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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Feb 19. 2020

14세에 멈춰버린걸까

생존을 위한 인생정리 중입니다

    

쾌청한 하늘에 빨라졌던 발걸음이 반 박자 한 박자 조금씩 느려져 어느새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리고 한 건물 앞에 멈춰서 건물 위를 쳐다봤다.  

   

‘아 들어가기 싫다’      


‘시끄러워~ 얼른 들어가자’      


‘아..... 집에 가고 싶어’     


나는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억지로 잡아끌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정신건강의학과의원’ 나를 무섭게 하는 공간 앞에 숨을 크게 한 번 들이 쉰 후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이다. 오늘은 대기 환자가 없다. 숨을 쉴 수 있겠다. 잠시 기다림 후에 진료실로 들어섰다.      


“이번 주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냥 똑같아요”     


“일하고 계신거예요?”     


“일하고, 책보고, 사람들도 가끔 만나고 평소처럼 똑같이 지냈어요”     


의미 없는 일상 대화를 나누며 호흡을 가다듬다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 오는 게 무섭다’고.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 우리 엄마는 정신질환을 앓았었다. 뉴스에서 흔히 무서운 병으로 다루고, 간혹 큰 사건들을 일으키는 조현병이란 병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정신분열증이란 이름으로 흔히 정신나간사람들을 일컬었던 것 같다.      

난 엄마가 다른 세계의 공간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엄마만의 공간. 지금은 모두 기억에서 지워져버린 그런 공간 말이다. 기억에서 지워져 다른 공간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재는 나와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당시에는 엄마의 다른 세계가 너무나 무서웠다. 그곳으로 엄마가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는 병원선생님의 권유로 영양제처럼 꾸준히 약을 먹고 있다. 약을 받기 위해서 엄마는 일정기간에 한 번씩 대학병원을 간다. 나는 사실 그동안 엄마와 함께 가는 걸 피해왔다. 그곳에 가면 엄마의 다른 세계를 다시 느낄 것 같았다. 그러다 얼마 전, 큰 마음을 먹고 엄마의 병원을 함께 따라갔다.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진료과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을 받고 말았다. 그 곳에 있는 게 무서웠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엄마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14세의 나로 돌아가버렸다.      




당시, 엄마와 병원을 몇 번 함께 간 적이 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혼잣말을 하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고,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보듯 엄마를 쳐다봤다. 그럴 때면 마치 그 옆에 있는 내가 전신을 스캔 당하는 느낌이었다. 흉곽 X-ray 사진을 찍으러 들어가면 잠시 숨을 멈춰야 하는 것처럼 나는 숨을 쉬지 못한 상태로 사람들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야 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이러니 하게 의사선생님이었다. 이 쪽 분야의 전문가이시니까 나를 좀 더 안심시켜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진료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나의 예상은 완전 무너졌다. 선생님은 그저 바쁜 대학병원의사선생님이었다. 의무적인 멘트만이 들려왔다. 약은 잘 먹고 있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우울감은 어떤지. 엄마는 대기실에서와 달리 조용히 선생님의 질문에만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답답했다. 결국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여전히 계속 혼잣말을 해요”     


숨이 막혔다. 선생님은 그저 이야기를 듣고 다른 약을 추가해주겠다며 타이핑을 칠뿐이었다.  

나는 상처 받았다. 내가 뭔가 큰 기대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상처였던 건 냉정하고 감정이 섞이지 않은 눈빛이었다. 잊히지 않는 그 눈빛...           




의사 선생님은 이야기를 듣더니 감수성이 풍부한 그 시기에 받은 그 시선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트라우마란 ‘과거 경험했던 위기,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재밌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부터 생긴 트라우마라니.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같다.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트라우마는 계속적으로 노출을 시키면서 고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상상을 통해 반복적으로 그 상황 속에 들어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의 지도하에 한 번 해봤는데, 너무 힘들었다. 나는 정말,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 극복해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도.      


이제 멈춰 있던 14세의 시계가 조금씩 흘러가기 시작했다. 부디 멈추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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