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는 위기 때 드러난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잎사귀가 움트고, 기지개를 켜는 자연을 보며 우리도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그래서 봄은 희망과 시작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름은 푸르름의 계절이다.
온 산이 초록으로 물들고, 그 푸르름은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초록을 보면 편안함을 느끼지만, 그 초록은 단단한 생명력의 결과다.
이 시기엔 가장 흔하게 보이는 소나무가 상록수라는 사실조차 잊는다.
초록이 넘쳐나는 계절엔 소나무의 푸르름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저 흔한 나무처럼 보인다.
그러나 계절은 늘 변한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찬바람이 불고, 잎들이 떨어지며, 익숙했던 나무도, 이름조차 몰랐던 나무도 모두 마른 가지가 된다.
그제야 우리는 소나무를 본다.
겨울에도 푸른 잎을 품고 서 있는 나무.
흰 눈과 대비되는 진초록의 짙음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사람도 그렇다.
상록수 같은 사람은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같은 출발선에 설 때, 모두가 열심히 하는 초반에는 누가 특별한지 알 수 없다.
모두가 웃고, 모두가 이룬 것처럼 보일 때는 사람이 다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인생의 겨울이 오면, 찬바람과 시련 앞에서 사람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화려함이 사라지고 버티던 힘이 하나둘 꺼지고, 사람들이 조금씩 무너질 때, 그때 비로소 보인다.
늘 자기 페이스로 걷던 사람.
남의 앞길을 진심으로 축하하던 사람.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말없이 곁을 내주던 사람. 그런 사람이 소나무 같은 사람이다.
이들은 평소 눈에 띄지 않는다.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자기 자리를 조용히 지킨다.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것도, 상처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내면에도 소용돌이는 일어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다듬어진 마음 덕분에 겉으론 여전히 초록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성장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저 ‘버틴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과정을 품는다.
그래서 더 크고, 더 깊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존재의 무게가 느껴진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내 곁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내가 힘들었을 때, 말은 없었지만 곁을 내어준 사람.
내 실패를 탓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사람.
기꺼이 그림자가 되어준 사람.
그리고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었는가?
우리는 인생에서 여러 번 겨울을 맞는다.
날씨로 오는 겨울도 있고, 마음으로 스며드는 겨울도 있다.
삶 전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도 있다.
그 겨울 속에 있다면 기억해야 한다.
상록수는 겨울을 지나야 드러나는 존재라는 걸.
말없이 힘이 되는 사람.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희망이 되는 사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