽤 통쾌하게 끝나는 꿈이었지만, 한 번은 썩 기분 좋지 않은 꿈이었지. 퇴사하고 시간이 지나 과거의 나를 많이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무의식 속에서는 지난 직장의 일들이 끊임없이 어떤 연상 작용을 일으키나 봐.


 OO, 혹시 직업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어? 그리고 그 일은 OO에게 어떤 의미야? 일을 하면서 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어? 오늘 편지에서는 일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 오늘은 우선 전반적인 내 커리어와 지금 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말해볼게.


 대학 졸업 후 내가 취직한 곳은 스포츠 관련 공공기관이었어. 그 직장은 일과 직장에 대한 내 가치관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의 기준을 모두 적당히 만족하는 곳이었어. 게다가 운 좋게도 입사하자마자 내가 하고 싶었던 국제 스포츠 대회 파견 업무를 맡게 되었어. 일은 굉장히 힘들었지만 상당히 큰 성취감을 느꼈고 개인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도 만났지. 하지만 2년 반 정도만 일하고 다소 급작스럽게 퇴사를 했지.



 첫 직장을 그만둔 후 두 달도 안되어 어떤 공공기관에 다시 취직이 되었어. 신입직원 연수까지 받았지만 도저히 다시 회사에서 일할 자신이 없어서 정식 출근하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지. 그 후 일 년 정도 몇몇 괜찮은 회사에 띄엄띄엄 지원하면서, 행정고시와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어.


 그러던 중 우연히 어떤 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일종의 추천 전형으로 대학교 교직원에 지원하게 되었어. 합격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걸 인지한 채로 입사 지원을 한 거야. 가고 싶은 직장은 사실 아니었지만 공백기가 길어진다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했지. 그렇게 만 30세 때 대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전략기획, 재정운영, 스타트업 지원 업무를 담당하다가 7년 차 때 또 한 번 퇴사라는 선택을 내렸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품어왔듯, 약 10년 동안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져왔어. 치열하게 나 자신을 불태우며 써봤던 답들은 회사의 관습과 구조, 환경에 의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쉽게 지워져 버렸어. 다양한 동료 선후배들과 상사들이 보여주는 이해할 수 없는 오답들을 마주치면서 홀로 괴롭다가, 분노하다가, 체념하다가, 냉소적으로 변하기도 했지. 대학교 마지막 2년 정도는 일과 삶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 애쓰며 살았어.


 그런 흐름 끝에 직장인 10년 차가 되는 달이었던 지난해 11월 휴직을 떠났어. 형식은 휴직이었지만, 다음 선택지는 이직과 퇴직밖에 없었지. 휴직하고 사직서를 제출할 때까지, 몇 달 동안 “왜 일하는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고독을 택하고 끊임없이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갔어. 이 도중에 나만 승낙하면 되는 이직 제안들도 있었고, 잠시  좇으려 했던 도전도 있었지만, 왠지 옳지 않은 선택이라는 느낌이 들었지. 결국, 나와 가족의 행복과 안정을 위해 장기적으로 스스로를 고용하는 삶을 선택했어. 왜 사는지 정답이 없듯이 왜 일하는지 또한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선택이 있는 거라고 믿었어.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과 일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다르지 않다는 거지.



OO, 지금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내 미래를 그려. 아무런 의미도 생산하지 못하는 ‘가짜 노동’은 그만두고, 내 열정과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길을 선택하는 거야. 단 한번 주어진 삶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심한 거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독립 서점과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등 책과 글이라는 범주 안에서 나만의 서사를 쌓고 나만의 길을 만들고 싶어. 또, 읽고 쓰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이 무의미한 세상을 더 다정하게 만들고 싶어. OO, 나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이 길 위에서 나는 나만의 의미로 걸어가려 해. 물론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현실적인 이유로 다시 수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야 할 수도 있어. 실은 꽤나 마주칠 확률이 높은 갈림길이지.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예전과 완전히 다르게 나를 지키며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나는 왜 일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OO, 일의 의미에 대한 OO의 생각이 궁금해. 예전에 했던 일, 지금 하는 일, 그리고 앞으로 하려는 일이 OO의 인생 이야기를 어떻게 써 내려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


 그럼 또 편지 쓸게. 오늘도 다정한 하루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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